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후반, 일상을 벗어나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 상품이 유행한 적 있다. ‘일상은 지루하고 반복적이다’라는 소비자의 일반적 관념을 토대로 만든 상품이다. 그럼 우리의 일상은 정말 반복적이고 지루할까.부천문화재단은 2018년부터 매년 문화도시사업의 일환으로 부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다양한 일상을 담은 「도시다감都市多感:감정사전」을 발간해 왔다. 평범한 일상을 문학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거다. 자신에게는 흔한 일상이 남들에겐 이렇게 낯선 여행이 되곤 한다. ‘도시다감’은 ‘도시의 다양한 감성’이라는 뜻이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17세기쯤 유럽에선 진기한 물품을 가득 채운 ‘분더카머(Wunderkammer)’란 공간이 유행을 탔다. 대항해시대를 거쳐가던 유럽은 전세계에서 진기한 물품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뽐내려는 문화가 형성됐던 것 같다. 분더카머. 좀 낯선 용어인데 어디서 들은 듯하다면 그 느낌이 맞다. 분더카머는 ‘박물관학’에서 다루는 개념이다. 다만, 지금의 박물관보단 아카이브(저장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박물관보단 아카이브, 아카이브보단 분더카머가 이전에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이번에 ‘아트 키다리아저씨’가 소개하려는 전
SNS는 종종 질투를 유발한다. 친구 혹은 직장동료의 사진 한장에 좌절하고, 아무것도 아닌 SNS 속 일상에 절망한다. 질투는 SNS를 또다른 질투로 엮는다.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SNS 속 일상을 과대 포장하는 식이다.송정섭(songsuv) 작가는 그런 질투의 본질에 주목한다. 질투란 부정적 감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또 질투를 건설적으로 전환할 방법은 없는지 탐구한다.송 작가는 되묻는다. “질투는 상실된 자존감의 단면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믿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커질 때 질투는 강해진다. 사회가 비교를 강요하고, 사회의
최근 건물과 거리의 벽면이 디스플레이로 채워지고 있다. LED 디스플레이와 같은 전자장비의 보급이 확산하면서다. 공학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동적인 영상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거다.이런 기술적 트렌드는 디지털 예술의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는데, 국내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혹은 청담동의 거리를 걷다보면, 세상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아이러니한 점은 급격한 디지털화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도 강해지고 있다는 거다. X2갤러리(엑스투갤러리)에서 2월 27일까지 개최하는
한국 영화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영화 중 1000만 관람객을 동원한 작품은 정말 흔치 않다. 영화만이 아니다. 어떤 플랫폼이든 ‘상징적인 숫자’에 도달하는 건 기념비적인 일이다. 가령, 유튜브에도 다양한 채널이 존재하는데, 이중에서 100만 구독자를 돌파한 채널은 극소수다. 그래서인지 ‘상징적인 숫자’를 달성한 작품엔 사회적 관심이 쏟아지기도 한다. 빅히트를 친 영화가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례로, 일본 애니메이션 ‘지브리스튜디오’ ‘스즈메의 문단속’을 활용한 테마파크가 만들어졌다. 영화의
우리 앞 사물과 존재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늘 변하고, 점차 사라지며, 다시 형상화한다. 그러다가 쓰임이 필요 없는 순간이 오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듯 사라져버린다. 이를 불교에선 ‘일체만물이 공하다’고 표현한다.이렇게 영원하지 않은 세상을 영원한 진리란 관념으로 시각화하는 여성 작가가 있다. 대지미술(earthworks) 작가인 지나 손이다. 갤러리 엑스투(Gallery X2)가 ‘疊疊: 첩첩’으로 명명한 그녀의 작품을 2024년 1월 7일까지 전시한다. 지나 손을 알아보기 전에 조금은 낯선 대지미술의 장르부터 살펴보자. 대
문화전문기업 스타트아트코리아는 최근 수년간 상업 미술계에서 개성 있는 기획전을 많이 개최한 곳이다. 현대 미술시장에서 빼놓을수 없는 양대산맥 중 하나인 영국 런던의 갤러리와도 수많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스타트아트코리아가 자신들을 ‘영국 기반’의 문화전문기업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잠재력 높은 국내 신진작가를 발굴해 아티스트의 창작활동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K-아트의 우수성을 알리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기업이다(자사 홈페이지).” 이는 한국의 아트가 세계시장에서 나름의 매력을 얻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역동적으
작품을 준비하는 작가는 통상 ‘사진’을 찍는다.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이는 호상근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영감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다만, 방법이 다르다. 그는 영감이 떠오르면 종종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든다. 사소한 찰나부터 의미 있는 순간까지 섬세하게 담기 위해서다.그만큼 그에게 ‘그림’은 세상과 통하는 문이다. 호 작가는 그림이란 ‘회화적 언어’를 동원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호 작가의 작품이 유별난 건 이런 성향 때문일 거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인터넷이란 매체가 등장한 시대를 사람들은 ‘웹1.0’이라고 규정한다. 이 시기, 웹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데스크톱 컴퓨터를 주로 사용했다. 당시로선 혁신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수많은 이들과 가치를 나누는 ‘웹2.0’ 시대가 열렸다. 웹2.0 시대엔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기술적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했고, 웹2.0은 2020년대에 들어 ‘소셜미디어’ 시대로 확대 개편했다. 페이스북ㆍ인스타그램ㆍ유튜브처럼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사진과 영상콘텐츠를 제공하는 시대가 열린 거다. 이전엔 젊은 세대가 주로
시각예술계는 ‘가치의 압축’이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영화·음악·연극과 달리 단 1쪽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시각예술은 영화·연극이나 문학 같은 텍스트 기반의 예술과 큰 차이를 보인다. 다른 예술은 해당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시각예술은 그렇지 않다. 단 한번에 가치를 얻을 수 있다.이렇게 한번에 가치를 드러내는 건 또 있다. 다름 아닌 화폐나 주식이다. 최근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와 같은 암호화폐가 나타나고,
되돌아보면 다양한 전시공간에서 수많은 작가를 만났다. 아트총각으로서의 삶을 계속 산다면, 더 많은 작가와 기획자, 그리고 새로운 공간을 만날 거다. 필자는 작가의 삶을 종종 ‘야생’에 빗대곤 한다. “날것 그대로의 눈을 반짝이면서 생명을 마주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생각해서다. 그런 그들의 ‘반짝임’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반짝반짝’이다. 흥미로운 전시명을 내세운 권 작가는 생생한 동물을 촬영하는 사진작가다. 이전 작품인 ‘북한산’과 ‘야간행’을 만들 땐 북한산을 떠도는 들
