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조 슈퍼 예산의 실상

▲ 문재인 정부는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면서도 재정 건전성응 훼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복지 확대와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이 실체를 드러냈다. 429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은 올해 본예산(400조5000억원)보다 7.1% 많다.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상성장률(4.5%)보다 한참 높은 확장 예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탈출이 과제였던 2009년(10.7%)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니 가히 ‘큰 정부의 슈퍼 예산’으로 불릴 만하다.

2018년 예산안은 여러 면에서 과거와 사뭇 다르다. 우선 복지 예산이 147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고, 올 예산 대비 증가율도 12.9%로 가장 높다. 기초연금ㆍ아동수당ㆍ의료급여 인상 등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를 비롯한 여러 복지 공약을 반영한 결과다. 보건ㆍ복지ㆍ노동 분야 지출은 2021년까지 연평균 9.8% 증가하는 것으로 잡혀 있다.

이와 달리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7조7000억원으로 20% 줄어든다. 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 예산(-0.7%)도 감소한다. 연구개발(R&D) 예산(증가율 0.9%)은 거의 그대로다. 수출과 기업 주도 성장에서 벗어나 사람 및 소득 주도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맞춘 예산안이다. 재정을 풀어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로 삼아 성장을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재정의 적극적ㆍ선도적 역할은 긴요하다. 하지만 규제완화와 혁신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높여주지 않으면 성장동력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재정만 축낼 수 있다. 건설투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은 한국 경제 구조에서 SOC 예산의 급격한 감축은 성장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정부든 재정을 여유있게 운용하고 싶지만, 관건은 세수 등 정부 수입이다. 수입 범위에서 재정을 집행하지 않으면 국가채무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새 정부는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게 맘대로 되는가. 경상성장률보다 높게 재정지출 증가율을 잡은 것은 곧바로 재정적자가 쌓임을 의미한다. 내년 국가채무는 700조원을 넘어서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40%에 육박할 판이다.

 

과다한 국가채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부담으로 돌아간다. 복지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지, 그에 따른 재원 조달을 위해 세금 부담은 어찌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단계적인 복지 확대 로드맵을 정한 뒤 어느 정도 소득이 되면 몇만원이라도 세금을 내게 하는 국민개세주의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내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세수가 5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계했다. 하지만 11조원 규모 일자리 추경을 편성하고도 올해 3% 성장이 위태롭다. 반도체와 석유화학을 빼곤 국내 산업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내년에도 2%대 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 결과 정부의 세수 목표 달성도 어려울 게다.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11조5000억원을 줄이겠다지만, ‘주인 없는 돈은 1원도 없다’는 예산 격언에서 보듯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 지출이 늘면 늘수록 지출 구조조정은 더 힘들어진다. 그나마 ‘눈먼 돈’으로 불리던 힘 있는 기관들의 특수활동비를 감축하기로 한 것은 잘 한 일이다. 법무부ㆍ경찰청 등 19개 기관의 올해 특수활동비가 4007억원인데 내년 예산안에는 17.9% 감축한 3289억원이 반영됐다.

재정은 지출 이상으로 효율을 따져야 한다. SOC에도 고용과 지역개발 등 효율을 살릴 데가 있다. 복지도 확대 이전에 전달체계를 정비해 새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가을 정기국회가 국정감사 못지않게 집중해야 할 일은 예산안 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그 많은 돈 갖고 뭘 했느냐”고 질타했다. 예산 편성과 집행을 잘못하면 국민들이 “그 많은 국민 세금 갖고 뭘 했느냐”고 질타할 것이다.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는 정부나 예산 심의 및 결산권을 가진 국회나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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