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과 파견의 불편한 질문 답은 뭔가

‘나를 고용한 진짜 고용주는 누구인가.’ 한심한 질문 같지만, 노동자들은 헛갈린다. 고용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진짜 고용주로 등장하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제빵ㆍ카페기사 불법파견 논란을 빚은 파리바게뜨는 최근 물류센터 도급업체와 위장도급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자들의 진짜 고용주 찾기가 한심하지 않은 이유다. 문제는 베일에 가려진 고용관계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다는 점이다. 법률이 모호해서 생긴 비극이다.

▲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와 카페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사진=뉴시스]

“파리바게뜨는 제빵기사와 카페기사 5378명을 직접 고용하라.” 9월 21일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런 시정명령을 내렸다. “파리바게뜨가 가맹점에 제빵ㆍ카페기사들을 불법파견했기 때문”이라는 게 노동부의 근거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어겼다는 거다. 이 경우 불법파견 기간이 2년 이상이면 ‘실질적인 사용사업주’는 불법파견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파견법 제6조의 2 제1항)가 생긴다.

파리바게뜨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가맹점과 제빵기사를 공급하는 협력업체가 도급계약을 맺고 있어 원칙상 가맹점이 제빵기사를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맹본부에 불법파견 책임을 묻겠다는 노동부의 주장을 순순히 인정하기 힘들다”면서 “가맹본부의 품질관리 수준을 맞출 수 있는 제빵기사를 가맹점들이 공급받을 수 있게 협력업체를 알선해준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그는 “품질관리를 위한 컨설팅 차원에서 제빵ㆍ카페기사들을 교육ㆍ관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프랜차이즈의 특성을 고려하지도 않은 처사”라고 꼬집었다.

가맹점주들도 노동부의 결정이 이상하다는 반응이다.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해서 우리에게 공급(파견)하면 가맹점을 감시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꼬집는 가맹점주가 숱하다.

이런 입장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 일단 ‘도급계약’과 ‘근로자파견계약’의 법률적인 정의부터 제대로 짚어보자. 먼저 ‘도급계약’이다. 제조업체 A사와 운송회사 B사가 있다고 치자. A사는 제품을 제조해 B사에 ‘일정한 계약 요건에 따라 배송을 완료해 줄 것’을 의뢰한다. B사는 그 대가로 약정된 용역비를 받는다.

배송기사는 노동계약도 B사와 맺고 있고, 임금도 B사에서 받는다. A사는 B사에 소속된 배송기사에게 어떤 지시나 명령, 고용관계에 관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각각 독립된 사업주체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A사와 B사는 합법적인 도급계약 관계다.

만약 B사가 A사에 종속돼 있어 독립성이 없고, A사가 B사에 속한 배송기사의 노동조건에 개입했다면 ‘위장도급’이다. 이 경우 법은 B사의 실체가 없다고 판단한다. 배송기사가 B사와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A사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해 A사 소속 노동자들과 동일한 법적지위를 부여한다. 눈여겨볼 건 도급계약은 민법, 위장도급은 파견법이 근거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위장도급은 ‘불법파견’과 형태가 같기 때문에 처벌을 할 땐 파견법을 적용한다.

복잡한 파리바게뜨 계약 구조

다음은 ‘근로자파견계약’이다. 제조업체 A사는 신제품 출시행사를 준비하면서 내빈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로 했고, 인력공급업체 C사에 조리사들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C사는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조리사들을 A사 행사장에 파견할 수 있는데, 이때 조리사들은 C사와 A사 양측으로부터 업무 지시와 감독을 받을 수 있다. 오로지 근로자파견계약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허용해준 거다. 다만 노동자와의 각종 노동계약은 C사가 협의한다. 이건 합법적인 근로자파견계약에 따른 파견이다.

