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정당방위

상대방이 먼저 나를 때렸다. 나도 상대방을 때렸다. 정당방위일까. 내가 때린 그 사람이 죽었다면 어떨까. 죽은 그 사람이 내 여동생을 성폭행하려 했고, 내가 말리려던 상황이었다면 또 어떨까. 아마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이다. 형법에도 명시된 ‘정당방위’ 관련 조항이 까다롭게 적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상대방이 나를 먼저 때렸다고, 상대방을 무기로 때리면 과잉방위다.[사진=아이클릭아트]

괴한이 침입했다. 괴한은 여동생(제희)을 성폭행하려 한다. 위기의 순간, 오빠(제혁)가 들렀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괴한과 사투를 벌인다. 이 사투에서 오빠는 괴한에게 중상을 입힌다. 괴한은 병원 치료를 받다가 결국 숨졌다. 오빠는 ‘정당방위’를 넘어 ‘과잉방위’를 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 받는다. 누리꾼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온 케이블TV 드라마(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한 장면이다.

우리 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방위 규정인데,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사상에 기초한다.

문제는 어디까지를 정당방위로 인정하느냐다. 형법 제21조 제2항은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해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제3항을 통해 “(과잉방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일단 정당방위로 인정받으려면 몇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현재의 부당(위법한 행위)한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혹은 앞으로 일어날 침해를 막기 위한 행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상대방이 나를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해 상대를 먼저 공격하는 건 정당방위가 아니다.

둘째,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여야 한다. 여기서 방위는 수비적 방어에 그치는 보호방위와 적극적 공세를 취해 반격을 가하는 공격방위를 모두 포함하고, 방위는 ‘부당한 침해자’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셋째,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방위에 필요한 한도 내의 행위로써 사회 윤리에 위배되지 않는 상당성이 있는 행위(대판 1991년 9월 10일 91다19913)’를 상당한 이유로 정의하고 있다.

이 요건들을 다 충족해도 제한은 또 있다. 유아나 정신병자의 위법한 침해에도 정당방위는 허용되는 게 원칙이지만, 이들의 공격은 일단 피하고(회피의 원칙), 더이상 피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는 자기를 보호하는 범위(보호방위의 원칙)에서만 행해야 한다. 부부나 친족 등 인척간 정당방위도 제한된다. 또한 방위행위의 필요성이 있어도 아무 수단이나 쓰면 안 된다. 맨손으로 공격하는 상대방을 깨진 병으로 찔러선 안 된다는 얘기다.

요건이 까다롭다보니 형법이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현실에서 인정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TV드라마 속 사례처럼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범인과 치고받던 주인공이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당방위를 행하는 경우는 대부분 위급하고,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런 요건들을 모두 따지는 건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부당한 침해가 강력범죄에 속한다면 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더 많은 판례를 통해 형법의 정당방위 규정이 현실과의 괴리를 좁혀야 하는 이유다.
최염 법무법인 송담 변호사 choy2003@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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