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 노점 갈등의 발화점

아현동 노점 철거. “도로 확장을 위해 없애는 게 맞다” “우리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다” 등 찬반 양론이 팽행하다. 일부 노점이 철거됐고, 최근엔 나머지 노점을 없애는 대집행이 진행됐다. 4000세대에 육박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후에 발생한 일이다. 입주민들이 오갈 도로가 좁다는 게 ‘노점 갈등’의 주요 발화점이다. 그렇다면 도로가 그렇게 비좁은데, 어찌 그렇게 큰 아파트 단지가 생길 수 있었던 걸까.

▲ 마포구청은 아현동 굴레방로 노점을 강제철거하려 했지만 노점 상인들에 의해 실패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생존권을 보장하라. 강제철거 중단하라.” “다칠 수 있으니 내려가시라. 이러는 건 공무집행 방해다.” 지난 8월 29일 오후. 서울 아현역 3번 출구와 아현초등학교 후문 사이 도로(굴레방로)변에 위치한 노점상 일대는 난장판이었다.

행정대집행에 따라 노점을 강제철거하려는 철거용역들, 그들을 온몸으로 뜯어 말리는 노점 상인들이 노점 지붕 위에서 격한 실랑이를 벌였다. 위험천만한 상황, 경찰병력 2개 중대는 이들의 안전보다는 도로를 통제했다. 2017년 아현동 노점 철거 현장은 1980~1990년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1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실랑이 끝에 철거용역은 실패했고, 경찰은 해산했다. 이날 용역비로 들어간 구청 예산만 3000만원이 넘는다.

200여명의 주민들과 행인들이 노점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한동안 지켜봤다. 한 주민은 말했다. “25년 넘게 이 지역에 살았다. 그때도 노점이 있었고, 어머니도 이 노점을 이용했다. 강제철거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노점을 왜 문화로 받아들일 수 없나.” 한 할머니는 “경찰이 약한 사람을 도와야지”라면서 경찰들을 향해 플라스틱 바구니를 던졌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의견이 다른 주민도 있었다. 아현초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A씨는 말했다. “구청이 도로를 넓히려는 건 합법이고, 노점은 엄연한 불법이다. 오랜 시간 불법으로 장사를 해 온 만큼 이제는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역시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마포구청과 노점 상인들의 입장이 팽팽하다는 거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도로 폭이다. 노점 철거 후 왕복 2차선인 기존 차선을 지우고 한 차선당 가로 3m의 차선 3개와 인도를 확보하겠다는 게 마포구청의 계획이다. 마포구청 토목과 관계자는 “정비를 하려면 법(도로교통법)에 맞추는 게 당연하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왜 이 도로만 법에 어긋나게 두느냐’고 하면 우린 할 말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노점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반면 노점 상인들은 “기존 도로를 그대로 두면 신설 차선을 3m 이상으로 만들든 인도까지 만들든 관계없이 약간의 공간을 확보해 노점을 계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굴레방로 비극의 시작

아현초 후문 쪽에서 아현역 3번 출구로 이어지는 ‘굴레방로’가 폭탄으로 떠오른 건 아현초 후문 건너편에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3885세대에 이르는 이 아파트의 입주는 2014년 시작해 2016년 완료됐다.

마포구청 토목과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현역으로 혹은 애오개역으로 드나드는 차량이 엄청나다. 그러니 민원이 빗발친다. 북아현동에서도 이 길을 거쳐 애오개역으로 빠진다. 통행량이 많아 차선을 넓힐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입주민들이 드나들만한 도로도 없는 곳에 어떻게 그렇게 큰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느냐는 거다. 시작은 2003년 11월 서울 마포구 아현동 633번지 일대(아현역ㆍ애오개역ㆍ공덕역ㆍ대흥역ㆍ이대역을 경계로 한 안쪽)가 뉴타운사업지구로 지정되면서다. 이후 서울시가 2010년 이 지역을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재개발에 날개를 달았다.

당시 지역은 6개의 재개발구역(아현3구역ㆍ공덕5구역ㆍ염리2~5구역)과 1개의 도시환경정비구역(마포로6구역), 1개의 재건축구역(아현2구역) 등 총 8개로 나뉘어 재정비촉진지구가 됐다.[※참고 : 염리4구역, 염리5구역은 2016년 8월 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됐다.]

문제는 애초에 서울시가 아현뉴타운 재개발계획을 짜면서 굴레방로를 정비계획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서울시의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도’를 보면 재개발지역 경계는 노점 상인들이 있는 길 맞은편 인도까지다. 마포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도 “당시 굴레방로는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굴레방로의 정비는 반드시 필요했다. 3885세대가 동시에 나오는 아침 출근길을 상상하면 심각한 교통체증이 일어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당초 재정비촉진계획은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단지 가운데 지점을 ‘십十’자형 순환도로를 만드는 거였다. 이 순환도로가 애오개역과 공덕역 사이의 마포대로, 아현역과 이대역 사이의 신촌대로로 이어지면 교통이 원활해진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뉴타운지구 경계도로를 정비하는 계획은 없었고, 각 구역별 재개발 진행상황도 달라 도로는 계획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애초 재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 도로계획 자체를 잘못 짠 것은 물론, 일부 구역 재개발이 늦어져 도로가 막히는 상황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2003년 아현뉴타운을 계획한 장본인은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종합하면 이런 결론에 이른다. “2003년 아현뉴타운 지정 당시, 굴레방로를 포함해 차근차근 노점 상인들과도 협의할 기회가 있었지만 서울시의 실책으로 하지 못했다. 재정비촉진구역을 지정하면서도 교통망 정비계획은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다. 뉴타운 재개발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무시됐다. 2014년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2016년 입주가 완료된 후 교통체증으로 인한 민원이 빗발쳤다.

탁상행정으로 인한 심각한 손해

마포구청은 부랴부랴 도로정비에 나섰고, 노점 상인들은 쉽게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화기간도 짧았다. 그러는 사이 주민 간 갈등은 깊어졌고, 주민들의세금은 어쭙잖은 행정대집행으로 낭비됐다. 여전히 길은 막히고, 노점 상인들은 생업을 접었다. 아파트 입주민도 노점 상인들도 뉴타운 재개발의 피해자다.”

현장을 중시하지 않은 탁상행정, 눈여겨보지 않은 실수 하나가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손실을 입히는지 보여주는 선례다. 마포구청 관계자의 설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굴레방로가 뉴타운 계획안에만 들어갔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협의하거나 다른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마포구청 토목과 공무원들 역시 뉴타운 계획이 나왔을 때 도로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면죄부를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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