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경제학

3차 남북정상회담이 임박했다. 봄바람이 더 따뜻해지면 ‘판문점’에서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난다. 꽉 막힌 대북사업 탓에 속앓이를 하던 남북경협 관련 기업들은 벌써부터 기대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3차 정상회담이 남북경협의 ‘문門’까지 열어젖힐지는 알 수 없다.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평화 문지방 앞에 놓인 암초들을 분석했다.

▲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2년이 흘렀다. 재개 여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사진=뉴시스]

# 2008년 7월 금강산에 총성이 울렸다. 북한군이 쏜 총알이 한 관광객을 관통했고, 관광객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이른바 ‘박왕자씨 사망사건’은 남북협력관계를 경색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고, 그렇게 끊긴 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 2016년 2월엔 개성공단의 모든 공장이 일제히 가동을 멈췄다. 북한의 핵실험과 군사도발이 이어지자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철수를 결정했다. 그 이후, 개성공단에선 여전히 기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10년의 경색’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남북관계를 꽁꽁 얼렸다. 북측은 시시때때로 미사일을 쏴댔고, 트럼프 정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미국에서 날아오는 소식도 심상치 않았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 핵시설에 국지적 타격을 가하는 ‘코피 전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북폭론’이 쏟아졌고, 핵 공격이 가능한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괌에 추가 배치한 것도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왔다.

10년의 경색을 반전시킨 건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김여정 노동당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올림픽 특사로 방남하면서 해빙무드 조성의 단초를 마련했다. 남북관계에 봄바람이 불자 화해 무드가 삽시간에 퍼지더니, 지난 6일 방북했던 대북특사단이 ‘대형 이슈’를 몰고왔다. “남과 북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무려 11년 만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희망적인 소식”이라면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경협 문제를 의제로 삼아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차 정상회담이 막혔던 남북교류사업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또 지속가능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1ㆍ2차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문도 돌발변수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남북교류사업의 재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너무도 많이 산적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중 대표적인 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다. 유엔 안보리는 원유ㆍ석탄ㆍ정유제품 등의 대북수출을 금지하고, 북한과 합작 사업체를 설립ㆍ운영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고 있다.

 

박순성 동국대(북한학) 교수는 “대북사업은 남북이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대북사업을 하려면 일단 유엔 안보리 제재를 피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미국과 조율을 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지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순직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폈다. “사회ㆍ문화 교류나 민생부분의 인도적 지원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가동 등 경제협력은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선행하지 않으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은 기본”이라면서 “중요한 건 그 이후 북미간 대화 속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홍순직 연구위원은 “우리가 먼저 섣불리 행동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선제적인 조치가 있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면 여론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어 앞으로의 정책적 행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이 심해지는 데다, 미중美中 통상 문제가 심상치 않아 조만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수용 등 구체적인 액션을 취할 공산이 크다. 남북관계 정상화의 불씨가 지금 막 피어나려는 참인데, 성급하게 움직이면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

비핵화 조치 선행해야

하지만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행보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개성공단의 재개를 한반도 평화 무드의 시그널로 삼으라는 것이다. 김진향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전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은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의 가치와 성격을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성공단이 경제 프로젝트이기 이전에 평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 재개 문제가 안보리 제재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폈다. “안보리 제재조항들을 인정하되, 안보리 제재 조항을 피해가는 방법으로 개성공단을 가동할 수 있다. 개성공단을 전면중단한 게 유엔안보리 제재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안보리 제재 중 금융기관 설치문제, 북한산 섬유제품 반출문제, 대량현금지급 문제 등의 제재조치를 이행하면서도 개성공단을 가동할 수 있다. ‘합작사업을 운영하지 못한다’는 안보리의 제재 조항 역시 개성공단 기업은 합작회사가 아니라 남측 독자회사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1ㆍ2차 정상회담 이후 쏟아진 남북교류사업은 사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만이 아니다. 철도ㆍ도로연결 사업, 시베리아ㆍ극동지역 자원 공동 개발, 원산 조선수리소, 남포ㆍ안변 조선협력단지, 백두산 직항로 개설 등 기업과 정부차원의 사업과 평양 청국장공장 건립사업, 방제사업, 공동 영농사업을 비롯한 지역적 사업까지 국내외에 발표된 사업은 수두룩하다.

▲ 문재인 정부가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사진=뉴시스]

이 사업들이 대외변수나 이념 등에 지배되지 않고 줄기차게 진행됐다면, 남측과 북측의 경제는 한단계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경협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1991년 1억1200만 달러(약 1199억원)가량이었던 남북교역 규모는 교역로가 완전히 끊기기 전인 2015년 27억1448만 달러까지 가파르게 늘었다. 여기에 중단됐던 사업까지 진행됐다면 최대 55조원의 경제효과를 봤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3차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경협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일종의 재발방지책이다. 조성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간사는 “남북경협이 정치 변수에 따라 멈추면 안 된다”면서 “남북경협과 정치문제를 분리시키는 법ㆍ조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교류협력법을 개정해서 시설물 보호ㆍ방북 허용 등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허점을 드러낸 남북경협보험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는 평화와 냉전이라는 기로에 서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반도의 추는 평화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북경협사업과 정치를 떼놓는 과제를 놓쳐선 안 된다. 남측 정권이 바뀌어도, 북한이 변심해도 남북경협사업은 계속하는 게 한반도 평화의 중요 변수이기 때문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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