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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가위, 보름달의 ‘싸늘한 몰락’

기사승인 [257호] 2017.09.28  0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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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연휴 부러운 사람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1년에 하루, 한가위만은 감사와 풍요가 넘치는 날이었다. 한가위의 보름달은 그래서 포근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요즘 한가위는 그렇지 않다. ‘돈이 없어서’ ‘취직이 안 돼서’ ‘쉴 틈이 없어서’ 등 저마다의 이유로 한가위의 달밤은 싸늘해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寒가위가 돼버린 우리네 한가위의 자화상自畵像을 그려봤다.
   
▲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많다.[사진=뉴시스]

최장 10일의 추석 ‘황금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직장인의 평균 여름 휴가가 4~5일인 점을 감안하면 흔치 않은 긴 연휴다. 정부가 내수 진작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는 통큰 결단을 내린 덕분이다. 사실 직장인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해 일과 삶, 가정과 직장의 조화를 이루게 하겠다는 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여행유통업계는 추석 특수特需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긴 연휴가 달갑지만은 않은 이들도 숱하다. 휴일을 반납하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 팍팍한 가계살림에 명절나기가 부담스러운 주부, 고향은 마음에 묻어둔 취준생…. 이들에게는 10월의 바람만큼 싸늘한 ‘한寒가위’다. 
 
■ 직장인의 寒가위 “아! 춥다 추워!!”  = 직장인 김미진(31가명)씨는 요즘 뉴스를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역대 최대인 110만명이 추석 기간에 해외로 떠난다는데, 김씨에겐 먼나라 이야기 같아서다. 지역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그는 추석을 전후해 5일만 쉰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일찍이 여행 티켓을 예매했다지만, 김씨는 최근 악화한 회사 상황을 살피느라 여행은 꿈도 못꿨다. 평소보다 2~3배 비싼 여행 비용도 부담이었다. 김씨는 “차례를 지내고 근교로 바람 쐬러라도 다녀와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직장인이나 공무원 아니고서야 열흘의 연휴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대기업중소기업 직장인 12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52.9%만이 10일 연휴를 모두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직장인의 72.5%, 중소기업 직장인의 48%만이 “모두 쉰다”고 답했다. 연휴 기간에 출근하는 직장인은 33.9%나 됐다. 이들이 출근하는 이유는 ‘당직업무특성상회사방침’ 등 비자발적 이유(77%)가 대부분이었다. “일이 많아서 자발적으로 출근한다”는 응답자는 23%에 그쳤다. 
 
긴 연휴를 부담스러워하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길어진 연휴만큼 지출이 늘어날 공산이 커서다. 실제로 지난해 40만3000원(잡코리아)이던 직장인의 추석 경비는 올해 48만4000원으로 예상됐다. 전년 대비 1.3배 증가한 액수다. 
 
월급은 한정적인데 지출이 늘어나면 다른 데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가족지인들 추석 선물을 고르는 직장인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추석 기간동안 직장인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지출은 부모님친지 용돈(64.1%)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부모님친지 선물(39.3%), 귀성교통비(25.3%), 차례상차림 비용(18%) 등 순이었다. 
   
 
이런 탓에 유통업계에선 실속형 선물세트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다. 롯데백화점의 추석 선물세트 판매 행사에선 ‘동원캔 57호(4만8000원)’, ‘실속 사과배 혼합세트(7만원)’, ‘어물전굴비세트(5만원)’ 등 5만원대 상품이 가장 많이 팔렸다. 하지만 추석 선물의 양극화 현상도 뚜렷해졌다. 95만원대의 ‘울릉칡소 명품세트’, 360만원대의 ‘영광법성포 수라굴비세트’ 등 고가의 프리미엄 상품도 불티나게 팔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귀성길에 비싸고 좋은 선물 들고 가고 싶지 않겠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렇지. 그래도 한달 월급과 맞먹는 선물세트를 보니 상대적 박탈감마저 든다.” 백화점 추석 선물세트 코너를 둘러보던 박가희(39가명)한재범(42가명)씨 부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추석 상여금이 반으로 줄어들면서 마음도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추석 선물도 양극화 

양가 부모님과 조카들 용돈으로 명절마다 약 50만원을 지출했던 부부. 올해는 박씨의 임신으로 외벌이가 된 데다, 상여금까지 줄면서 부담이 커졌다. 한씨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걸 어쩌겠냐”면서 “다른 지출을 줄이더라도 가족들 명절 선물은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한씨처럼 상여금을 기대하기 힘든 직장인들이 많다. 잡코리아 조사 결과, 직장인의 33.6%만 상여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46.7%는 ‘상여금 대신 선물이 지급된다’고 답했고, ‘아무것도 지급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19.7%나 됐다. 기업 규모별로 상여금 예상 수령액의 차이도 컸다. 대기업 직장인의 상여금은 평균 109만6000원인 반면, 중소기업은 절반 수준인 평균 50만6000원에 그쳤다. 
 
