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당국 “관련 수사 계속, 결과 나오면 발표”

▲ 참여연대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및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사진=뉴시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의혹을 다시 수사하라.” 참여연대는 지난 6월 삼성 차명계좌 논란을 다시 들춰냈다. 9년 전 발견된 차명계좌 외 다른 것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그로부터 100여일, 이건희 회장 자택 관리사무소를 압수수색했던 사정기관은 별다른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수사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불법적으로 재산을 은닉하고 자금세탁을 위해 차명계좌를 개설해 수표를 발행하고 이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재벌 총수 일가의 기업이익 횡령·배임의 산물인 비자금 조성을 통한 불법재산의 은닉·자금세탁과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차명금융거래를 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검찰수사와 엄정한 사법처리를 촉구한다.”

8월 3일 참여연대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및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일부에서 ‘이건희 차명계좌 의혹’을 또 다시 제기했기 때문이다. 9년 전 특검이 수사했던 그 차명계좌 의혹이다. 2007년 이 회장의 비자금·차명계좌·경영권 불법 승계 정황이 드러나면서 특검팀이 만들어졌다.

이 회장은 특검의 전방위적인 수사로 밝혀진 논란의 책임을 지고 2008년 4월 대국민 사과와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게 바로 2008년을 뒤흔들었던 ‘삼성특검’이다.

그렇다면 이 의혹은 왜 9년 만에 다시 제기된 걸까. 사건은 지난 5월 경찰이 이건희 회장의 집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의 자택 공사를 담당했던 인테리어 업체를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됐다. 공사대금으로 발행한 지 한참 지난 수표가 사용되는 등 정상적인 자금으로 보기 석연치 않은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일부 자택의 공사비를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이 지불한 점, 오래된 수표 중 일부가 삼성서울병원 공사대금으로 지급됐다는 점도 의문을 키웠다.

다시 제기된 삼성 차명계좌 논란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은 건 삼성전자 관계자의 발언이었다. 참여연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일부 보도를 보니, 삼성 측은 문제의 수표 중 일부가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발행됐다고 해명했다. 이른바 ‘이건희 차명계좌’ 의혹은 2008년 특검에서 마무리됐다. 그렇다면 이 차명계좌는 또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검찰에 이 문제를 고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문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2008년 삼성특검으로 밝혀진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이 제대로 이뤄졌느냐다. 둘째, 삼성특검으로 밝히지 못한 또 다른 차명계좌의 존재하느냐다. 참여연대는 6월 3일 첫째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국세청에 다음과 같은 질의를 했다. “2008년 밝혀진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과 과세 징수가 이뤄졌는가?”

▲ 2008년 논란을 일으킨 삼성 차명계좌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제81조 13의 ‘개인정보 비밀유지 의무’를 답변을 거부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국세청에 질의한 후 20여일이 지나 답변이지만 개인정보를 이유도 답변할 수 없다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둘째 의문을 풀기 위해 참여연대는 7월 27일 금융위원회에 문제된 수표가 실명 전환을 하지 않은 비실명계좌에서 발행된 것인지를 물었다. 금융위원회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에 차명계좌 사실관계 조사와 시정조치 여부를 질의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또 다른 차명계좌가 있을까’라는 둘째 의문은 풀릴 여지가 남아 있다. 일부 전문가는 2008년 삼성 특검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차명계좌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인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번 차명계좌 논란을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다”라면서도 “삼성일가의 차명계좌 논란이 2008년 이후에도 계속 제기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차명계좌 의혹은 2007년 삼성그룹 고위 임원으로 있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계좌에 50억원의 삼성 비자금이 있다고 밝힌 양심 고백을 계기로 세상에 알렸다. 여기에 정·관계 로비,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의혹까지 폭로되면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그해 12월 ‘삼성비자금 특검팀’이 만들어졌고 비자금과 차명계좌의 실체가 밝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차명계좌가 비자금이 아니라 이병철 선대회장에게 차명인 상태로 상속받았다는 삼성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삼성은 차명계좌와 관련해 양도소득세 포탈액 1128억원에 관해서만 처벌을 받았다. 특검이 되레 은닉재산과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에 면죄부만 줬다고 비판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차명계좌로 있던 삼성생명 지분(16.22%· 2007년 기준 약 2조3119억원)을 명의신탁해지를 활용해 모두 실명 전환했다. 그 결과, 2007년 4.54%였던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2008년 말 20.76%로 대폭 증가했다. 삼성특검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인 삼성생명의 지분을 크게 늘렸다는 얘기다.

김경률 회계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2008년 특검이 차명계좌 조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정확한 규모와 조성 과정을 밝히지 못한 채 면죄부만 줬다”며 “공사대금에 사용한 자금이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만큼 철저한 수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수사 당국의 수사 의지가 빈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경찰청은 5월 압수수색 이후 추가적인 수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참여연대가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나흘 후인 8월 7일이 돼서야 이 회장 일가 자택 관리사무소의 압수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그 이후 수사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수표의 출처가 차명계좌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어 사실관계만 확인하면 되는 상황”이라며 “이미 압수수색을 마친 상황이기 때문에 수표의 출처가 어디인지만 확인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처 확인은 법원의 영장 발부만 이뤄지면 가능하다”며 “영장이 발부되지 않고 있는 건지 경찰의 수사의지가 없는 건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진행 사항을 밝힐 수는 없지만 관련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래 시기 따라 처벌도 가능

이처럼 이 회장의 차명계좌 논란이 다시 제기된 지 100여일이 흘렀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다시 제기된 차명계좌 논란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금융실명제법 강화 이후 차명계좌 거래가 이뤄진 정황이 밝혀지면 처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성인 교수는 “2008년에는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해도 형사 처분이 불가능했다”면서도 “하지만 관련 법규가 강화로 형사 처분이 가능해진 2014년 이후 차명계좌 거래내역을 확인하면 처분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둘러싼 의혹을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검찰 고발에 나선 이유도 금융당국과 경찰의 움직임이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라며 “곧 있을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관리·감독의 문제점을 지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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