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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ovie] 36계가 최고의 계책인 이유

기사승인 [258호] 2017.10.13  08: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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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덩케르크(Dunkirk) ❷

2차 세계대전 중 크고 작은 수많은 처절한 ‘전투’가 역사에 기록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스탈린그란드 전투, 유황도 전투 등은 ‘극단의 세기’ 혹은 ‘광기의 세기’로 불리는 20세기 전쟁의 난폭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덩케르크 전투’는 2차 세계대전사에 변변히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를 창고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어 펼쳐 보인다.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Lyan)’가 보여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너죽고 나죽자’식의 살육전을 벌인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덩케르크 전투’에선 노르망디식 살육전이 벌어지지 않는다. 덩케르크 해변에 갇힌 40만여명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너죽고 나죽자’하기보다는 오직 살고자 한다. 전투 자체가 김이 빠진다.
 
독일군도 고립된 연합군 병사들을 섬멸하고자 하는 전의戰意를 불사르지는 않는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로 시작하는 625 노랫말에 등장하는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식의 살의가 번득이는 증오를 보이지는 않는다.

히틀러의 오판이었는지 혹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들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히틀러의 넘치는 감성 때문이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히틀러는 고립된 연합군을 향해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신 공중폭격을 지시한다. 만약에 지상군을 투입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버금가는 살육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면한 셈이다.
   
▲ 처칠 총리는 덩케르크에 운집한 40만 병사 중 33만명을 성공적으로 철수시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국 총리 처칠도 연합군 40만이 80만 독일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돌파작전’이나 전면전 대신 ‘철수작전’을 결정한다. 아마도 걸핏하면 ‘천황 폐하만세’와 ‘기왓장으로 남느니 옥으로 부서지겠다’는 ‘와전옥쇄瓦傳玉碎’를 외치는 일본군이었다면 ‘비겁한’ 철수작전 대신 전면전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처칠은 40만 병사 중 약 33만 병사를 구한다. 처칠 총리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성공을 ‘덩케르크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지만, 기적은 없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덩케르크의 기적’은 히틀러와 처칠의 정면충돌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36계 줄행랑’으로 유명한 중국의 ‘36계’는 전쟁으로 지새던 춘추전국시대 ‘집단지성’의 산물로 손자병법보다 몇수 위로 평가받는다. 제아무리 뛰어난 손자라도 집단지성을 당하기 어렵다. ‘36계’는 36가지나 되는 전쟁의 계책 중에서 최상의 계책은 ‘싸움을 피하고 도망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삼십육계주위상책三十六計走爲上策). 

‘36계’는 속임수와 기만술로 가득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적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강한 놈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이기는 놈이 강한 것’이다. 전쟁에서는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어쩌면 병법같지도 않은 병법인 ‘36계’가 숱한 병서兵書 중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병법이기에 그 유구한 세월을 넘어 전해지는 모양이다. 굴욕을 감수하고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결정한 처칠 수상은 ‘36계’의 충실한 사도使徒라 할 만하다.
   
▲ 우리에겐 전쟁의 두려움을 알고 이를 막아낼 지도자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현대판 ‘전쟁의 신神’이라 할만한 맥아더(McArthur) 장군은 그의 유명한 ‘아들을 위한 기도’에서 ‘자신이 언제 나약해지는지 알 만큼만 강하고, 두려움을 알고 두려움에 맞설 만큼만 용감하기’를 기도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만용蠻勇’에 지나지 않는다. 지도자의 덕목은 두려움이 없거나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아는 것이다. 두려움 없는 지도자는 국민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데 주저함이 없다.

계속되고 증폭되는 북한의 핵 위협 직면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논의가 어지럽다. 전쟁의 두려움을 모르거나 잊은 듯 한 용감무쌍하고 씩씩한 주장들도 난무한다. 선제공격부터 ‘핵에는 핵’이라는 난데없는 코란(Koran)식 해법도 등장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두려움 없는 지도자’가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가진 지도자’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전쟁을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전쟁을 막는 지도자다. ‘덩케르크’에서 40만 병사를 장렬하게 전사시키는 지도자가 아니라 33만 병사를 고향으로 데려오는 지도자를 원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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