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빅2 소방수의 엇갈린 평가

권오갑(67) 현대중공업 전 부회장과 박대영(65) 삼성중공업 전 사장. 국내 조선 빅2의 수장이었던 두 사람은 2017년 아이러니하게도 ‘유상증자 단행 후 경영일선에서 후퇴’라는 똑같은 길을 걸었다. 평가는 엇갈렸다. 권 부회장은 소방수로서의 역할을 완수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박 사장은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리스크를 초래했다는 오명을 썼다.
▲ 국내 조선 빅2의 두 수장이 2017년을 끝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렸다.[사진=뉴시스]

2017년 말 난데없이 날아든 소식에 조선업계가 술렁였다. 한국 조선의 두 거함巨艦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나란히 유상증자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업황 회복과 실적 개선을 근거로 들며 매수 보고서를 쏟아내던 찰나였다. 조선주株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조선 업계가 회복될 거란 기대도 좌절로 바뀌었다.

당시 유상증자라는 결단을 내린 권오갑(67) 현대중공업 부회장과 박대영(65) 삼성중공업 사장은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공교롭게도 같은 길을 걸었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권오갑 전 부회장은 현대중공업지주 대표 자리를 맡으면서 재신임을 받았다. 박대영 전 사장은 경영 부진의 책임을 통감하며 쓸쓸하게 퇴장했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변수는 무엇이었을까.

■삼성重 발목 잡은 적자 = 먼저 용단을 내린 건 박 전 사장이다. 2017년 12월 6일 삼성중공업은 2017년과 2018년 각각 4900억원, 2400억원의 연간 영업손실이 발생할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1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를 진행할 거라는 계획을 밝힌 것도 이날이었다.

삼성중공업이 2016년 3분기~2017년 3분기 5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연히 1만2500원대에서 맴돌던 삼성중공업 주가는 해당 공시가 발표된 이후 장중 6940원(12월 27일)까지 떨어졌다. 6000원선이 깨진 건 2005년 5월 이후 약 12년만이었다.

회사 관계자가 밝힌 유상증자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계획했던 구조조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증가한 데다 2018년 조업이 가능한 수주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경영실적 악화에 따른 자금경색을 우려해 가용자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유상증자가 필요했을 정도로 자금난에 빠진 이유가 ‘해양플랜트’에 있다는 지적도 많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해양플랜트 인도가 지연되면서 발생한 보상금과 충당금 등이 드러난 것”이라면서 “특히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비중이 컸기 때문에 손실도 그만큼 클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양플랜트 사업을 주도했던 인물이 박대영 전 사장이었기 때문에 ‘해양플랜트 탓에 손실이 발생했다’고 속시원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 전 사장은 해양플랜트 전공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1997년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생산운영실장 이사를 역임한 그는 2012년 CEO에 오른 뒤에도 해양플랜트를 키우는 데 전념했다. 당시 삼성그룹은 박 전 사장을 사장 자리에 앉힌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공법혁신을 통해 해양설비와 특수선박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체제로 변모시켰다. 삼성중공업의 체질개선과 사업구조 혁신을 이끌 것이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박 전 사장은 해양플랜트 수주 비중을 2008년 32%에서 2012년 88%로 크게 늘렸다. 하지만 이는 박 전 사장의 발목을 잡았다. 기술ㆍ경험이 부족했음에도 무리하게 수주를 꾀한 탓이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의 하부선체를 만드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상부구조를 만드는 기술은 부족하다”면서 “하지만 해양플랜트 전체 설비를 무리하게 수주한 탓에 인도시점과 원가를 맞추지 못했고, 이는 국내 조선사들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 위기가 박 전 사장의 경영실패에서 기인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중 위기 초래한 해양플랜트

박무현 애널리스트는 “수주절벽보다 위험한 건 수준에 맞지 않게 수주하는 것”이라면서 “중국 최대 조선사였던 룽성熔盛중공업이 무리하게 수주했다가 잇따른 인도지연과 계약취소로 무너진 건 이를 잘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현대重 무차입 경영 실현 = 현대중공업이 1조287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건 삼성중공업의 유상증자 공시가 발표된 지 20일 만인 2017년 12월 26일이었다. 현대중공업도 2017년 4분기 3621억원가량의 영업손실이 발생할 거라고 예고됐지만 삼성중공업처럼 연간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될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히 자금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유상증자가 아니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남은 차입금을 모두 해소해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유상증자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주가도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가파르게 추락했지만 삼성중공업과 다른 평가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식투자컨설팅업체 오즈스톡의 조민규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현대중공업은 겉으로 보기에 재무적으로 위험요소가 크게 없다. 부채비율(2017년 3분기 기준 144.21%)이 그다지 높지 않은 현대중공업이 굳이 유상증자를 하면서까지 무차입 경영을 하겠다는 건 금리인상 압박 때문일 공산이 크다.”

현대중공업의 재무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건 권 전 부회장의 전략 덕분이었다. 2014년 현대중공업에 소방수로 투입된 권 전 부회장은 약 3조원에 달하던 영업손실을 2016년 흑자(영업이익 1조6419억원)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줄어든 사업규모에 비해 비대한 몸집을 줄여 체질을 개선한 게 주효했다.

2014년 2만8300명에 달했던 직원을 2017년 9월 1만6634명까지 줄이고 순환휴직을 시행하는 등 고정비를 줄였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호텔현대 등 3조원가량의 보유자산도 매각했다. 2017년 4월 1일 비조선사업부를 인적분할하면서 지배구조개편에서도 나름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는 평가다. 다만 잦은 구조조정 탓에 기대를 모았던 노사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한 건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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