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지지 않은 약속, 차명의 늪

200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른바 ‘삼성특검’이 자신의 1199개 차명계좌를 발견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명계좌를 실명전환하겠다.” 그로부터 10년, 1200개에 육박하는 차명계좌는 실명전환되지 않았다. 되레 또다른 차명계좌가 발견돼 논란을 일으켰다. 거짓말, 언젠가 꼬리가 밟히는 법이다.

2008년 4월 22일 ‘삼성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한지 닷새 만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 회장은 두가지 약속을 내걸었다. 차명계좌의 실명전환과 남은 돈의 사회 환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이 약속은 지켜졌을까.

그렇지 않다. 이 회장이 약속한 차명계좌의 실명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차명계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조4000억원을 차명계좌 해지 및 인출을 통해 찾아갔다. 이 사실은 지난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2008년 조준웅 특검 시 확인된 은행별 차명계좌 및 실명전환 현황’ 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의 조사를 받은 1021개(은행계좌 64개·증권계좌 957개)의 차명계좌가 중 실명전환이 이뤄진 건 은행계좌 1건뿐이었다. 사실상 실명전환의 ‘편법’이 가능했던 건 “차명계좌라고 하더라도 실제 명의인이 있는 계좌라면 실명재산”이라고 판단한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 덕분이었다. 금융위의 해석이 차명계좌의 편법적 활용을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이 회장 자택 인테리어 공사 대금 문제를 수사하던 경찰은 4000억원대 차명계좌 260개를 찾아냈고, 이 회장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또한 금감원은 이 회장이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계설한 차명계좌(증권) 27개의 잔액 정보를 확인했다.

금감원은 과징금 부과 대상인 차명계좌 27개의 금융실명제 시행일 당시(1998년 8월 12일) 잔액이 61억8000만원이라고 밝혔다. 최소 30억9000만원(실명제 시행일 당시 가액의 50% 과징금 징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삼성특검이 밝혀내지 못한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수사할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시효가 2018년 4월 17일로 두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논란, 이젠 털어낼 때가 됐다. 거짓말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 않은가.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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