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왜 오르나

서울 집값을 둘러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책은 계속 나오는데, 집값은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저금리 시대 종료, 버블시장 등 각종 논란이 판치지만 부동산은 여전히 으뜸 투자처로 꼽힌다. 왜일까. ‘과거 숱한 고강도 규제에도 서울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다’는 믿음의 위력이 부동산 규제의 힘보다 훨씬 세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 서울 집값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사진=뉴시스]

# 서울 은평구에 사는 A씨는 고민에 빠졌다. 올해 4월 전세 만료를 앞두고 있는 그는 ‘내 집 마련’과 ‘전세 계약 연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집값은 안정화할 것”이라는 정부를 믿고 전세 계약을 연장하고 싶다. 하지만 주변 아파트 분양권에 얹힌 수천만원의 웃돈에 자꾸 눈길이 간다. 시장은 여러 차례 규제정책을 꺼낸 정부의 위협에 콧방귀만 뀌고 있는 듯하다. 뉴스에선 연일 ‘서울 집값 상승’을 보도하고 있어서다. “지금이 집을 살 적기가 아닐까.” A씨는 오늘도 밤잠을 설쳤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의 1월 첫째주 서울 집값 상승률이 심상치 않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월 첫째주 집값 상승률은 0.33%를 기록했다. 연도별로 비교하면 2002년 0.59%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다.

무척 단기간인 “1월 첫주 집값이 올랐다”는 통계에 시장이 유난을 떠는 이유는 따로 있다. 겨울철은 부동산 시장의 대표 비수기다. 집값이 하락하거나 보합세를 보일 때가 많았다. “빚내서 집사라”던 박근혜 정부의 5년도 1월 첫째주 집값 상승률은 -0.03~0%로 보합세를 보였다. 결국 올해 1월 첫째주 집값 상승률은 비정상적인 현상이라는 거다.

들썩이는 서울 부동산 시장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7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1.48% 올랐다. 2016년 연간 0.71% 상승한 것에 비해 오름폭이 2배 이상 컸는데, 이를 견인한 게 서울이다. 2017년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은 3.64%로 지방 상승률(0.68%)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규제가 먹히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2017년 한해에만 크게 네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았다. 서울 지역이 집중 타깃이었다. 신호탄은 6ㆍ19 대책이었다. 부동산 시장 과열 현상을 진정시키기 위해 규제를 집중해온 청약조정지역을 기존 37곳에서 40곳으로 늘렸다. 해당 지역에 한해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하는 맞춤형 대책을 내놨다.

“집값 잡으면 피자 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나온 8ㆍ2 대책은 강도가 더 셌다. 서울 전역에 LTVㆍDTI 비율 축소,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청약가점제 100%, 다주택자 양도세소득세 중과重課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이 대부분 들어갔다. 처음엔 먹히는 분위기였다. 8월 시장은 주춤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9월부터 다시 상승 랠리를 탔다. 10ㆍ24 가계부채 종합대책, 12ㆍ13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이후에도 집값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꿋꿋한 서울 집값

정부로선 당혹스러운 결과다. 집값을 잡기 위해 큰 칼(규제)을 네 개나 뽑아들었는데, 효과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고 말한다. 익명을 원한 한 부동산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어지럽히는 주범을 ‘투기꾼’으로 봤다. 그래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단기투자자들(다주택자들)만 잡으면 집값이 잡힐 걸로 생각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공공연하게 다주택자를 투기 주범으로 지목했다. 규제의 타깃도 여기에 맞췄다. 하지만 이 진단은 빗나갔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센터장은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제는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집값이 오를 거라고 보고 베팅하는 이들 모두가 정말 나쁜 투기 세력일까. ‘서울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 이전 정부의 책임은 아닐까.” 서울 집값 상승 이유를 다주택보유자나 투기꾼들에 한정한 게 패착이라는 거다.

실제로 한국의 부동산은 매력적인 투자처다. 금리가 오르고 금융시장에 자금이 몰려도 부동산은 굳건하다. 내 집 마련을 고민할 때도 ‘이 지역 집값이 오를까’가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특히 서울은 유별나다. 주거 수요를 부추기는 정부발發 호재가 쌓여있다. 50조원이 투입되는 도시재생 정책이 대표적이다. 교통 인프라, 대규모 쇼핑센터 등은 갈수록 촘촘한 간격으로 들어서고 있다. 낡은 동네와 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미래형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 중이다. ‘더 좋은 집’을 원하는 일반 서민들도 투기꾼으로 모는 건 편협한 시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부동산 시장’과 관련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서울 집값이 무조건 오른다는 것은 일종의 미신”이라며 “서울 강남에 투자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것은 실증적 데이터에 기초하지 않은 섣부른 진단”이라고 낙관했다.

“집값 오른다”는 신화 깨라

낙관론의 근거는 또 있다. 본격적인 규제책이 2018년 발동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신新DTI’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다주택자 양도세소득세 중과’ 등의 적용 시기는 올해다. “2018년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이유다.

하지만 이 기대마저 깨진다면 그땐 어쩔 도리가 없다. 마지막 남은 카드가 ‘보유세 인상’인데, 고소득층의 조세 저항을 정부가 뚫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여당의 입장도 오락가락이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정부 차원에서 ‘서울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믿음을 깨기 위한 설득에 돌입해야 한다”면서 “이 믿음은 수십년간 단단해졌기 때문에 몇차례의 규제로는 깰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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