만약 파견사업주가 정식 파견사업 허가를 받지 않았거나, 파견법에 정해진 업무(32개)에 해당하지 않는 업무에 파견을 진행했거나, 최대 파견기간(2년)을 넘겼다면 모두 ‘불법파견’이다. 파견기간이 2년을 넘겼다면 ‘사용사업주’는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가 생긴다. 예컨대 C사의 조리사들이 A사 구내식당에 파견돼 2년 넘게 일을 했다면 A사는 조리사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파리바게뜨 문제로 다시 돌아와 보자. 파리바게뜨는 전국에 11개의 협력업체를 두고, 이 협력업체를 통해 가맹점에 제빵ㆍ카페기사를 공급했다. 계약형식만으로 보면 파리바게뜨와 협력업체는 ‘업무협약’, 파리바게뜨와 가맹점은 ‘가맹계약’, 협력업체는 가맹점과 ‘도급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

현행법을 기준으로 볼 때 여기에 어떤 문제들이 숨어 있을까. 첫째, 가맹점과 협력업체는 도급계약 관계지만, 현실에서는 가맹점주들이 협력업체에 속한 제빵ㆍ카페기사들에게 업무를 지시ㆍ감독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고용노동부는 “가맹점주들이 제빵기사에게 연장근로를 요청하는 등 업무상 일부 관여한 사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엄밀히 따지면 위장도급(불법파견)에 속한다. 다만, 노동부는 “미미한 수준”이라면서 가맹점주를 처벌하진 않았다.

둘째, 제빵기사들에게 업무를 지시ㆍ감독한 건 가맹점만이 아니다. 노동부는 “가맹본부인 파리바게뜨가 제빵ㆍ카페기사들에게 교육이나 훈련뿐만 아니라 채용ㆍ평가ㆍ임금ㆍ승진 등에 관한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해 시행했고, 파리바게뜨 소속 품질관리사(QSV)를 통해 출근시간 관리를 물론 업무 전반을 지시ㆍ감독해 파견법상 사용사업주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근로자파견계약을 맺지도 않은 파리바게뜨가 제빵ㆍ카페기사들을 파견노동자 다루듯 했다는 얘기다.

이를 근거로 노동부는 ‘제빵ㆍ카페기사들을 파견노동자처럼 다룬 정도’를 따져 파리바게뜨 본사가 ‘실질적인 사용사업주’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고,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럼 이 시정명령은 문제가 없는 걸까. 꼭 그렇지도 않다.

노동부, 시정명령엔 문제 없나

‘실질적인 사용사업주’ 역할의 정도는 차치하고서라도 파리바게뜨가 시정명령대로 따른다면 파리바게뜨는 근로자파견업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맹점에 제빵ㆍ카페기사들을 파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문제가 없다.

쟁점은 제빵 업무가 파견법상 근로자파견계약이 가능한 업무에 속하느냐다. 노동부는 ‘파견업무대상 세세분류기준’에 따라 제빵 업무가 ‘음식조리’ 업무에 속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기준에는 ‘제빵’이 포함돼 있지 않다. 본사로부터 빵 반죽을 받아 빵을 가공하는 정도를 ‘음식조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법적 논란거리다.

파리바게뜨 측은 불법파견 논란이 불거지자 이런 대안을 내놨다. 가맹본사와 가맹점, 협력업체가 같은 비율로 공동출자해 근로자파견업을 할 수 있는 법인을 세우고, 여기서 제빵ㆍ카페기사들을 파견하면 되지 않느냐는 거다.

하지만 이 역시 ‘2년 이상 불법파견이 이뤄지면 실질적인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파견법상 의무조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년마다 매번 별도 법인을 세우거나 가맹본사든 가맹점이든 누군가는 직접고용 의무를 져야 한다.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거다. 꼼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이 대안에서는 협력업체가 사실상 끼어들 여지도 없다.

도급 vs 파견 대법원도 오락가락

종합하면 단순히 법규정의 모호성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아니다. 법을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급관계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도급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때때로 근로자파견계약과 비슷한 양상들이 나타나면서 한계 설정을 명확히 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자! 어떤가. 불법파견 구조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나를 고용한 진짜 고용주는 누구인가’라는 황당한 질문을 할 법하지 않은가. 실제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진짜 고용주를 찾기 위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도급계약이냐 근로자파견계약이냐를 놓고 또 한바탕 논란이 불거진다. 대법원 판결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2015년 2월 대법원이 KTX 여승무원들과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직원들이 낸 두 개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각기 다른 판결을 낸 게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들에겐 ‘정상적인 도급관계에 따른 노동자’라고 했고,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직원들에겐 ‘불법파견에 따른 노동자’라고 했다.

