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 최저임금 인상의 파급 효과는 중소기업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이라도 최저임금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사진=뉴시스]

정부가 9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부담을 재정에서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나랏돈 3조원으로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월급 190만원 미만 근로자 300만명에게 월 13만원씩 지원한다는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16.4%)이 직전 5년 평균 인상률(7.4%)을 초과한 부분(12만원)에 노무비용 등 추가부담금(1만원)을 합한 금액이다.

이는 내년 1년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할 경우를 가정한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저소득층 소득이 감소하는 등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7월 최저시급을 올해 6470원에서 내년 7530원으로 올렸다.

민간기업 근로자 임금을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대선 공약에 맞춰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려놓고선 고용이 줄어들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자 재정 지원 방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수혜 대상인 소상공인과 영세기업들은 ‘불안감을 1년 유예하는 미봉책’이란 반응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심의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게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한시적이라면서도 내년 상반기 집행 상황을 봐가며 하반기에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최저임금 재정 지원의 연장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1년 보전해주다 끊으면 반발이 심할 게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민간기업 인건비 지원에 국민 세금을 투입할 텐가. 대선 공약대로 3년 뒤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올리고 이번 계획처럼 정부가 지원하면 5년 동안 20조~30조원의 재정이 필요할 게다.

최저임금 인상은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하고 취약계층의 교육 기회를 확대시켜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운 배경이다. 그러나 감내할 수준을 넘어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고용을 줄이고 소상공인과 영세기업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등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음식점 등에서 종업원을 줄이는 대신 무인 주문기(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등 부작용을 빚고 있다. 이번 정부 계획이 시행되면 지원금을 받기 위해 종업원 수를 30인 미만으로 낮추려고 작은 업체들이 감원에 나설 수도 있다.

최저임금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사활이 달린 문제다.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의 98.7%가 중소기업에 고용돼 있다.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반가운 일이지만, 소상공인과 영세기업에는 부담이다. 오죽하면 민노총 출신 문성연 노사정위원장이 중소기업의 지급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을까.

정부는 이제라도 최저임금 인상의 파급효과를 면밀히 분석해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정기적인 상여금, 교통비, 중식비 등을 포함할지 최저임금 계산 방식을 바꾸는 일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은 비정규직 제로(0)화, 탈원전과 함께 현 정부가 조급하게 서두르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속 정책 3종 세트’라고나 할까. 세 정책 모두 방향은 맞지만 너무 서두를 경우 부작용과 후유증이 만만찮은 것들이다. 대선 공약이지만 문재인 정부 5년 임기 내 완결하기 힘든 사안이다. 경제는 당위성과 명령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회ㆍ경제적 여건과 시장 상황을 봐가며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미 소득주도 성장을 보완하는 정책으로 혁신성장을 거론하지 않았던가. 김동연 경제팀은 신산업 육성과 활력이 넘치는 중소기업ㆍ벤처 생태계 조성을 핵심으로 하는 혁신성장 전략을 보다 주도면밀하게 마련해 실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소ㆍ영세기업들이 최저임금 지급 능력을 갖추도록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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