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의 구멍

연애 중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모 결혼정보회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가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적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피해자의 약 40%는 ‘폭력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한다’고 응답했다. 당사자마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얘기다. 여전히 ‘연애는 개인사’라고 보는 사회 분위기와 미온적인 법체계 때문이다.

▲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맘대로 구속하는 것도 데이트 폭력이다.[사진=아이클릭아트]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서 나는 떠나리….” 남성보컬 5인조 피노키오의 히트곡 ‘사랑과 우정 사이’ 가사의 일부다. 각자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은 이렇듯 다를 수 있다. 연인 사이에서 ‘데이트 폭력’이라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는 것도 어쩌면 각자 생각하는 사랑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중요한 건 ‘데이트 폭력’은 범죄라는 거다.

‘데이트 폭력’은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의 사람 또는 과거에 만났던 관계의 사람 사이에 둘 중 한명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신체적ㆍ정서적ㆍ성적ㆍ경제적 폭력’이라 정의할 수 있다. ‘데이트 폭력’도 폭력이기에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는다.

유형은 다양하다. 먼저 스킨십ㆍ성관계 강요다. 성관계 강요, 피임도구의 사용 막기, 성관계에 따른 임신이나 감염의 방관, 영상촬영 강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스토킹 유형도 있다. 일과 보고받기, 회사나 집 불시 방문, 인터넷 포털이나 SNS 아이디와 비밀번호 요구 등이다. 구타ㆍ누르기ㆍ밀치기ㆍ주취 폭력 등 ‘폭력’, 데이트 강요ㆍ옷차림ㆍ외모 간섭을 비롯한 ‘행동제약’, 사진ㆍ동영상 전송 강요나 욕설 등 ‘수치심 유발’ 유형도 있다.

문제는 데이트 폭력이 그동안 사적 영역의 경미한 범죄로 간주돼왔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처벌 규정이 없다. 실질적인 폭행은 폭행죄나 상해죄가 성립되지만, 대부분은 처벌조차 되지 않는다.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가 전부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늘고 있는 건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선진국은 다르다. 영국의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 교제 중인 남자친구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가정폭력전과공개법(일명 클레어법)’이 있다. 이 법은 배경이 있다. 2009년 영국 여성 클레어 우드는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했다면서 경찰서를 찾아갔다. 하지만 경찰은 연인관계라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결국 클레어는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는데, 그는 수차례 애인을 폭행한 전과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클레어법이 제정됐다.

미국은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을 범죄로 규정하는 ‘여성폭력방지법’이 제정돼 있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의무적으로 가해자를 우선 체포하도록 하는 의무체포제도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2017년 8월 국회에 ‘데이트 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행위의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표창원 의원)됐지만,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법은 멀고, 현실은 시급하다. 결국 아직까지는 예방이 최선이다. 데이트 폭력은 다양한 사전 징후가 있다. ▲의사결정의 일방성 ▲폭언 ▲일상 감시 ▲연인의 지인 차단 ▲상습 자해 등이다. 이런 사전 징후가 보인다면 가급적 관계를 계속하지 않는 게 좋다. 폭행을 당했다면 상해 사진을 찍거나 병원 진료기록을 남겨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처음의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사랑이 폭력으로 끝나지 않도록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거다. 그게 진짜 사랑의 전제조건이라는 건 분명하다.
한재범 푸른시대 법률사무소 변호사 jaybhan@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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