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위기 탈출하려면 …

유통업계는 현재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길어진 경기불황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요, 그나마 위안이 됐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것 역시 고민이다. 유통업계를 향한 규제의 고삐가 더욱 조여지는 것도 부담이다. 유통업계에 해법은 있을까.

▲ 유통업계가 각종 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진=뉴시스]

“총체적 난국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유통업계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내수부진에 중국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여 온 구조적인 문제, 정부의 규제 강화 등 정책적인 문제까지 겹쳐 그야말로 잘 되는 거 하나 없는 상태란 얘기다.

미래 준비도 부족하다. 4차산업이니, 인공지능이니 떠들어대지만 정작 유통업계에 접목된 사례는 드물다. 더 큰 문제는 자꾸만 악화하는 상황에 유통업체들의 혁신의지마저 꺾였다는 거다. 어떻게든 현상유지라도 해보겠다는 전략인데, 그 현상유지마저 어려운 게 지금 유통업계의 현실이다.

■ 지독한 내수 부진 = 한국경제는 길고 긴 불황의 늪을 지나왔다. 그러는 동안 소비심리도 위축돼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할 것 없이 부진에 허덕였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고공 행진하는 물가 탓에 주머니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아서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탄핵정국은 가난하고 불안한 서민들의 마음에 더 큰 생채기를 냈다. 그 결과, 올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3.3포인트까지 하락했다. 7년10개월 만의 최저치였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서민들의 지갑은 점점 더 굳게 닫혀갔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지표상의 소비심리는 서서히 살아나고 있지만, 정작 유통업계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롯데백화점은 매출(국내)이 전년 대비 4.8% 감소했다. 이른 더위로 생활가전(9.9%) 매출은 늘었지만 의류(-6%), 잡화(-11.6%), 식품(-1.3%) 등에선 역성장을 피하지 못했다.

■ 불청객 ‘사드’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통업계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이슈까지 터졌다. 중국 시장과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는 내수부진에 빠진 유통업계에 최고의 돌파구이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중국으로 향했고, 국내를 찾는 유커 모시기에 혈안이 됐다. 특히 화장품 업체들은 중국 의존도를 높이며 사상 최대의 실적을 쌓아갔다. 하지만 사드 배치가 결정되자 중국은 돌변했다. 중국 내 한류를 금지했고, 한국으로의 단체여행을 막았다.

▲ 정부가 중소·중견면세점 지원 방안으로 보따리상 규제를 풀었다.[사진=뉴시스]
피해는 유통업계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사드 이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업체는 롯데마트다. 중국은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강도 높은 보복을 이어갔다. ‘소방법 위반’을 이유로 중국 내 롯데마트 영업을 중단시켰다. 대부분의 롯데마트가 영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그 여파는 컸다. 롯데마트는 올 상반기 어마어마한 영업손실(전년 대비 94.9%)을 감내하면서까지 중국 당국의 마음이 풀리길 기다렸지만 결국 헛수고로 돌아갔다. 롯데마트는 결국 중국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유커 덕에 웃던 화장품 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유커로 북새통을 이루던 명동은 그야말로 화장품 브랜드숍 천지였다. 하지만 유커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관광 상권의 매출 급감으로 국내사업 실적이 역성장했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2.2% 기록한 데 이어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 지역의 부진으로 해외사업 실적(-16%)도 신통치 않았다.

면세점도 타격이 컸다. 호텔신라의 면세사업 부문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2.1% 줄었다. 중소면세점의 손실은 더 컸다. SM면세점은 지난해 상반기 144억원의 손실을 낸데 이어 올 상반기엔 177억원으로 손실 규모가 커졌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11일 관세청은 “해외 대량구매자 판매 제한을 폐지하겠다”면서 중소ㆍ중견면세점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관세청은 “우선적으로 시행이 가능한 사항부터 발빠르게 지원하겠다”면서 그 첫번째로 보따리상에 대한 규제를 풀겠다고 나선 거다. 업계는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손쓸 수 없게 커진 구멍을 얼마나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곳곳에선 “유통업계가 중국 비중을 지나치게 높여온 탓”이라며 “다른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화장품 업체들은 동남아, 유럽, 미주 시장 등을 겨냥하며 포스트 차이나 발굴에 온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중국시장에 하루아침에 진출한 게 아니듯 다른 해외시장에 안착하기까지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을 다변화해야 하는 건 맞지만 중국시장에서 아예 발을 빼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라는 건 지나치게 1차원적인 접근이다. 중국 리스크를 무조건 사드 문제로만 규정할 게 아니라 다각적인 측면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막혔다고 도망만 가선 안 된다. 다른 곳도 언제든 막힐 수 있다. 중국에서 실패했던 비즈니스 전략을 수정하는 등 회복 전략을 짜야 한다.”

■ 거세지는 규제 = 정부의 규제도 유통업계로선 고민이다. 현재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은 정부 정책에 따라 월 2회 의무휴업을 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다.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의무휴업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복합쇼핑몰과 아웃렛 등에도 의무휴업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도피 아닌 회복 필요”

하지만 유통업계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은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규제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유통 전문가는 “새로운 파이를 창출할 수 있는 선순환적인 규제가 필요한데, 한쪽의 성장을 위해 다른 한쪽을 정지시키는 건 굉장히 인위적인 방법”이라며 “이 경우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우려했다. 유통업계의 생태계를 충분히 이해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는 여기에, 4차산업을 준비해야 하는 숙제까지 안고 있다. 그렇지만 안 그래도 버거운 유통업계엔 그럴 여력이 없다. 숙제는 쌓였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는 얘기다.
>> 김미란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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