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의 사각지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절대 나오지 않을 거다. 아니 못 나온다. 불가능하다.” ‘미투(#Me Tooㆍ나도 피해자)’ 운동이 정치ㆍ문화ㆍ기업ㆍ교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유독 한 업종만 조용하다. 건설업계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여성 노동자는 “여자 화장실에 남자들이 버젓이 들어오는 데 뭐가 바뀌겠는가”라며 혀를 찼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건설판에 미투가 없는 이유를 취재했다.

▲ 대부분의 건설현장은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기본적인 작업환경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사진=뉴시스]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농담으로 넘긴다. 기분은 나쁘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난 가장이다. 싫은 내색을 했다간 다른 현장에도 못 간다(청소용역업체 소속 50대 여성노동자 A씨).”

“현장에 온통 남자들이다보니 여자 화장실이 있어도 거의 남자들 차지다. 한번은 볼일을 보는 중에 남자들이 들어왔다. 내가 있다는 걸 알고는 낄낄거리면서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 놨다. 어떤 이는 화장실 벽을 타고 올라와 날 훔쳐보기도 했다. 몰래카메라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건설현장 사무보조 여성노동자 30대 B씨).”

“‘장’자가 붙은 이들이 마련하는 술자리가 꽤 있다. 여성노동자는 술자리에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막상 가면 가관이다. 술집여자 대하듯 한다(중장비 운전 여성노동자 C씨).”

“함께 일하던 이가 현장소장과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평소 참한 행실로 봐서 바람났을 리 없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안 보이더라. 계약기간이 끝났는지 더 좋은 일자리가 생겨서 갔는지 알 도리는 없다. 툭하면 음담패설과 성추행이 벌어지는 곳이니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을 거라 짐작만 한다(중장비 운전 여성노동자 D씨)”.

더스쿠프(The SCOOP)가 수소문 끝에 만난 건설업계 여성노동자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미투(#Me Tooㆍ나도 피해자)’ 운동이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제대로 목소리를 낼 법한데,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절대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건설업계 여성노동자들에게 미투 운동은 남의 나라 얘기다. 왜일까.

건설업은 남성 중심의 산업이고, 근무환경은 열악하며, 매우 위험한 직종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꺼리는 곳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건설업 산업재해자 수는 2만6570명으로 서비스업(2만9692명) 다음으로 많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554명으로 전산업 1위다. 전체 사망자의 31.2%에 달한다. 건설업계에 여성노동자가 적은 이유 중 하나다. 여성노동자 비율은 9%(고용노동부ㆍ2017년 기준)로 모든 산업에서 가장 낮다. 군대(5.5%)보다 약간 높다.

그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건설업계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건 일반적인 얘기다. 문제는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이 남성노동자의 4.7배에 달한다는 거다. 도급순위 상위 10대 건설사의 여성노동자 비율(주택ㆍ건설ㆍ플랜트ㆍ토목 사업에 한정)을 살펴본 결과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평균 비율은 319.4%, 남성노동자는 67.2%다.

여성 비정규직, 남성의 4.7배

숫자도 그렇지만 건설 현장이 남성 위주인 건 ‘위계질서’ 때문이다. 일부 건설사들이 조직문화 개선을 외치지만 현장은 그 대상이 아니다. 현장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인부들을 ‘통솔’하는 게 최우선이어서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확고히 자리 잡혀 있다.

위계질서의 상위는 현장소장, 작업반장, 십장 등 남성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여성노동자들은 권익이나 이익이 침해되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건설현장 내부에서도 최약자라는 얘기다. 실제로 건설현장에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은 제로에 가깝다.

여성의 권익보호가 주요 업무인 여성시민단체들에 문의를 해봐도 “건설현장 여성노동자의 권익에 관해서는 들여다본 바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 이유다. 김경신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성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부당한 일이 있을 때 노조에 연락을 달라고 선전을 해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근무지가 늘 바뀌니까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그들이 이 열악한 건설현장까지 나와 돈을 번다는 건 벼랑 끝에 서 있단 얘기다. 그들로선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부분 성교육조차 못 받은 이들이다. 설사 고소를 해도 개인을 대상으로 하니 작업장에 소문조차 나지 않고, 당사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현장에서 사라진다.”

현장 남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이 이뤄지지도 않는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주는 연 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한다”고 돼있다. 하지만 하도급 노동자나 파견노동자가 대부분이니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긴 힘들다.

김 부위원장은 “현장에 원청 여성노동자(여성 엔지니어)가 더 많아져야 현장이 바뀌고 문화가 바뀔 텐데 그게 쉽지 않다”면서 “취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지원자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남성노동자에게도 열악한 환경이 여성노동자에겐 더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건설현장의 여성노동자들은 화장실과 샤워장 문제를 1순위로 꼽는다. 대부분의 현장에선 샤워장이 있다고 해도 달랑 1개다. 여성노동자들은 이용하기 힘들다. 간이화장실들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설치돼 있어도 그 역시 남자들 차지다. 물이 없으니 간단히 씻을 수도 없다.

▲ 사회 전반에서 미투 운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건설업계는 예외다.[사진=뉴시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2월 열린 2017년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 과제 발굴 대국민 공모전에서 ‘건설현장에 여성노동자를 위한 화장실과 탈의실 등 편의시설 설치’ 제안을 최우수상에 선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가부는 노동부에 관련 규정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바뀐 게 없다. 여가부 관계자는 “올해 2월 노동부로부터 관련 규정을 만들기 위한 실태조사를 상반기 중 실시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여가부도 노동부도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 부위원장은 “타워크레인 사고가 많이 난다고 운전석에 CCTV를 달겠다는 게 정부 공무원들의 발상”이라면서 “화장실 다녀올 시간이 없어 급할 땐 차 안에서 해결하기도 하는데, 여성노동자들의 인권조차 고려하지 않으니 뭐가 바뀌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노조든 뭐든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소통창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성 위한 소통창구 전무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굳이 여성을 채용해 그런 것들을 개선해야 되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여성이 늘면 그만큼 창의성이 커지고, 기업의 성과도 좋아지며, 부조리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는 숱하게 많다. 더구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할 것”을 선언한 양성평등기본법에도 위배된다. 김 부위원장은 “건설은 인간의 삶을 개선해주는 산업이지만, 그 현장은 정반대”라면서 “우리도 다 지어진 아파트 단지를 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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