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댓글

▲ 댓글 리스크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일러스트=더스쿠프]

기사를 본다. 스크롤을 밑으로 내린다. 댓글을 읽는다. 베스트댓글(베댓)을 확인한다. “역시…” 때론 공감한다. “그렇구나…” 때론 배운다. 의심은 없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댓글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여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창구다. 그런 댓글이 오염되고 있다.

권력자나 권력 주변인들이 주물럭거린다. 그렇게 왜곡되고 조작된 댓글이 온라인 세상을 떠돈다. “에이! 조작된 댓글은 누가 봐도 안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지 말라. 틀린 댓글도 3번 이상 보면 신뢰성이 70% 수준까지 오른다. 이제 댓글도 걸러낼 때가 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댓글 리스크’를 취재했다.

▲ 드루킹 댓글조작이 정쟁에 휘말리면서 댓글조작 사건의 본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진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국정원 댓글조작과 드루킹 댓글조작, 둘 중 어떤 게 더 중대한가. 국가기관이 세금으로 조직적인 여론조작을 했다는 게 더 괘씸하겠지만, 드루킹 댓글조작이 덜 충격적인지는 의문이다. 댓글이 여론조작 도구에 불과하고, 특정 대가를 요구하는 ‘댓글 자영업자’까지 판치는 상황이라면 국민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 모른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댓글도 오염됐을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빠르게 보급된 인터넷, 2010년대 등장한 SNS 등은 모든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창구 혹은 여론형성을 위한 합리적인 도구가 될 것처럼 보였다. 온라인 댓글은 정보공급자의 일방적인 정보전달을 넘어선 쌍방향 소통의 매개체로 인식됐다. 하지만 현재 온라인 댓글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국가기관의 조직적으로 댓글을 조작한 것도 모자라 이젠 민간에서도 매크로 프로그램(자동댓글 프로그램)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통해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만큼, 지금까지 수사를 통해 알려진 내용만으로 사건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지난 3월 온라인 기사 댓글 추천수를 조작한 이들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붙잡혀 구속됐다. 알고 보니 이들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당원이었고, 그중 한명은 ‘드루킹’이라는 온라인 필명을 쓰는 김모씨였다.

드루킹은 온라인에서 민주당 측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았고, 많든 적든 김경수 민주당 의원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이다. 사전에 드루킹과 민주당 사이에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 드루킹이 특정한 대가를 약속받고 댓글활동을 했는지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다만, ‘인사청탁과 거절’이라는 과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드루킹은 민주당 측에 자신이 추천하는 이를 오사카 총영사관으로 앉혀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드루킹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고, 이 과정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이게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추후 밝혀져야 할 논란거리다.

최소한 지금 드러난 사실만으로 보면 드루킹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민주당이 드루킹의 댓글조작 활동을 인지하고, 이들의 활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했다는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대세 따라가는 댓글

드루킹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느릅나무 출판사가 한국산업단지공단와 입주계약조차 맺지 않았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현행법상 산업단지 내에서 일부 공간을 임대할 경우, 임차인은 한국산업단지공단과 입주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여당이 뒤를 봐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댓글조작이라는 단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자유한국당의 공세에 단순히 ‘내로남불’이라고 욕할 수만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드루킹 사건이 정쟁政爭으로 치달으면서 정작 따져봐야 하는 이슈(권력자들이 댓글을 만지작 거리는 이유)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점이다. 국민이 자유롭게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 댓글 공간을 ‘조작자들’이 침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사실 권력과 권력 주변인들이 댓글을 조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댓글이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무척 크고, 그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해 검찰의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를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면서 “댓글조작이 실제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학자들 의견은 그렇지 않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여러 사람들이 ‘네’라고 답하는 걸 혼자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게 어려운 것처럼 댓글도 마찬가지”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기사를 볼 때 스크롤을 밑으로 곧장 내린다. 이유는 하나다. 조회수나 댓글수가 많은 기사를 읽으려는 거다. 이슈가 되는 기사를 보겠다는 의도인데, 여기엔 모두가 다 아는 이슈를 혼자서만 모르면 뒤처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댓글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댓글이 하나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면 확고한 자기철학을 갖지 않은 이상 그 대세를 잘 거스르지 않는다. 그래야 스스로 힘 있는 집단에 소속돼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심리학만이 아니다. 정덕진 서울대(사회학) 교수는 “닻을 내려놓은 배는 시동을 꺼도 닻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멀리가지 않 는다”면서 “이를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하는데, 의사결정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존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사회학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 국가기관에 의한 댓글조작이든 민간에 의한 댓글조작이든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사진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사진=뉴시스]

이 논리는 경제학에서도 등장한다. 정보경제학에서는 ‘정보 캐스케이드(information cascade)’로 설명한다. 정보가 폭포처럼 밀려오는 요즘 같은 사회에선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다 섭렵할 수 없고, 따라서 다수가 선택한 방향으로 쏠려간다는 거다.

댓글조작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를 꼼꼼하게 짚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이 ‘동조현상’을 강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정덕진 교수는 “이런 동조현상은 단순한 군중심리가 아니라 다수 의견을 따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경험에 의해 이뤄진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댓글이 조작되면 개인의 의사결정도 조작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댓글시대의 위험요인

어찌 보면 국민은 지금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누군가 오염시킨 댓글을 읽고 동조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댓글을 조작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드루킹’ 한명 뿐이겠느냐는 점이다. 댓글조작으로 때론 목돈을, 때론 푼돈을 챙기는 ‘자영업자’는 도처에 널려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댓글은 순수한가. 혹시 누군가 오염시킨 댓글은 아닐까. 당신은 그 댓글의 내용을 검증하고 선별한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가. 우리가 정쟁에서 발을 빼고 ‘드루킹 사건’을 꼼꼼하게 복기해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지금 댓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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