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의 왕성한 식욕

▲ 식음료, 외식업계에 눈독을 들이는 사모펀드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자금력으로 무장한 사모펀드가 먹는장사를 노리고 있다. 과거 장치산업에 집중하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먹는장사에 자금을 투자하면 수익을 남기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모펀드의 ‘왕성한 식욕’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엇갈리고 있다.

웅진식품의 최대주주 웅진홀딩스가 올 9월 30일 “한앤컴퍼니와 보유 주식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매각대상은 보유주식 2081만6870주(47.79%), 매각대금은 950여억원이다. 신세계푸드·아워홈·빙그레·푸드엠파이어 등 국내 주요 식음료 업체들이 대거 뛰어든 웅진식품 인수전의 승자는 사모투자전문회사 한앤컴퍼니였다.

사모펀드가 식음료 업체를 인수한 사례는 또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 KKR은 2009년 오비맥주를 인수했다. 크라운제과에 인수된 해태제과의 상당수 지분은 사모펀드 ‘KT-LIG에이스PEF’가 보유하고 있다.

외식 브랜드까지 노리는 사모펀드

외식 프랜차이즈를 노리는 사모펀드도 적지 않다. 놀부NBG가 대표적 사례다. 놀부부대찌개·놀부보쌈으로 널리 알려진 놀부NBG는 2011년 11월 모건스탠리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지난해 11월 버거킹코리아의 경영권을 거머쥔 주인공도 토종 사모펀드 ‘보고펀드’다. 제너시스 BBQ의 외식브랜드 BHC치킨은 올 7월 시티은행이 중심인 외국계 사모펀드 CVCI로 매각됐고, 할리스커피도 같은 시기에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로 넘어갔다.

사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오가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식음료업체나 외식업체는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모펀드가 식음료·외식업체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M&A 전문가들은 그 첫째 이유로 자금회수가 용이하다는 점을 꼽는다. 장치산업의 경우, 투자가 수익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식음료·외식업체는 다르다. 론칭과 동시에 ‘바람’만 잘 일으키면 짧은 시간에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실제로 사모펀드의 막강한 자금이 투입된 식음료·외식업체 가운데엔 가파르게 성장한 곳이 많다.

▲ 사모펀드(보고펀드)로 매각된 버거킹은 국내 진출 30년 만에 가맹사업에 진출했다.
최근 보고펀드가 인수한 버거킹은 외형 면에서 경쟁업체인 맥도널드·롯데리아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맹사업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보고펀드의 자금이 투입된 직후 버거킹은 가맹사업에 실탄(자금)을 쏟아 부었다. 올 7월 초국내 진출 30년 만에 강남지역에 가맹점포를 열었다. 그 결과 올
6월만해도 약 130개에 불과했던 버거킹 매장은 10월 8일 현재 171개로 약 30% 증가했다.

 
사모펀드가 투자한 후 내실이 탄탄해진 곳도 있다. 오비맥주는 KKR이 인수한 지 2년여 만인 2011년 하이트맥주를 따돌리고 국내 맥주업계 1위(시장점유율 부문)에 등극했다. 현재는 점유율 격차를 더욱 벌리며 맥주시장을 평정하다시피 하고 있다. 기업가치도 껑충 뛰었다. 올 4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오비맥주 평가액은 25억~30억 달러다. KKR이 오비맥주를 인수할 때 사용한 18억 달러의 1.5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사모펀드가 늘 좋은 결실을 맺는 건 아니다. 2011년 모건스탠리 사모펀드가 인수한 놀부NBG는 싸이를 모델로 내세우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2010년 295개였던 놀부보쌈 매장은 지난해 말 246개로 감소했다. 놀부 부대찌개&철판구이의 영업이익은 2010년 80억원에서 2012년 13억원으로 6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

놀부의 또 다른 브랜드(놀부항아리갈비·차룽반점·놀부숯불애장닭) 역시 신규출점이 거의 없거나 매장수가 줄어드는 등 부진한 성적을 냈다. 이 때문인지 모건스탠리 사모펀드가 인수한 직후 수장에 올랐던 유민종 전 사장은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모건스탠리 측이 경질에 입김을 넣었다는 말이 나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놀부NBG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합병이 완료된 것은 지난해 3월이었다”며 “지난해 손실 부분은 합병과정에서 생긴 비용에서 기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개편을 통해 새로운 경영시스템이 안착되면서 올해 전체 브랜드 매장을 200개 추가 오픈했다”며 “지난해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경기침체 탓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김상훈 스타트비즈니스 대표는 “간단하게 음식메뉴를 조리할 수 있는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 전문점에 거대자본이 투입되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공산이 크다”며 “하지만 한국음식은 다르다”고 말했다. 김상훈 대표는 “놀부 같은 국내 외식브랜드는 한국음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운영하기 어렵다”며 “놀부 같은 외식 브랜드를 비즈니스 대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외식 브랜드인 놀부가 고유색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다.

업종을 가리지 않는 사모펀드의 먹성을 둘러싸고도 불안한 시선이 존재한다. 웅진식품을 인수한 한앤컴퍼니의 투자포트폴리오를 보면 시멘트 업체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6월 대한시멘트 인수를 시작으로 올 초에는 유진그룹의 광양시멘트공장을 85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7월엔 국내 1위 시멘트업체 쌍용양회 지분 9.34%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436원에 매입했다. 웅진식품 관계자는 “인수합병 계약이 체결된 것은 맞지만 최종 인수와 관련한 정확한 내용은 우리도 알지 못한다”며 “(포트폴리오와 상관없이)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 회사가 보다 성장할 거라는 기대감은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투자업체 성적은 엇갈려

 
김영진 김영진M&A연구소 소장은 “사모펀드투자 전문회사는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며 “일단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면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뛰어든다”고 말했다. 이는 ‘먹튀’ 논란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비용절감 등 단기요법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되팔면 사모펀드는 차익을 남길 수 있지만 해당기업은 빈껍데기로 전락해서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의 상당수가 영업이익이 빠르게 개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용을 절감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면 같은 매출이라도 영업이익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김영진 소장은 “웅진식품 등 사모펀드에 인수된 업체는 (사모펀드가)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시점에서 되팔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며 “사모펀드가 자금을 넣은 뒤 성과가 올라갔다고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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