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범 7개월만의 산업정책 방향

 

문재인 정부의 산업정책이 마침내 윤곽을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8일 국회에 보고한 ‘새 정부 산업정책 방향’이 그것이다. 기존의 특정 산업, 대기업, 수도권 쏠림에서 탈피하는 혁신을 통해 2022년까지 일자리 30만개 이상을 창출하겠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중견기업을 성장의 핵심축으로 삼아 매출액 1조원 이상 중견기업을 2022년까지 80개로 늘린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신산업 프로젝트로는 전기ㆍ자율 주행차, 사물인터넷(IoT) 가전, 에너지 신산업, 바이오ㆍ헬스,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등 5대 산업을 꼽았다.

산업은 주력산업과 신산업이 함께, 기업은 대ㆍ중견ㆍ중소기업이 함께, 지역은 수도권과 비非수도권이 함께 성장하도록 산업ㆍ기업ㆍ지역 혁신을 추진한다는 게 골자다. 정부 출범 7개월여 만에 나온 산업 비전치곤 빈약하다. 탈원전 등 에너지정책 전환에 치중하다가 산업정책 수립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들을 만도 하다. 곳곳에서 현 정부 정책 키워드인 ‘혁신’을 강조할 뿐 세부 실행계획과 구체적 방법론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5대 신산업 선도 프로젝트에서 반도체ㆍ디스플레이처럼 세계시장 1위 산업은 중국 등 후발국과의 격차를 5년 이상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도체 굴기’를 외치는 중국과 기술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면서 1~2년 내 1위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태양광ㆍ풍력 등 에너지 신산업과 바이오ㆍ헬스 산업은 구현되지 않은 기술이 태반인데 여기서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중견기업을 혁신성장의 주체로 육성한다지만 막연하긴 마찬가지다. 2015년 기준 34개인 월드 챔프 중견기업을 80개로 늘리겠다는 문구만 들어있지 구체적 계획은 없다. 지난 정권이 내놨던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의 판박이다.

산업부는 설명자료에서 미국ㆍ독일ㆍ일본ㆍ중국 등 글로벌 경쟁강국들이 국가 주도의 강력한 산업정책으로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고 자국 산업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미국혁신전략’, 독일의 ‘플랫폼 인더스터리 4.0’, 일본의 ‘신산업구조 비전’, 중국의 ‘중국제조 2025’ 등을 살펴본 것이리라.

미국혁신전략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09년 처음 발표돼 2011년, 2015년 두차례 수정 보완됐다. 첨단자동차, 정밀의학, 스마트시티, 우주산업 등 9대 전략산업에 집중 투자해 미국 경제를 혁신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은 2012년 독일이 채택한 4차 산업혁명 로드맵이다. 전통적 강점인 제조업에 IoT와 스마트공장 시스템 등을 접목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신산업구조 비전은 아베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30년을 목표 시점으로 잡은 4차 산업혁명 전략이다.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 스마트 생산ㆍ보안ㆍ물류ㆍ소매ㆍ농업, 스마트 생활(주택ㆍ에너지ㆍ도시), 건강 증진 등을 전략적 추진 분야로 선정했다. 중국제조 2025는 명칭에서 보듯 2025년을 목표 시점으로 잡아 2015년 발표한 중국의 산업고도화 전략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물론 항공우주, 신소재,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을 망라한다.

주요국 산업정책에 대한 벤치마킹부터 잘못했다. 미국ㆍ독일은 물론 인접한 일본ㆍ중국까지 10년 이상 장기 로드맵을 짜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한국은 여태 전통 제조업이냐 신산업 내지 서비스업이냐, 대기업이냐 중견ㆍ중소기업이냐, 수도권이냐 지방이냐 타령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처럼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는 주제로 갑론을박만 하고 있다간 언제 ‘경제의 병자호란’ ‘경제의 임진왜란’에 직면할지 모른다.

‘2022년까지 일자리 ○만개 창출, 중견기업 ○개 육성’이란 정책목표도 참 딱하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이라고 산업정책 유효기간도 5년이어서야 되겠는가. 경쟁력을 갖춘 산업 분야와 기업들은 정권과 관계없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정부는 12ㆍ18 산업정책 방향을 중심으로 내년 1분기까지 업종ㆍ기능별 세부 이행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가 자원과 인력ㆍ기술을 동원해 이룰 수 있는 산업 비전, 정권과 관계없이 꾸준히 추진해야 할 장기 로드맵을 새롭게 제시하고 구체적 실행방안도 짜길 고대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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