허진수 GS칼텍스 회장

허진수(64) GS칼텍스 회장이 회사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사업 다각화와 임직원들의 도전 의식 고취에 열심이다. 100년 기업으로의 발돋움을 위해선 대형 장치산업이자 수출산업인 정유업에만 목맬 수 없다는 결기 같은 게 느껴질 정도다. 몇년째 실적 호조를 이끌면서도 최근 ‘안전 경영’에 구멍이 나 속 앓이를 하고 있다.

▲ 허진수 회장은 정유업이 아닌 사업 부문에서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사진=뉴시스]

“내실 있는 100년 기업과 최고의 회사를 만든다는 자긍심을 갖고 힘찬 미래를 만들어 가자.” 허진수 회장은 5월 18일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 창립 반세기를 맞아 이런 당부를 한 그의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오너 3세 CEO이면서도 30년 동안 GS칼텍스에서 줄곧 회사 생활을 해온 ‘GS칼텍스 맨’이기 때문. 그는 국내 정유ㆍ석유화학 업계에서 보기 드문 오너 겸 전문경영인으로 통한다.

창립 이듬해인 1968년 12억원의 매출로 시작한 GS칼텍스는 지난해 매출 25조770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로만 보면 반세기 동안 2만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창립 초기 하루 6만 배럴이던 원유 정제 능력도 79만 배럴로 13배 이상으로 커졌다. 지난해까지 정제한 원유량은 80억 배럴. 200L 드럼통에 채워 한 줄로 세우면 지구 둘레(약 4만㎞)를 140바퀴 돌고도 남는다.

일반인들은 GS칼텍스가 주유소(전국 2500여개)에서 휘발유, 경유만 파는 줄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출 비중이 훨씬 높은 굴지의 글로벌 수출기업이다. 2012년 국내 정유업계 최초이자 국내 기업 중 두번째로 ‘250억 달러 수출의 탑’을 받았을 정도다. 2002년 26% 수준이던 수출 비중은 지난해 71%로 높아졌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원유를 정제해 국내에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을 판매하던 전형적인 내수기업이었는데 변해도 많이 변했다. 고부가가치제품 생산을 위한 과감한 설비 고도화 투자 덕분이었다. 이를 위해 2000년부터 11조원을 투자했다.

탄탄한 수출기업으로 터를 잡는 데는 허 회장도 일조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33세 때인 1986년 GS칼텍스(당시 호남정유) 재무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옛 럭키금성그룹과 LG그룹, GS그룹(2005년 이후) 시절을 거치면서 2~3년(1998~2000년) LG전자 중국본부 전무 등을 맡은 것 외에는 대부분 GS칼텍스에서 한우물만 팠다. 직급별로 차근차근 경험을 쌓은 끝에 올해 초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그가 GS칼텍스 지킴이이자 정유ㆍ석유화학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그런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안 그래도 그는 회사 창립 50주년을 전후해서 틈만 나면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혁신을 통해 회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지속 성장에 필요한 새로운 사업에도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00주년을 제대로 맞으려면 지금의 사업 포트폴리오만으론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올 1월 미래전략팀을 신설하고 지난해 ‘우리가 더하는 아이디어’라는 의미인 위디아(We+Idea)팀을 만든 것 등은 모두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위디아팀은 GS칼텍스의 기존 사업 외에 전기차ㆍ자율주행차ㆍ카셰어링처럼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만 있다면 그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사업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정유업 외에 석유화학과 윤활유 사업의 비중을 높이는 한편 석유와 관련 없는 바이오케미칼과 복합수지 사업, 4차 산업 등으로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허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현명한 시행착오’ ‘착한 실패론’까지 들며 임직원들에게 도전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지난 3월 그는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은 ‘선풍기=날개’라는 기존의 프레임을 깨고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개발했다”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생각하는 ‘탈脫정형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백열전구를 발명하기까지 2000여번의 실패를 겪은 에디슨을 예로 들며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축적하고 이를 조직이 공유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말도 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시도

1967년 국내 최초 민간정유사로 출발한 GS칼텍스는 GS그룹(회장 허창수)의 주력계열사다.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과 함께 국내 정유업을 이끌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의 지난해 정유업 시장점유율은 약 26.6%로 약 33.7%인 SK이노베이션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사업 영역은 크게 정유, 석유화학, 윤활유로 나뉜다. 정유 부문이 매출의 약 77%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지난해 저유가에 따른 불확실성 속에서도 매출 25조7702억원에 창립 이래 최대 영업이익인 2조1404억원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올 상반기 실적이 호조여서 올해 실적도 기대되고 있다(그래픽 참조).

이같은 호실적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2013년 그가 기대를 모으며 대표이사에 취임할 당시 정유업계는 불황이었다. 첫해엔 373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는 데 그쳤다. 전년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2014년에는 당기순손실 6762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보기 드문 실적 후퇴를 기록하고 말았다. 일부에선 그의 경영능력을 의심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2015년엔 흑자전환 끝에 당기순이익 9718억원을 올렸다. 이어 지난해 당기순이익 1조4170억원으로 약진했다. 대표이사를 맡은 4년여 동안 불황으로 굴곡을 겪었지만 지금은 성장에 필요한 체질개선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최근 고민거리가 생겼다. 7월 초 사보를 통해 “안전 환경경영을 최우선시 하자”고 거듭 당부했는데 불과 한달 만에 잇달아 사고가 터진 거다. 정유사업 특성상 대형 기계장치가 많아 사고는 큰 골칫거리 중 하나다. 대표이사를 맡은 이듬해인 2014년에도 여수에서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켜 큰 곤욕을 치른 바 있어 심기가 더욱 불편하게 됐다.

201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원유 도입부터 정제ㆍ판매까지 사업 전반에 걸친 원가 절감 및 수익 확대 프로그램(V 프로젝트)을 만들어 시행한 게 큰 힘이 됐다. 그 결과, 원유 도입선은 동남아ㆍ중동ㆍ호주ㆍ유럽ㆍ중남미 등 전 세계 30여 개국, 약 80종으로 다변화됐다. 2005년부터 4년간 여수공장을 총괄하는 생산본부장을 맡아 원유 정제 고도화 시설 확대에 힘썼던 것도 수익성 향상의 밑거름이 됐다. 고도화 설비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값싼 중질유(벙커C유)를 재처리해 부가가치가 높은 휘발유와 등ㆍ경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설비를 말한다.

줄줄이 터지는 안전사고에 골머리


“GS칼텍스 50년 역사는 고객, 파트너, 주주 여러분과 한 길을 걸으며 함께 성장해 온 상생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6월2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가진 창립 50주년 고객 사은 음악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임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깊고 권한 위임에도 적극적이라는 그는 이해 관계자들과도 많이 소통하는 친화적 리더십의 소유자로 통한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둘째 동생인 그는 차기 그룹 회장 후보의 한 사람이란 얘기도 듣고 있다. 재계에서 점점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그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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