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매서운 추격자 중국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한국 조선산업이 날벼락을 맞았다. 중국 조선사에 대형 계약건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선박을 발주하는 선주船主들은 “중국 조선사의 기술력을 믿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중국의 조선, 우리나라를 어디까지 쫓아왔을까.

▲ 최근 중국 조선사가 현대중공업을 따돌리고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를 따냈다.[사진=뉴시스]

최근 한 이슈로 국내 조선업계가 떠들썩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를 놓고 중국 조선사와 막바지까지 경쟁했던 현대중공업이 고배를 마신 사건 때문이었다. 작은 계약건도 아니었다. 프랑스선사 CMA CGM이 발주한 계약 규모는 약 1조6000억원에 달했다. 일감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던 국내 조선사들의 갈증을 해소해줄 만한 대형 계약이었던 셈이다.

이번 패배가 규모 탓에 아팠던 것만은 아니다. CMA CGM이 발주한 선박은 높은 수준의 건조 기술이 필요한 2만2000TEU(TEU=20피트 컨테이너 1대)급 컨테이너선이었다. 기술력 면에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밀렸다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패배의 충격을 길게 설명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수주를 빼앗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중국은 벌크선, 중소형 컨테이너선 등 저부가가치 선종에 주력해왔다. 중국 조선사들의 기술력이 미흡해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사들의 중국을 향한 신뢰도 낮았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선종을 쉽게 수주해온 이유다. 하지만 이번 패배로 고부가가치 선박 역시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중국의 추격을 이제 무시해선 안 된다.”

유승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2만2000TEU급 컨테이너선은 우리나라도 만들어본 적 없는 규모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면서 “글로벌 선사들이 중국에도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를 맡길 수 있을 만큼 신뢰가 높아졌다는 건데, 이번 계약이 조선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조선사들의 입장은 어떨까. 수주전에서 패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중국 조선사가 클락슨(조선해운시황분석 업체)에 공시된 평균 선박가격보다 10%가량 저렴하게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현대중공업이 그 가격에 맞추려면 저가수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건비가 싼 데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조선사의 가격경쟁력을 따라가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가격경쟁력에서 밀렸다는 건데, 이 주장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조선사와 선주船主의 의견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기술력으로 무장하는 中 조선사

일단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의 주장처럼 ‘기술력’만은 우위에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위협을 느낄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STX조선해양의 한 관계자는 “중소형 선박 건조 기술은 중국에 따라잡힌 게 사실이지만 탱커선ㆍLNG선ㆍ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 격차가 여전히 크다”면서 “특히 탱커선은 석유제품을 싣기 때문에 내부 도장이 중요한데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 기술력이 갈린다”고 말했다. “중국의 성장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위기를 맞은 건 중소형 조선사들이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드는 대형 조선사들은 아직 안전하다.”

또다른 조선사의 관계자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다. “중국 조선사가 만든 선박은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배를 직접 사용하는 선주는 우리나라나 일본 조선사와 계약하고, 주로 용선을 하는 선주가 중국에 발주를 한다.”

하지만 선주들의 생각은 180도 달랐다. 한 선주는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도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주하지 않는다”면서 “유럽의 선주들은 평가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가격만 보고 계약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선주도 “중국 조선사들은 주로 자국 선주들의 발주를 받아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을 제작했다”면서 “그런데 이게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까 글로벌 선주들이 믿음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덧붙였다. “예전엔 중국 조선사들이 인도날짜를 어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기술력이 받쳐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박을 발주하는 선주들이 중국의 기술력과 신뢰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느쪽 주장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낙관론에 기댔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의 기술력이 무섭게 향상됐다’는 분석에 무게를 두고 미래 플랜을 짜야 할 때다. 방심했다간 중국 조선사에 수주를 빼앗긴 사례가 더 많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올해 자국 조선업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중국 공업화신식화부의 계획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패권 변화는 무시할 수 없는 흐름

“2020년까지 선박 건조 규모를 현재의 5배 수준으로 키우고, 약점으로 꼽히는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35%를 달성하겠다.” 말의 성찬盛饌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이행하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를 흔드는 경고음을 귓등으로 흘려버려선 안 된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조선업계의 패권이 유럽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듯 큰 흐름은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치고 올라오고 업황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영광이 재현되지 않을 거란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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