물론 대법원은 “도급관계냐 근로자파견계약 관계냐는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면서 몇가지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이 판단기준은 ▲누가 노동자를 지시감독하는지 ▲노동자가 사용사업주(실질상)에 속한 노동자와 한 집단을 이뤄 공동작업을 하는지 ▲도급계약을 체결한 원고용주(고용형태상)가 노동조건을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지 ▲노동자 업무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정 혹은 혼재되는지 ▲원고용주에게 도급계약 목적 달성을 위한 조직이나 설비가 있는지 등이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도 이를 토대로 달라졌다.

문제는 대법원조차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사안을 과연 일반인들이 알 수 있겠냐는 거다. 결국 법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법적 분쟁이 더 늘어날 소지가 높은 셈이다. 노동자들이 일일이 기업과 법적 분쟁을 할 수 없다는 걸 감안하면 노동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익을 지키기도 힘들다.

더구나 도급과 파견에 관한 법규정은 재계와 노동계 양측에 불만만 키운다. 도급과 파견이 형식적으로나마 규제로 묶여 있어 기업은 자신들 맘대로 간접고용을 할 수 없어 불만이고, 노동계는 노동자의 권익이 침해 당하고 있으니 불만이다.

그나마도 법이익은 기업에 치우쳐 있다. 기업은 도급계약을 악용해 불법파견을 자행하지만, 노동자들은 수년간의 법적 분쟁을 통해서만 구제를 받는다. 사전에 법의 악용을 막을 방법도 없고, 파견법에 따른 법적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설사 불법파견으로 판명나더라도 파견법상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고작이다. 간접고용은 2년 내에 계속 바꾸면 그만이고, 노동자 직접고용과 같은 시정명령을 받는다고 해도 원래 부담해야 할 지출이니 손해도 없다. 관련 법규정이 기업의 입장만을 감싸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파견, 기업 위한 예외적인 법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은 우리나라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 선진국들도 ‘노동의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간접고용을 허용한 탓에 규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은 사후규제만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을 사전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독일은 불법파견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위장도급을 통해 법적 책무를 회피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면 좀 더 무겁게 처벌한다. 새로운 판단기준을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한다. 최근엔 ‘하자담보책임’이 도급과 파견을 명확히 식별하는 요소라는 주장이 독일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자담보책임은 도급계약의 기본요소인데 반해, 근로자파견계약에서는 작업의 지시ㆍ감독이 있는 만큼 하자담보책임이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준이 모호하니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현행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수급 방식은 20년째 누구하나 문제 삼지 않았다”면서 “법에 어긋난다는 걸 알았다면 결코 이 시스템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기준이 명확하면 억울한 일을 저지를 일도 없다. 하지만 파리바게뜨 측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파리바게뜨는 최근 물류센터 도급업체 노동자 500여명에게도 업무를 지휘ㆍ감독하며 실제 사용사업주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계약관계가 복잡한 제빵ㆍ카페기사 불법파견 논란과 달리 명백한 위장도급이다. 이 역시 도급과 파견의 경계가 모호하다보니 생긴 관행 아니겠는가.

▲ 파리바게뜨가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사진=뉴시스]
우리 법조계에서도 “도급, 특히 사내하도급과 파견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면서 “현재로선 좀 더 많은 판례를 축적해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만들거나 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용희 IBS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도급과 파견은 애초 산업별 특성에 따라 간접고용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일부를 허용해준 것인데, 많은 기업들이 직접고용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면서 “법의 맹점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의 설명처럼 기업의 도급과 파견은 1997년 IMF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을 정부가 ‘배려’하면서 늘어난 면이 없지 않다. 파견법이 1998년 제정된 점, 2000년대를 기점으로 아웃소싱 개념과 전략이 전면에 등장한 점, 역시 2000년대부터 용역노동자와 파견노동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점 등을 봐도 그렇다. 노동자의 눈물보다는 기업의 눈물을 헤아린 거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기업총소득 증가율은 가계총소득 증가율의 2배(장하성 고려대 교수 총소득증가율 분석자료ㆍ2016년)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쁜 유물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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