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덩케르크(Dunkirk) ❸

영화속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감동적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이는 출구 전략을 세우지 않은 처칠의 실책이다. 전략가 나폴레옹도 비슷한 우愚를 범했다. 러시아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은 ‘출구’를 확보하지 않은 전략으로 50만 군사를 잃었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문’을 열고 다시 나올 때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40만 병력이 ‘덩케르크’라는 북부 프랑스 한적한 해변에서 하염없이 철수선박을 기다리는 장면은 조금은 황당하다. “이거 실화임?”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라의 운명은 물론 세계의 운명까지 가늠하는 대전쟁에서 국력을 모두 쏟아부은 40만 병력이 해수욕장 백사장같은 해변에 몰려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다. 
 
전사戰史에 유사한 ‘철수작전’으로 기록되는 우리나라의 ‘흥남철수작전’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대형 군수송선으로 한국군과 미군 약 10만명과 민간이 10만명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한다. 반면 해수욕하기 딱 좋을만한 ‘덩케르크’ 해변에는 대형 수송선의 접안 자체가 불가능하다. 영국 어부의 통통배, 놀잇배 수백척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동원돼 백사장의 병사들을 되는대로 실어 수송선에 옮겨 태우는 눈물겨운 철수작전을 펼친다. 
 
리들리 스캇 감독은 알록달록한 수백척의 크고작은 민간 선박들이 덩케르크 해변으로 달려가는 ‘장관壯觀’을 감동적으로 연출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실상은 사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장관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가관可觀’에 가깝다. 40만 대군을 투입하면서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출구’를 생각하지 않은 처칠의 실책이다. ‘출구전략’의 부재인 셈이다. 
▲ 덩케르크 백사장에 운집한 40만 연합군은 '독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812년 대참사로 끝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역시 ‘출구’를 먼저 확인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백전백승의 기세를 탄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러시아에 일거에 쏟아 부으면서도 ‘만약의 경우’ 빠져나올 출구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과연 전략가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은 동토의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과정에 40만명이 동사하거나 전사하고 10만명이 포로가 되고 약 6만의 병사들만 프랑스로 귀환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참변을 당한다. 
 
경찰에 쫓기는 자는 그가 독립투사든 잡범이든 항상 도망칠 ‘뒷문’이 있는 집을 구하고, 식당에 들어가도 우선 뒷문부터 확인한다고 한다. 뒷문 없는 식당은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다. 처칠이 지휘하는 프랑스 원정군은 독일군이 장악하고 있는 프랑스로 진격해 들어가면서도 ‘뒷문’도 확인하지 않고 밀고 들어가다 ‘덩케르크’라는 풍광 좋은 백사장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몰리는 수모를 당한다. 나폴레옹은 ‘돌아갈 길’은 생각도 안 하고 광활한 러시아 대륙으로 60만 대군을 이끌고 들어간다. 전쟁사에 찬연히 빛나는 처칠과 나폴레옹 모두 ‘뒷문’부터 챙기는 잡범만도 못했던 셈이다.
 
들어갔으면 반드시 나와야 한다. 입구와 출구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입구와 출구가 같아도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은 모든 것이 다르다. 같은 등산로로 올라가고 내려와도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사뭇 다르다. 고은 시인의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대단히 짧은 시는 대단히 시사적이다. 나폴레옹은 분명 같은 길을 통해 러시아로 들어가고 나왔지만 진격해 들어갔던 그 길과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나오는 그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흔히 ‘두개의 상반된 얼굴’을 상징하는 ‘야누스(Janus)’는 로마신화에서 ‘시작’을 뜻하고 그래서 ‘1월(January)’의 어원이기도 하고, ‘문門의 신’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문’을 열고 다시 나오는 ‘끝’이 있음을 말해준다. 시작과 끝은 반대이지만 사실은 하나다.
▲ 정치권에서는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이 어지럽게 대립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권이 바뀌고 ‘적폐청산’ 주장과 ‘정치보복’ 주장이 거칠게 부딪친다. 과거 정권의 비리와 부조리를 파헤치고 단죄하는 것이 정당한 ‘적폐청산’인지 아니면 ‘정치보복’인지의 논쟁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문’을 열고 다시 나올 때를 생각하고, 산에 오르며 산을 내려 올 때를 생각한다면 이처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주장이 거칠고 어지럽게 부딪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정권’이란 언젠가는 내려와야하는 산이 아니라, 아무리 머물고 싶어도 5년 후에는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산이 아닌가. 들어갔으면 언젠가는 나와야 하는 집이 아니라, 5년 후에는 반드시 비워주어야 하는 집이 아닌가. ‘그집’을 나오고, ‘그산’을 내려오면서 들어갈 때와 올라갈 때는 못 보았던 것이 이제야 눈에 보인다고 한탄한다면 딱한 일이 아닌가. 처칠의 덩케르크 철수와 나폴레옹의 러시아 철수와 같은 비극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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