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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생계비도 못 버는 빈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이유다. 하지만 이 법은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연락이 두절된 자녀의 소득이 조회된다는 이유로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부양을 못 받는 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이 법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는 점이다.

자식이 장성해서 키워준 부모를 봉양하는 건 당연하다. 법(민법 제974조)도 같은 입장이다. “직계 혈족과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그 밖의 친족 사이에는 부양의무가 있다.”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 능력이 없을 경우에만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이유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기초생활급여를 통해서다.

그런데 이 법은 맹점을 갖고 있었다. 현행법은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을 부양의무자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일정 수준(2016년 기준 월 484만7468원)을 넘지 않아야 기초생활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

문제는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소득을 버는 자녀가 있으면 기초생활급여 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2015년 소득이나 재산이 수급자 선정기준에 충족됐지만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빈곤층은 약 93만명에 달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올해 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소하(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기초생활보장법 운영에 국민과 수급권자의 민주적 참여 보장 ▲집이 없는 수급신청자의 신청권 보장 ▲수급권자 이의신청 시에도 종료까지는 수급권 유지 ▲수급 신청 후 완료기간 단축(60일→30일) 등이 포함돼 있다.

법이 개정되면 오랫동안 왕래나 연락이 없음에도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조회된다는 이유로, 혹은 기존에 수급자로 혜택을 받다가 10년 이상 연락도 되지 않던 자녀와 연락이 됐다는 이유로 혜택을 박탈당하는 불합리한 일이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부양의무제 폐지에 따른 사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많다.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시 연 10조원의 예산이 필요(국회입법조사처)하다는 게 이유다. 빈곤층이 빈곤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상속하거나 재산을 빼돌린 후 급여를 수급하는 이들이 생기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은 꼭 필요하다. 현행 ‘부양의무자 기준’은 ‘잠재적인 부양 능력’을 바탕으로 ‘실제 부양이 이뤄질 것을 예측’하고, 이를 통해 ‘기초생활보장 신청자의 수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또한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ㆍ기피할 때 수급자격을 인정받으려면 신청자가 이 사실을 입증해야 수급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난제가 있었다. 기초생활보장법이 가족 간 갈등이나 가족해체의 원인으로 작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양책임이 가족ㆍ정부ㆍ사회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2002년 18.2%에서 2016년 45.5%로 증가했다. 부양의무를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ㆍ지역사회가 함께 신경 써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 문제를 재정적 부담만으로 생각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용환 법무법인 고도 변호사 godola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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