1890년대 프랑스에서 출발한 아르누보(Art Nouveau)는 ‘새로운 예술’이란 뜻처럼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이때 등장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나 알폰스 무하는 일러스트와 같은 편안하면서 시선을 빼앗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전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일본 애니메이션들도 아르누보의 작가들이 선보인 그림 스타일을 ‘만화’라는 형태로 받아들인 후 대중예술로 승화해냈다. 현대 미술가 무라카미 다 카시는 이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상업만화 특유의 귀여움에 자신의 철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시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놀런 감독이 평단과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전달한 사실상 첫번째 영화인 ‘메멘토’ 역시 시간과 기억을 풀어낸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도 시간과 중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 이제 사족을 접고 본론을 이야기해보자. 놀런 감독의 영화를 볼 때 필자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건 블랙홀이다. 블랙홀이란 존재는 오펜하이머가 원폭을 개발하던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공간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에만 존재하는 ‘공상의 세계’다. 이는 무의식일 수도, 백일몽일 수도 있다. 이런 공상을 작가들은 종종 문학이나 예술작품에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몇몇 평론가는 예술작품을 ‘꿈의 세계에서 본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는 도구’라고 일컫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꿈의 공간인 ‘공상’을 다루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도 아라리오뮤지엄에서 8월 31일 개막한 ‘현실주의자의 공상(The Realist’s Imagery)’이란 전시회로, 원성원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원 작가
이메일,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카페, 채팅 서비스 등의 개념이 쏟아져 나온 시기는 언제일까. 2000년대 초반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혁명이 태동한 2018년보다 IT혁명이 몰아쳤던 2000년대 초반에 혁신 물결이 더 강하게 일었던 것 같다. 사회의 중심이 종이매체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변곡점도 다름 아닌 이때였다. 이 시기에 개관한 아트센터 나비는 미디어아트의 센터이자 디지털아트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예술적 감성과 기술적 가능성을 결합해 아트계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많은 아트센터와
예전에 뉴욕에서 프리즈아트페어의 전시, 크리스티경매장의 현장을 볼 때면 부러움이 밀려오곤 했다. 모마미술관 PS1처럼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이 하나의 도시 안에 공존하는 뉴욕은 필자에게 ‘도가니(melting pot)’라는 새로운 관념을 제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뉴욕엔 세계자본주의와 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가 있다. 그 속에 전세계 미술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술관이 있고, 다양한 전시공간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한자리에 있기엔 조화롭지 않지만 제법 어울리기도 한다. 뉴욕에 경제력과 다양성을 감당할 수 있는 문화적인
올해로 5년차를 맞은 2023 글로벌 청년창의레지던시(GYCR)가 진행하는 ‘내려진 뿌리, 자라는 섬 Rooted, Growing Island’이 20일까지 제주에서 열린다.글로벌 청년창의레지던시는 전세계 다양한 영역에서 종사하는 젊은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제주에 모여 ‘예술’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나누는 국제교류 아트 프로젝트다.이번 프로젝트는 리플로우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등 제주의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에서 진행한다.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ㆍ공예ㆍ디자인까지 경계 없는 예술 분야를 다룬다. 이를 위해 국내외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화사하고 귀여운 캐릭터 ‘꽃(Flower)’을 아는가. 예쁘고 귀여워서 좋아하는 이들이 제법 많을 거다. 필자 역시 노트북 바탕화면에 그의 캐릭터를 설정해 놓은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슈퍼마리오 캐릭터와 묘하게 겹치는 것 같아 더 큰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몇년 후, 대학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배울 때 우연히 무라카미 다카시의 꽃을 다시 접했다. 그때 필자는 사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화사한 캐릭터인 꽃이 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을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생성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작품은 과연 예술일까. 그런 작품에 본질이라는 건 있을까. 최근 작가들과 만나면 이런 질문이 쏟아진다. 필자도 아직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다만, 이와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예술도구는 있다. 다름 아닌 사진기다. 실제 눈으로 본 것처럼 그림을 그리던 작가들의 예술혼이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일거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논란과 논쟁이 난무하긴 했지만, 사진이 예술의 한 부분이란 걸 부인하는 사람은 더이상 없다. 더구나 사진은 저널리즘의 성격을 갖고 있어, 진실과 본질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만든 나라는 어디일까. 공식적으론 미국이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독일의 암호생성기인 에니그마를 격파한 영국의 콜로서스가 사실상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는 거다. 그럼 현대 지상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차(tank)란 개념을 고안한 나라는 어디일까. 대부분 독일을 떠올리겠지만, 실은 영국이다. 이처럼 영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건 수없이 많다. 그중엔 문화적 창안創案도 있는데, 시각예술 분야가 특히 두드러진다. 가령, 사진 분야엔 브리티시 저널 오브 포토그래피(British Journal of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