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의 산재 여부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병원에서 의사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진단을 끊임없이 내놓는다. 그럼에도 업무상 스트레스는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왜일까. 업무와 스트레스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현행 법체계에선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스트레스와 산재의 상관관계를 변호사닷컴에 물어봤다.

▲ 업무상 스트레스는 산재로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다.[사진=아이클릭아트]

“스트레스 때문이다.”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에게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의사가 병명을 몰라 대충 둘러대는 게 아닌가 싶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심심치 않다.

대상을 직장인으로 좁히면, ‘업무상 스트레스’가 가장 많을 것이다. 과한 업무, 연장근로, 실적 독촉 등으로 맘 편한 직장인들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요즘은 SNS와 클라우드 서비스로 인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숱하다.

그럼에도 업무상 스트레스를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연도별 정신질환 산재 승인율을 보면, 2011년 21.4%, 2012년 42.7%, 2013년 39.3%, 2014년 36.7%, 2015년 38.7%로 50%를 넘긴 적이 없다. 사고로 인한 산재 승인율이 94.2%고, 전체 질병으로 인한 산재 승인율이 60%인 점을 감안하면 승인율이 매우 낮다. 업무상 스트레스를 인정하는 판결들도 제각각이다.

두개의 사례를 보자. 교사 A씨는 지적장애인시설에서 일하다 직장 동료들의 모함을 받았다. A씨는 “동료들의 모함으로 스트레스성 장애를 얻었다”면서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직장이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주지 않자 A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모함은 직장 내 통상적인 갈등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업주의 미온적인 대처로 인해 A씨의 스트레스성 장애가 악화했다고 볼 수 있다.”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거다.

다른 사례를 보자. 렌터카 업체에 일하던 B씨는 상무로 승진한 뒤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사례와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B씨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호소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초과 근무시간이 하루 1시간 정도였다. 그 정도의 업무량은 통상적인 것이다.”

법원의 판단이 달랐던 이유는 뭘까. 바로 ‘업무 연관성’이다. 현행 업무상 재해 관련 규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근로자는 “업무로 인해 사고나 질병이 발생한 때”에만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업무와 스트레스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할 수 있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현재 업무상 재해의 범위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확대됐다. 2013년부터는 업무와 연관된 트레스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산업재해에 포함됐다. 하지만 업무와 정신적 재해 간 인과관계를 따지는 법적 기준은 여전히 미흡하다. 1심과 2심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수두룩한데다, 입증 책임도 여전히 근로자의 몫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73.4%는 직장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연령별로는 30대(80.9%)와 40대(78.7%)가 가장 높은 스트레스 체감도를 보였다. 20대(73.4%)가 그 뒤를 이었다. 젊은이들이 과중한 스트레스로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법은 너무 멀리 있다.
이용환 법무법인 고도 변호사 godolaw@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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