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❶ 강남 주유소 찾아가보니 …

“강남구에 셀프주유소로 전환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나온 소문이다. 이유는 그럴싸하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를 견디지 못한 주유소 사장들이 직원을 자르고 있다.” ‘안 되면 ○○○ 탓’이라는 말이 온라인을 떠돈 적이 있었다. 지금 자영업계에선 ‘안 되면 최저임금 탓’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셀프주유소 전환’ 관련 소문은 이 얘기와 맞닿아 있다. 과연 그럴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현장을 찾아갔다.

▲ 셀프주유소로 전환한 자영주유소 사장들은 “최저임금 인상은 셀프 전환의 진짜 이유가 아니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강남구 주유소 통계부터 보자. 강남구엔 주유소가 총 43곳이다.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주유소가 가장 많다. 정유사나 도매업체가 운영하는 직영주유소가 26곳이고, 이 가운데 셀프주유소는 6곳(23.1%)이다. 개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자영주유소가 17곳이며, 셀프주유소는 7곳(41.2%)이다. 자영주유소의 셀프주유소 전환이 더 많다.

숫자만 놓고 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셀프로 전환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향후 전환할 이들이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주유소들을 직접 취재한 후 이런 추론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현장의 얘기는 숫자와 달랐기 때문이다.

[※참고 : 더스쿠프(The SCOOP) 취재진이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주유소 대표나 소장, 때로는 5~20년 이상 장기 근무한 관리자 등이다. 직영과 자영의 구분은 그들의 주장을 기준으로 삼되, 주유소를 여러 곳에 두고 별도의 법인을 둬서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이들은 직영으로 구분했다.]

일단 셀프주유소 13곳 가운데 4곳은 2014년 이전에 이미 셀프로 전환했고, 7곳은 2015년과 2016년에 전환했다. 최저임금 인상(2017년 7월) 후에 전환한 곳은 그해 10월에 전환한 ‘논현에너지’ 1곳뿐이었다. 하지만 논현에너지 대표는 “이전부터 전환을 준비했다”면서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셀프주유소로 전환할 계획을 가진 곳들은 있을까. 역삼동 K주유소(일반)를 찾아가 “셀프주유소로 변경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이 주유소의 중간관리자는 “사장이 셀프로 전환하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유는 이랬다.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주유시간을 줄여 회전율을 높이는 게 중요한데 셀프로 전환하면 되레 주유시간이 길어져서 오히려 손해다.” 손님이 많은 주유소의 경우, 셀프 전환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 때문인지 이 주유소는 상주 직원만 30명이다. 2016년 말까지 40명이었는데, 2017년 초 10명이 줄었다. 그는 “인건비가 꾸준히 오르다보니 고정비 절감 차원에서 인원을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엔 논현동 N주유소(일반)를 찾아가 셀프로 변경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이 주유소 사장은 “강남지역 특성상 손님들이 셀프주유소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셀프 전환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세차장이 많지 않으니 자동세차서비스를 겸하는 주유소들이 꽤 있는데, 자동세차라고 해도 주차를 도와주거나 마무리를 직접 해주는 걸 좋아해 직원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강남 지역의 특성도 셀프 변경 유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였다.

“셀프 전환 생각 없다”는 주유소들

실제로 셀프주유소들은 대부분 정비소나 세차장, 편의점 등을 함께 두고 영업하는 곳이 많았다. 셀프로 전환하면 가격을 확 낮추지 않는 이상 부가서비스가 있어야 손님이 온다는 이유에서였다.

도곡동 S주유소(일반) 사장도 “여긴 셀프 전환 안 한다”면서 “셀프로 전환하면 기름값을 낮출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느니 손세차 등 부가서비스를 늘려 고급화 전략으로 가는 게 더 낫다”고 설명했다. 셀프 전환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싸게 파는 전략보다 적게 팔더라도 고급화를 통해 유통마진을 높이겠다는 계산이었다.

도곡동 G주유소(셀프) 사장은 “셀프로 전환하는 비용이 만만찮아서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셀프로 전환해도 상주 인력은 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비용이 줄어든 만큼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결코 이득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강남구 일반주유소들 가운데 직영이든 자영이든 “셀프 전환 계획이 있다”는 곳은 단 1곳도 없었다. 셀프 전환 계획이 없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들 중 하나에 속했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때문에 주유소 사장들이 끙끙 앓고 있다”는 언론 보도만큼은 아니었다.

실제로 더스쿠프가 찾은 주유소 중 2~3곳은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외 상당수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큰 문제는 직원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역삼동 S주유소(셀프) 사장은 “최저임금이 안 올라도 인건비는 꾸준히 오르는 추세였다”면서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서 인건비가 오르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셀프주유소로 전환한 자영주유소 대표들은 대부분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서 바꿨다”고 말했다. 2015년에 전환했다는 자곡동의 J주유소(셀프) 사장은 “최저임금 올라서 전환한다는 건 웃기는 소리”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셀프로 전환하면 비용이 만만찮을뿐만 아니라 유통마진이 줄어 수익이 줄어든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돈 들어가고 손님 줄어드는 짓을 왜 하느냐. 손님이 줄었거나 사람을 구하기 어렵거나 둘 중 하나다.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주유소를 차리려고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아니면 안 온다. 와도 금방 때려 치고 나간다. 한두달 있다가 도망친 사람에게 돈을 안 줬더니 임금체불이라고 노동부까지 끌려 다니다보니 더 이상 못해먹겠더라. 그래서 한 2억원 들여서 싹 다 바꿔버렸다.”

셀프주유소로 전환한 이유가 전혀 엉뚱한 데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현재 직원 없이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인건비가 아무리 올라도, 사람을 관리할 일도 없어 몸은 편하지만, 마진이 낮아져서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셀프주유소에 숨은 양극화

2014년에 전환했다는 B주유소(셀프) 사장도 “최저가를 찾아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누군가가 주유를 해주는 걸 더 좋아한다”면서 “직원을 못 구하는데 셀프로 전환 안 하고 배기나”라고 푸념했다. 셀프 전환 후 인건비가 빠져 수익이 더 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결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워낙 한번에 많은 돈이 들어갔으니 그걸 회수하는 기간, 그 돈을 다른 데 투자했을 때 발생할 기회비용 등을 다 감안하면 본전을 찾는 일도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J주유소 사장과 B주유소 사장은 2억원가량을 선뜻 주유소 셀프 전환에 투자했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 기본적으로 자산이 좀 있는 듯했다. 그래서 해당 주유소가 자신의 땅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두 사람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 땅이다. 셀프주유소로 전환하는 곳은 직영점 아니면 자기 땅 갖고 장사하는 자영주유소다. 영세 자영주유소가 셀프로 전환한다는 기사들 본 적 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영세업자라면 임대 주유소 운영하는 곳인데, 20~30년의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절대 그런 투자를 할 수 없다. 셀프 전환한 자영주유소는 전부 자기 땅이라 보면 된다.”
김정덕ㆍ임종찬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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