 중소기업의 寒가위 “나도 춥다” = 상여금 봉투가 홀쭉해진 건 기업의 자금 사정이 나쁘다는 방증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추석을 앞두고 1147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추석자금 수요조사를 실시한 결과, 46%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사정이 곤란한 원인으로는 매출 감소(69.1%)가 가장 컸고, 판매대금 회수지연(37.7%), 원자재 가격 상승(23.1%) 등이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금융회사의 문턱이 높아져 이중고를 겪는 중소기업이 많았다. 매출이 줄면서 금융기관의 기존 대출 상환 요구가 커진 데다, 추가 대출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걸림돌 수두룩  

인천에서 내화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정범(55
가명)씨는 “대출만기가 도래해 연장신청을 하러 갔더니, 1년 연장시 10%, 6개월 연장시 5%의 대출금을 상환하더라”면서 “금리도 더 오를게 뻔한데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이 업체의 매출액은 연간 38억원이다. 이보다 규모가 작고 업력이 짧은 업체의 사정은 더 나쁘다.
 
충북 소재의 한 문구류 제조업체는 7년밖에 되지 않는 업력이 걸림돌이다. 이 업체 대표는 “업력이 짧아 보증기관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다”면서 “금융회사를 이용하려 해도 담보 요구가 크고, 이런 상황에서 신용대출마저 줄이려 하니 회사 운영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의 내년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김경문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데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寒가위 “우린 오죽하랴” = 기업 경기가 개선되지 않으니 취업문도 꽁꽁 얼어붙었다. 8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4%로 19년만(8월 기준)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야 하는 취준생들은 연휴도 반납했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 9월 20일 노량진 학원가는 취준생들로 붐볐다. 4층 규모의 한 공무원 학원은 자습실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대부분의 학원이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평소대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추석 특강’을 운영하고 있다.  
 
   
▲ 노량진 학원가는 추석 연휴에도 취준생들로 붐빌 전망이다.[사진=뉴시스]

2년째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 중인 한재민(28
가명)씨는 설에 이어 추석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계획이다. 한씨는 “얼른 노량진을 벗어나는 게 명절 선물 아니겠냐”면서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고,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이지나(24가명)씨도 연휴에 학원에 나갈 생각이다. 이씨는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잔소리에 스트레스만 받을 거다”면서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잡코리아가 취준생 1489명에게 설문한 결과, 추석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언제 취업할거니(73.6%)’였다. 그게 잔소리든 걱정이든 위로든, 취준생들에게는 부담이자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추석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런 저런 명절 스트레스를 겪을 바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추석 단기 아르바이트는 노동강도는 세지만 시급이 높아 수입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많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은 ‘추석단기알바채용관’을 운영하고 있다. 판매판촉
진열배송물류 등 6개 분야의 채용정보를 모아놨다.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올라온 추석 단기 아르바이트 채용정보는 5000여건으로 지원자 경쟁률은 평균 4대1 수준이었다. 

덕담은 부담이 되고…

대학교 4학년생인 정문혁(25가명)씨도 이번 추석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내기로 했다. 시급 1만~2만원대 아르바이트가 쏟아져 나와 5일만 일해도 한달 용돈벌이를 할 수 있어서다. 정씨는 “서울에서 학교다니면서 학비며, 월세며 드는 돈도 많다. 이렇게 용돈벌이라도 하는 게 이득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연휴를 연휴답게 즐길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긴 연휴를 통해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일과 삶, 가정과 직장의 조화를 이루겠다”던 정부의 목표가 공허해 보이는 이유다. 1년에 한번 온가족이 모두 모이던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이제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도, 덕담을 나누는 것도 부담이 돼버린 걸까. 고민할 새도 없이 추석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참 춥다. 올해도 많은 이들이 寒가위를 보낼 것 같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co.kr

 

이지원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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