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그라프 특약 ❷ | 콜라보레이션 전략

지난해 패션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루이비통이 의외의 상대와 협업했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패션의 상징 ‘슈프림’이다. 시장 반응도 좋았다. 협업 제품들은 순식간에 품절됐다. 단순히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데 그친 게 아니다. 둘의 콜라보레이션에는 더 복잡한 전략이 숨어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그라프가 이 전략을 파헤쳐봤다.

▲ 콧대 높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미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과 손을 잡았다.[사진=뉴시스]

필자가 애용하는 신발이 있다. 아디다스의 레오파드 패턴 스니커즈다. 이 신발에 애정을 쏟는 건 탄생 스토리 때문이다. 이 제품은 아디다스가 유명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과 협업해 만들었다. 제레미 스캇은 뉴욕 패션계의 ‘악동’으로 꼽힌다. 재기 발랄한 그의 디자인은 발표와 동시에 논란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그래서 필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레미 스캇과 아디다스는 생뚱맞은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브랜드의 협업으로 탄생한 날개달린 하이탑이나 곰인형 운동화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는 콜라보레이션. 통상적으로 2개 이상의 브랜드가 협업해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 제품을 내놓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각자의 브랜드 파워가 기업 생존을 결정짓는 정글 같은 환경에서 손을 맞잡고 일하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콜라보레이션은 효율 좋은 전략으로 통한다. 브랜드의 헤리티지(Heritageㆍ유산)를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 있어서다. 필자는 지금부터 콜라보레이션의 장점을 ‘브랜드 리포지셔닝(Brand Repositioning)’과 ‘브랜드 재생(Brand Revitalization)’ 관점에서 분석해보려 한다.

 

분석 대상은 지난해 봄 패션업계를 충격에 빠뜨린 ‘그 사건’이다. 2017년 파리패션위크 가을ㆍ겨울 남성복 컬렉션의 오프닝은 유명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열었다. 그런데 런웨이를 수놓은 건 루이비통의 상징인 ‘LV 모노그램’이 아니었다. 뜻밖의 로고, 바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이었다. 루이비통이 슈프림과 콜라보레이션을 한 결과였다. 단순히 협업 수준이 아니었다. 슈프림의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힌 가방을 필두로 LV 모노그램 중심에 슈프림 로고를 조합한 베이스볼 셔츠 등 과거 루이비통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과감한 시도를 선보였다.

전세계 패션피플이 열광했다. 콧대 높은 프랑스 명품 기업이 스케이트보더용 옷으로 출발한 비주류 브랜드 슈프림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은 슈프림이 2000년 루이비통 로고를 무단 도용해 법정소송까지 갔던 사이였다. 둘의 협업은 단순히 화제 몰이에서 끝나지 않았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루이비통의 과감한 시도

브랜드 관점에서 봤을 때도 얻은 게 많다. 슈프림을 만나기 전 루이비통의 현실을 진단해보자. 루이비통은 하이엔드 패션의 상징이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패턴백은 40~50대 뿐만 아니라 30대 젊은 여성도 사로잡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그런데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가 루이비통을 보는 시선은 차갑다. 비슷한 디자인의 가방이 거리에 넘쳐나서다. 3초만에 한번씩 볼 수 있단 뜻의 ‘3초백’이란 별명도 이들에겐 식상하고 지루하다. 젊은층은 명품을 들어도 쿨하게 보이길 원한다. 루이비통은 고민에 빠졌다. Z세대는 미래의 잠재적 고객이라서다. 벌써부터 이들의 외면을 받으면 브랜드의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엔 슈프림을 보자. 슈프림의 탄생 시기는 1994년이다. 이후 20여년 동안 뉴욕의 거리 문화를 지탱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대표 제품은 빨간색 작은 박스 안에 브랜드명 ‘Supreme’을 넣은 흰색 티셔츠. 더구나 제품 대부분은 한정판으로 나온다. 티 한장이 중고시장에서 100만원을 넘기도 한다. 매장도 일부러 늘리지 않는다. 현재 슈프림 매장은 미국ㆍ일본ㆍ영국ㆍ프랑스 등 4개국만 있을 뿐이다. 슈프림이 ‘대중의 취향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만의 길을 가겠다’는 비주류 코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슈프림이 어느덧 대중이 열광하는 문화코드가 된 건 아이러니다. 자칫 비주류를 추구하던 방향성이 흔들릴 수 있던 시점, 슈프림은 루이비통의 손을 과감하게 잡았다. 두 브랜드가 각자 냉정히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다. 슈프림은 명품의 묵직한 무게감을 확보해 흔한 거리 브랜드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브랜드 리포지셔닝), 루이비통은 미래세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브랜드 재생)였다.

두 브랜드의 만남은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물론 두 브랜드가 의도한 목표에 적중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이제 협업한 지 1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불협화음도 곳곳에서 보인다. 둘의 협업 제품은 루이비통 제품이 기반이었음에도, 정작 지갑을 연 건 슈프림 브랜드의 마니아들이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루이비통으로선 주인공의 자리를 양보한 셈이다. 슈프림이 귀족 같은 루이비통과 어울리는 걸 마뜩잖게 보는 마니아도 있다. 스트리트 브랜드라면 거리 문화의 태도와 사상을 중요하게 간직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극과 극의 조화

두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진짜 성적표는 둘의 짧은 허니문이 끝나는 시점에서 나올 거다. 슈프림 없이도 Z세대를 유혹해야 하는 건 루이비통의 과제다. 슈프림은 고고한 파리 컬렉션의 런웨이를 홀로 장식하면 대성공이다. 콜라보레이션, 유아독존만 외치는 브랜드 업계의 흥미로운 생존전략이다.
정안석 인그라프 실장(더스쿠프 전문기자) joel@ingraf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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