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술력 어디까지 쫓아왔나

3.4년.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부가가치 선박기술 격차다(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ㆍ2016년). 격차가 크다는 건지 작다는 건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있다. 이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조선 기술력이 우리나라를 넘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다.

▲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부가가치 선박기술의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가격경쟁력만 앞세우던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최근 조선업계에서 들려오는 말이다. 가격경쟁력만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늘려나가던 중국이 이젠 기술력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높은 기술력으로 입지를 다져온 우리나라 조선사들에 위기가 닥쳐왔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중국 조선업의 기술력이 어디까지 따라왔기에 이런 우려가 나오는 걸까.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조선사들의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온 건 맞지만 구체적으로 수치화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기술력이란 게 숫자로 환산해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힘들다는 건데, 그렇다고 중국의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2년마다 발표하는 기술수준평가 보고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평가원 보고서는 우리나라와 주요 경쟁국가의 고부가가치 선박기술을 비교ㆍ분석하고 있는데, 그 결과를 수치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최고기술국의 기술수준을 100%로 놓고 나머지 국가를 상대 평가하는 것이다.

지난해 평가원 보고서를 보자. 고부가가치 선박기술 분야의 최고기술국인 유럽(EU)과의 비교를 통해 평가한 우리나라의 고부가가치 선박기술 수준은 82.4%, 기술격차는 2.3년이다. 중국의 기술수준은 63.2%, 기술격차는 5.7년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격차는 3.4년. 유럽과 우리나라의 기술격차보다 1년가량 더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럼 3.4년의 격차가 어느 정도의 기술력 차이를 말하는 걸까.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막연한 수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따져보자면 격차가 꽤 큰 편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조선업보다 사이클이 빠르다곤 해도 반도체 등 다른 산업의 격차는 보통 1~2년”이라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격차가 꽤 있다는 얘긴데,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격차가 상당히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가원에서 고부가가치 선박기술을 평가하기 시작한 2012년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격차는 6.8년이었다. 그로부터 4년 만에 격차는 절반으로 줄었다. 
 
일부 기술은 이미 추월 당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4년 평가원 보고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격차가 향후 5년 안에 6.8년으로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서 “중국의 성장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빠르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형 조선사 한 관계자는 “중국 조선의 기술이 확실히 달라졌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령, 엔진 같은 경우 우리나라 중소형 업체의 공장이 중국으로 진출해 똑같은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지 좀 됐다. 하지만 기존엔 엔진이 같아도 배의 속도 등 성능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선형 기술 등에서 격차가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이런 부분에서도 차이가 거의 없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홍성인 연구위원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주력 분야는 다르다”면서 “중국의 대표 주력 선박인 벌크선의 경쟁력은 이미 우리나라를 앞섰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해양플랜트 등은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최근 중국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건 최근 업황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과 선주가 파이낸싱 협약을 맺고 있는 등 기술 외적인 부분이 영향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다. 정상적인 경쟁을 벌인다면 아직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다. 다만 중국의 국영 조선사나 일부 민영 조선사들은 기술력이 상당히 올라온 게 사실이다.”

사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술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의 연구ㆍ개발(R&D) 투자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중국의 과학기술 R&D 투자비용은 총 2118억 달러(약 239조8846억원)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605억 달러에 그쳤다. 과학기술인력(2011년)도 중국 131만8000명, 우리나라 31만6000명으로 격차가 컸다. 정부 지원도 다르다. 조선 업황이 악화하기 시작한 2014년 중국 정부는 ‘선박공업 전환 및 업그레이드 가속화를 위한 구조조정 실시방안’을 통해 경쟁력이 있는 조선소 75개를 선정, 집중 지원하고 있다.

R&D 투자가 기술격차 좁혀

우리나라의 R&D가 응용ㆍ개발 연구에 치중돼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초연구 분야의 EU 대비 기술격차는 응용ㆍ개발연구보다 큰폭으로 벌어지고 있다.

홍 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선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응용ㆍ개발연구에 치중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정부도 기초연구에 소홀한 채 응용ㆍ개발연구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은 정부의 선박펀드 등 지원에 힘입어 일부 기초기술은 우리나라를 추월했고, 응용기술도 우리나라와의 격차를 점차 줄이고 있다.

기술격차 3.4년.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는 차이다. 분명한 건 자칫 방심했다간 충분히 따라잡힐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평가원이 지난해 기술수준평가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을 다시 한 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조선의 기술격차가 매해 감소하고 있으며, 중국의 해당 기술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어 수년 내에 일부 기술은 우리나라를 추월할 수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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