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갈리는 도급 vs 파견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논란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적법한 도급이라는 의견과 불법파견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문제는 어느 쪽의 손을 확실히 들어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법도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대법원은 “KTX 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다”고 판결했다.[사진=뉴시스]

2015년 2월 26일, 대법원 앞에 선 KTX 승무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2004~2005년 코레일의 자회사 홍익회, 한국철도유통 소속으로 KTX에서 일하던 이들은 “우리의 진짜 사장은 코레일”이라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KTX 승무원은 코레일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코레일의 지휘ㆍ명령을 받아 근무하도록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KTX 승무원들은 지금도 승무업무 직접고용과 복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현대차 아산공장의 협력업체 노동자는 환하게 웃었다. KTX 승무원들과 똑같이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는데, 대법원이 “원청업체(현대차)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놨다. 이들은 현대차 소속 노동자가 됐다.

이 판결은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논쟁을 불렀다. 두 집단이 소송을 건 논리가 같았는데 결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 두 노동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노동계약의 원칙인 사용자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용하는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이라는 점이다. 간접고용은 노동자를 지휘ㆍ감독하고 사용하는 사용자와 노동계약을 체결한 사용자가 다른 경우다.

 

두 노동자의 환호와 탄식이 교차한 건 법원이 간접고용을 더 세밀히 나누면서다. 간접고용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엔 파견과 도급이 있다. 판결의 핵심은 이 업무가 도급이냐, 아니면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이냐였다.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렇다. 원청 기업이 용역 업체에 ‘얼마에 이 업무를 담당하겠다’는 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때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월급 지급이나 관리 등의 의무와 책임은 모두 용역업체에 있다. 이들이 하는 일도 원청 직원들과는 상관없이 별개로 이뤄진다. 이는 도급 계약이다.

판결 결과가 엇갈린 이유

파견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파견도 중간에 사람을 보내주는 파견업체가 끼어 있긴 하다. 이 파견업체가 고용계약을 보장하긴 하지만 월급이나 조건, 환경 등에 대한 책임은 원청에 있다. 업무 지시도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사실상 파견인데 도급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른바 ‘불법파견’이다. 이게 불법인 이유는 파견 계약이 파견법의 규제를 받고 있어서다. 원칙적으로는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2년 넘게 쓸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 같은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임금 등을 차별할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더구나 파견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업종은 원칙적으로 32개, 192개 직종뿐이다. 파견 계약을 맺으면 고용노동부에도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도급계약은 다르다.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신고할 의무가 없다. 도급 인력은 ‘노동자’의 범주에도 들지 않는다. 노동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법원이 불법파견을 규정하는 기준은 이렇다. “업무 자체의 독립성과 사업체의 독립성이 있으면 도급으로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불법파견으로 분류한다.” 법원은 같은 열차에서 근무하는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과 하청 자회사 소속 승무원의 업무가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열차팀장은 안전을, 승무원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업무가 분리돼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판결은 상식에 벗어났다. 많게는 1000명이 타는 열차에 안전을 담당하는 직원이 열차팀장 1명뿐인 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빈틈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요소를 충족하고 어떤 요소는 불충족할 경우 업무의 독립성이 인정되는지가 모호하다. 판단 기준으로 ‘원청의 업무 지시’를 내걸어도 법원 해석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양측의 주장은 팽팽하기 마련이다. 결국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어느 쪽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냐의 싸움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

법조계가 보는 ‘업무의 독립성’을 판단하는 근거는 크게 다섯 개다. “작업ㆍ배치ㆍ변경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나” “중요한 업무 지시 감독권이 누구에게 있나” “근태 관리권, 징계권이 누구에게 있나” “업무수행 평가를 누가 하나” “연장, 휴일, 야간근로 결정을 누가 하나” 그런데 이 근거 중 우선이 되는 요소는 없다. 이중 4개를 충족해도 나머지 하나가 빠지면 불법파견이 아닐 수도 있다.

대법원은 판결 뒤 보도자료를 내고 이렇게 설명했다. “이와 같은 구분기준을 적용한 결과는 사안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번 판결 사례를 ‘사내도급=불법파견’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도급이 모두 불법파견은 아니다’는 최소한의 공식만 뒀다. 나머지는 법원의 판단 영역이라는 거다.

재판부 성향 따라…

올해 초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 1300여명의 운명을 결정한 1심 판결이 논란이 됐던 이유다. 이들은 원청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졌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수리기사 채용과 업무교육 등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대ㆍ중소기업간 상생협력 방안을 수행한 것”으로 해석했다.

법령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난제難題다. 이미 수많은 노동 현장에서 이런 갈등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비슷한 사건이 재판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촘촘한 법조항과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할 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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