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 빛과 그림자

대형마트 의무휴업 5년. 소비자들은 마트가 문을 닫는 날,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렸을까. 아쉽게도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바람과 달리 대형마트가 쉬는 날, 소비자들은 소비 자체를 줄이는 선택을 했다. 편법적으로 판로를 연 대형 유통채널로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도 많았다. 의무휴업 바로 그날, 소비자의 지갑은 닫힌 반면 편법은 꿈틀댄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든 국회든 이 제도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의 빛과 그림자를 분석했다.

▲ 전통시장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2년 1월 정부는 대규모점포와 준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을 제한(오전 0시~오전 8시)하고, 의무휴업을 지정(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하는 항목(제12조 2항)을 추가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한다는 목적이었다.

1년 후인 2013년 4월엔 규제 강도를 더욱 높였다. 영업시간 제한 범위를 ‘오전 0시~오전 10시’로 2시간 연장하고, 의무휴업일은 ‘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에서 ‘매월 이틀’로 정했다.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한 5년, 정부의 취지 또는 바람대로 전통시장은 살아났을까.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대형마트를 이용하던 소비자들은 의무휴업일에 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찾아야 하고, 전통시장은 그런 소비자 덕분에 매출이 늘어야 한다. 결과는 어떤가. 표면적 결과는 ‘매출 증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하루 평균 매출은 의무휴업 규제가 시작된 2012년 4502만원에서 2015년 4812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실제론 매출이 감소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비판적 평가가 더 많다. 전문가들은 “매출이 소폭 증가한 건 사실이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줄어든 셈”이라고 꼬집었다. 전통시장 상인들이 여전히 “마트가 시장 손님을 빼앗아 간다” “마트 때문에 손님이 안 온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대형마트는 대형마트대로 억울하다. 가뜩이나 소비가 침체돼 있는데 한달에 두번, 그것도 휴일에 문을 닫아야 하니 타격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형마트의 출점과 영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전통시장 살리는 것과 대형마트 규제는 연관성이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건 당연한 결과다.

 

최근 대형마트 규제의 ‘실효성 논란’을 뒷받침하는 연구보고서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와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경영학) 교수가 2012년 1월 1일~올해 6월 30일 소비자가 사용한 신한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해 실시한 공동연구 결과를 보자. 대형마트 규제는 전통시장의 매출 향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동반 하락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용구 교수는 “대형마트 휴일규제 초기에는 대형마트에 대한 소비가 감소했지만 규제가 장기화하면서 전통시장과 개인슈퍼마켓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면서 “오프라인 소매업태 전반에 걸쳐 소비둔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의 매출 감소는 주변 상권의 침체로까지 연결됐다. 조춘한 교수는 “휴일에 규제를 하면 주말에 대형마트 고객이 다른 점포를 이용하는 기회까지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이용 고객은 대형마트를 이용하면서 주변 점포도 동시에 이용한다. 대형마트 때문에 시장에 가지 않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형마트 때문에 시장에 간다.”

대형마트 쉬는 날 어디로 가나

소비자단체인 E컨슈머의 연구조사도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E컨슈머가 2016년 9월 29일부터 올해 5월 9일까지 5개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소비자 접근성 측면에서 전통시장 방문자 수를 분석한 결과, 소비자들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휴무일보다 영업일에 전통시장을 더 많이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기보다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를 비웃는 편법 논란도 문제다. 규제 대상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만 한정돼서다. 유통 대기업들은 정부가 규제 강도를 높이자 복합쇼핑몰ㆍ아웃렛ㆍ온라인몰ㆍ편의점 등 규제 문턱이 낮은 다양한 유통 채널로 발을 넓힌 거다. 이들 매장 역시 골목상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만 규제에서 자유롭다.

이케아 특혜론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케아는 복합쇼핑몰만큼 매장이 큰 데다 푸드코트는 물론 다양한 생필품을 팔고 있지만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복합쇼핑몰 규제’ 대상을 비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국회는 낮잠만 자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29건 발의됐지만, 가결된 건 1건뿐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이 의무휴업제를 ‘생존의 마지막 전략’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익명을 원한 유통 전문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국내에 편의점이 들어올 때, 대형마트가 들어올 때…, 뭐 하나 들어올 때마다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기다려줘야 한다며 다른 업태를 규제했다. 그게 벌써 몇 년인가. 그래서 전통시장은 살아났나? 아니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냥 김치를 파는 게 아니라 젓갈김치, 생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만들어놓고 팔면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간다. 그 시장만의 특색을 살리는 물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팔 수 없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한 전통시장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용문전통시장은 1948년 개설해 70년을 지나온 시장이다. 하지만 그만큼 시장도 나이가 들어 점점 활력을 잃고 있다. 시장 한쪽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게다가 인근엔 이마트 용산점(1.21㎞)과 이마트 마포점(1.17㎞)까지 들어섰다.

6월 취임한 반재선 상인회장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면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전통시장 가는 날’ 이벤트다. 용문시장 상인들은 최근까지 일요일에 영업을 하지 않았다. 반 회장은 그런 상인들을 설득해 인근 대형마트가 쉬는 일요일에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매출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대답이 33%에 불과하고 참여 점포도 아직까진 60% 수준이지만 그는 하나하나 시도하다보면 서서히 바뀔 거라고 믿는다.

전통시장이 변해야 한다

“상인교육 등 우리 스스로 하기 어려운 부분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우리도 일방적인 도움만 바라는 건 아니다. 정부 지원에만 마냥 의존할 수는 없어서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인들 대부분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라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상인들이 먼저 깨어야 시장이 산다.”

돈벌이에만 집착했던 대형마트도 상생에 눈을 뜨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마트의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다. 전통시장 내에 입점하는 이마트가 임대료 일부와 편의시설 등의 부담을 떠안는 방식이다. 이마트와 전통시장상인회에 따르면 충남 당진어시장, 경북 구미 선산봉황시장, 경기 안성맞춤시장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3호점이 입점하면서 시장 매출이 최대 5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의무휴업제가 효율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와 법망을 정비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책상을 벗어나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다. 헌신과 발품보다 효과적인 무기는 없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