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이 재산만 받고 부양 안 한다면…

부모 자식간 소송이 늘고 있다. 부모가 재산을 증여했더니 자녀들이 재산만 받고 부양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이 나라가 어찌 이 지경까지 됐을까 싶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혹시 이런 사태가 걱정된다면 한가지 방법은 있다.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거다.

▲ 자식에게 재산을 빼앗기듯 넘겨주고 빈털터리가 되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평생 반점을 운영해온 황규섭(가명)씨.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경기도 부천 중동에 번듯한 5층짜리 건물과 아파트 3채를 마련했다. 그러던 황씨는 최근 장사를 접었다. 몸이 안 좋아서다. 장남인 아들과 두딸은 황씨를 정성껏 돌봤다. 고마운 마음에 황씨는 건물과 아파트 명의를 자녀들에게 나눠서 넘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두 딸은 명절이 돼도 얼굴 한번 비치질 않고, 장남은 연락을 끊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황씨와 같은 일을 겪은 어르신들은 숱하게 많다. 전 재산을 자녀들에게 빼앗기고 거리로 쫓겨난 어르신도 적지 않다. 소송까지 가는 일도 잦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부양료 청구소송 건수는 2004년 135건에서 2014년 262건으로 2배가량 늘었다. 이런 어르신들이 보호받을 제도적 장치는 없는 걸까.

법으로 따지자면 ‘부양조건부증여’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명 ‘효도계약서’라고 불리는 건데, 재산을 증여하기는 하지만 정해진 일정한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증여를 무효로 판단하는 거다. 민법상 ‘부담부증여’의 일종이다.

원래 증여라는 건 무상계약이다.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어떤 조건 없이 재산을 주는 행위다. 그래서 현행 민법 제558조에서는 “한번 증여가 완료된 재산은 되돌릴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만큼 증여 재산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돌려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아들에게 “효도하겠다”는 약속(계약서)을 받고 재산을 물려준 한 아버지가 “아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길 원한다”면서 소송을 내자 아버지의 손을 들어줬다. 미리 각서를 받았기 때문에 단순증여가 아닌 ‘조건부증여’라고 본 거다.

그럼 무조건 효도계약서만 작성하면 판례처럼 재산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부모 입장에서는 증여가 조건부로 이뤄졌다는 점, 자녀가 부양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모두 서류와 같은 객관적 증거로 직접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얘기다. 비슷해 보이는 사건에서 일부 어르신들이 소송에서 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타깝지만 황씨의 경우는 계약서 자체를 만들어놓지 않아 구제받기 어렵다. 따라서 뒤탈이 걱정된다면 반드시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좋다. 가능하면 계약서에 부양의 의무가 어느 정도인지를 비롯해 증여 재산의 목록과 금액까지 상세하게 적어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계약 해제 요건과 반환 조항도 필수다. 계약서가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계약서에 계약날짜와 당사자들의 이름, 사인(도장 날인)이 필요하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공증까진 받을 필요 없고, 정해진 양식도 없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소송이 아니라 자녀들이 알아서 부모님을 잘 공양하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꼭 재산을 자녀에게 남겨줘야 할지도 잘 따져볼 일이다. 낳아서 애지중지 키워준 부모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중에 자신도 자녀에게 똑같이 당할지 모른다.
이용환 법무법인 고도 변호사 godola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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