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보고 싶은 것만 봤다

▲ 독일은 지난해 파견법 개정을 통해 파견 기간을 최장 18개월로 제한했다.[사진=뉴시스]

파견법 이슈가 터지면 재계는 늘 해외 사례를 입에 담는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파견법의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전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파견법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단면일 뿐이다. 파견법의 이면엔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단단하게 박혀 있다. 우리나라 재계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파견업종이 32개로 제한돼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독일ㆍ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 15개국은 파견 사용사유와 기간 제한이 없다.” 하도급ㆍ불법파견 관련 이슈가 터지면 재계는 항상 OECD 사례를 들어 문제점을 꼬집어왔다. 실제로 독일은 2003년 노동 개혁인 ‘하르츠개혁’을 통해 파견기간 제한을 폐지하고 전업종(건설업 제외)에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영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파견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직접고용을 부담할 경우 근로 조건이 더 나쁜 시간제 일자리로 대체하거나 일자리를 줄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재계가 사례로 들고 있는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파견에 관대하기만 할까. 일본의 경우 2015년 파견법 개정으로 통해 파견노동에 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렇다고 파견 노동자를 ‘사각지대’로 내몬 건 아니다. 그들의 고용안정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동일 업종 종사자와의 균형 대우, 복지, 교육훈련 등 파견노동자와 정규직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대표적이다.

파견기간에 제한이 없는 국가로 자주 등장하는 독일이 ‘파견 자유국’인 것도 아니다. 독일의 노동 유연화 정책은 숱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1985년 4만2000명에 불과했던 파견 노동자 수가 2015년 95만1000명으로 30년 만에 23배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파견근로가 ‘워킹 푸어’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2013년 조사결과 독일 파견노동자의 평균임금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30%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파견노동의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생겼다”고 설명했다. 독일이 지난해 파견법 개정에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핵심 개정 내용은 파견기간을 최장 18개월로 제한하고 파견 9개월부터 정규직과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법적 테두리만 바꾸고 있는 건 아니다. 노사의 협의를 통해 파견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재계의 주장처럼 무조건적으로 파견기간에 제한이 없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조성혜 동국대(법학과) 교수는 “독일 파견법 개정안의 의의는 규제 완화 일변도에서 규제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라며 “파견노동이 노동유연화라는 효과보다는 노동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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