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폰 가격 공시제 괜찮나

“가격을 공개해 중고폰 시장을 활성화하겠다.”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칼을 뺐다. 타깃은 중고폰 시장이다. 최근 나오는 제품들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주머니가 가벼운 국민들을 저렴한 중고폰 시장으로 유도하는 건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이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격으로만 좌지우지되는 시장이 아니라서다. 정부가 또 엉뚱한 곳을 긁는 건지도 모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중고폰 가격 공시제의 허와 실을 살펴봤다.

▲ 정부가 중고폰 거래 활성화를 위해 내년부터 중고폰 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사진=뉴시스]

올해 정부가 유독 관심을 쓴 시장이 있다. 이동통신 시장이다. 출범 전 약속했던 ‘가계통신비 인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부는 여러 각도에서 통신비 인하를 꾀했다. 그중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 취약계층 통신비 감면 확대 등 눈에 띄는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성과도 적지 않았다. 주요 공약으로 걸었던 기본요금 완전 폐지의 타깃은 2Gㆍ3G 가입자로 좁혀졌다. ‘보편요금제’ ‘단말기 완전자급제’ 등 꺼내는 카드마다 “국내 통신시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빈축을 받았다.

새 전략이 필요한 시점, 정부가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번엔 단말기다. 스마트폰 단말기 가격이 비싸다는 건 공공연한 인식이다. “심리적 저항선인 (단말기 가격) 100만원을 넘기지 말라”는 시장의 불문율이 깨진 지도 오래다. 첨단 기능이 추가되면서 원가가 높아진 게 이유다. 연간 단말기 구입비용만 12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다고 제조사에 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중고폰 시장 활성화’라는 우회전략을 꺼내든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현재 중고폰 시세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채널은 없다. 온라인 중고폰 거래 커뮤니티에 떠도는 가격이 일종의 ‘심리적 가이드라인’이다. 같은 단말기라도 중고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던 까닭이다. 정부가 ‘중고폰의 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며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관련 예산까지 배정했다. 업계를 만나 구체적인 방안을 조율 중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통신요금 정보 포털 ‘스마트초이스’에서 중고폰 시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얼핏 효과가 금세 나타날 것 같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하는 IT 업계 관계자가 뜻밖에도 많다.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중고거래는 누가 먼저 샀던 걸 되파는 게 본질이다. 당연히 개인과 개인의 거래가 주를 이룬다. 중고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중고차 시장’ 정도다. 이마저도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지, 가격을 못 박기 위해서는 아니다.”

“가격 가이드라인 제시”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보자. 중고폰 시장은 복잡하다. 일단 제품이 많다. 한국 시장을 양분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매년 두차례씩 플래그십 모델을 내놓는다. 특정 기능에만 집중한 실속형 모델을 출시하는 건 따로 계산된다. 여기에 애플도 매년 한차례씩 제품을 발표한다. 최근에는 화웨이, 샤오미, 소니, 레노버 등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도 국내 시장을 노크 중이다. 삼성전자가 2013년 이후 ‘갤럭시S’ ‘갤럭시노트’란 이름으로 쏟아낸 단말기만 20여개가 넘는다.

단말기 하나를 두고도 변수가 숱하다. 침수, 업그레이드 가능, AS 가능 여부 등 따져봐야 할 게 많다. 현재 중고폰 시장은 이런 기준에 따라 크게 ‘A급’ ‘B급’ ‘C급’ 등으로 나뉜다. 물론 이마저도 정확한 기준이 아니다. 중고폰 판매 사이트마다 다르다. 액정 파손, 스크래치, 이어폰, 박스 패키지 유무 등 품질 외적인 요소도 가격을 결정한다. 이 또한 신형 단말기가 어떤 기능을 포함하고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춤을 춘다.

이럴 경우 정부가 복잡한 중고폰 시세를 제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고폰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가격만 제시하는 정부의 움직임이 시장에 오히려 불완전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면서 “가령 품질 보장 등의 이유로 프리미엄 중고폰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부가 공인한 가격과 시장이 만든 가격을 두고 헷갈릴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럼에도 정부는 왜 ‘중고폰 가격 공시’를 꺼내든 걸까. 이 답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서 찾을 수 있다. 단통법은 여러 뒷말을 낳았지만 이통3사가 변칙적으로 쏟아내던 단말기 보조금을 공시해 투명한 유통시장을 확립한 것만은 성과로 꼽힌다. 정부는 중고폰 시장에도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격 외에도 변수 많아

하지만 중고폰이 정책 담당자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지 의문이다. 한현배 카이스트 통신공학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시도는 좋지만 진단이 잘못됐다. 단통법은 일부 통신소비자에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시장 활성화’가 목적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중고폰 시장은 현재 규모가 어떻고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파악도 못하는 실정이다. 가격 공개만으로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내 중고폰 시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전무하다. 이미지도 나쁘다. 일부에서는 ‘범죄의 온상’으로 통한다. 개인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불안감도 크다. 정부의 중고폰 활성화 정책, 넘어야 할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첫발은 잘못 내디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