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인회장 맡은 이중근 부영 회장

▲ 이중근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어떤 연유로 대한노인회장을 맡았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사진=뉴시스]

이중근(76) 부영그룹 회장이 제17대 대한노인회장을 맡은 걸 두고 세간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진정한 봉사 활동이냐, 부영에 밀어닥친 다각도의 공격을 희석시키기 위한 노림수냐가 그 요체다. 평소 그는 ‘기부왕’이라 불릴 만큼 국내외를 통해 많은 봉사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재계 16위의 그룹기업 회장이 현업에 있으면서 노인회장직을 맡은 데 대해선 좀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어른다운 노인으로, 노인회는 노인으로~.’ 지난 9일 제17대 대한노인회장에 취임한 이중근 회장이 내건 새 슬로건이다. 그는 7월 28일 전에 없이 치열했던 3파전 끝에 당선됐다. 국내 재계 순위 16위인 부영그룹을 경영해온 기업인이자 기부에 남다른 덕을 쌓아온 그답게 취임 초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대한노인회의 면모 일신을 다짐한 자신의 공약을 대뜸 실천하고 나선 형국이다.

먼저 회장실과 총무 관련 사무실을 노인회가 있던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중구 세종대로 부영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사빌딩)으로 옮겼다. 사무실이 비좁아 불편이 크다는 평소 여론에 따른 조치다. 나아가 그는 “교통이 편리하고 복지관도 갖춘 쾌적한 새 중앙회관 건물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대한노인회 조직 정비와 노인 위상 정립에 기여하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서둘러 이행하는 모습이다.

당선 직후인 지난 3일엔 대한노인회 시·군·구 지회장 245명과 시·도 연합회장 16명 등 261명에게 직무활동비로 1인당 100만원씩 총 2억6100만원을 사비로 우선 지원했다. 선거 공약이었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여서 사비로라도 지원해 공약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지방 경로당 회비가 중앙회로 상납되는 제도를 폐지하고 중앙회가 지방을 지원하는 조직이 되도록 하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그는 “700만 노인 중 회원 수가 300만여명밖에 되지 않는 이유는 경로당-지회-연합회-중앙회로 올라가는 회비 상납구조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밖에도 그가 내건 공약은 눈에 띄는 것만 해도 여럿 더 있다. ▲노인인구 1000만 시대(2025년)에 대비하기 위한 노인복지부 신설 추진 ▲65~75세 별도 경로당 신설 ▲사단법인에서 법정단체로 전환해 회원 확대 ▲노인복지정책연구원 설립 추진 ▲치매 치료와 틀니, 임플란트 지원 등 노인 건강 지원책 강화 등등이다.

부영 창업자인 그는 34년간 부영을 키우면서 줄곧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펴 이 분야에선 이미 정평이 나 있다. 1983년 부영 창업 이래 전국에 고등학교 기숙사, 대학 건물, 마을회관 등 교육·사회복지시설 190여곳을 무상으로 지어 기증했다. 2011년부터 7년간 대한노인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경로당 240여곳도 지어 기증했다. 올 3월엔 전북 무주에 노인교육연수원(우정연수원)을 지어 기증하기도 했다.

해외 교육지원 사업에도 관심이 남다르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아·태지역 18개국과 아프리카 국가 초등학교 600여곳에 디지털피아노 6만여대, 교육용 칠판 60만여개를 기증했다. 세계태권도연맹과 파트너십을 맺고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1000만 달러(114억원) 후원도 약속했다.

대한노인회는 1969년 설립된 보건복지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국내 최대의 노인 단체다. 전국 시·군·구 244개 지부, 읍·면·동 분회 2055개소, 경로당 6만4460개소, 회원 300만여명을 두고 있다. 미국·일본 등 18곳에 해외지부도 있다. 연간 자체 예산 19억원과 취업·복지 지원 명목의 정부 위탁 예산 약 400억원을 운영한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대한노인회가 정치, 사회적으로 상당한 의미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며 한 표를 호소하는 풍경이 벌어진다. 노인 유권자 700만명이 적은 숫자가 아니기 때문.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게 “저와 정부는 어르신들이 대접받고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는 취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취임식에는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이 대거 참석했다.

▲ 부영그룹은 현재 임대료 과다 인상 공세와 부실시공 추궁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진은 건설 중인 부영 아파트.[사진=뉴시스]

700만 노인 권익 대변이 목적인가

호사다마랄까. 그의 대한노인회장 취임에 대해 축하의 시선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분히 정치적인 단체로 비치는 대한노인회장직을 맡은 그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이가 더 많아 보인다. 최근 부영이 공정거래위원회와 지자체, 국회 등으로부터 전방위 공격을 받는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 부영에 대한 검찰 수사와 영업정지 가능성 등이 있는 묘한 시기에 그가 노인회장 자리를 맡았다는 얘기다.

대한노인회와 부영은 모두 확대 해석(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7년 동안 부회장으로 지내며 개인적으로 노인회에 많은 공헌을 해 얻은 결과인 만큼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이 회장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회사 문제는 임대료 과다 인상 공세와 부실시공 추궁이다. 부영은 주력계열사 부영주택을 통해 임대주택 사업을 하며 회사 덩치를 키워왔다. 하지만 최근 제주시와 전주시, 경기도와 화성시 등과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부영이 제주와 전주 등에서 임대료를 현행법상 최대치인 5%로 인상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6월 전주시는 부영의 임대료 5% 인상에 대해 경찰에 고발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에 직권조사를 요청하고 불공정행위로 신고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9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부영주택이 제주도에서 공급한 주택의 임대료를 연 5%씩 인상해 서민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관련 법령 개정을 건의했다. 국토교통부도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부영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법 테두리 내에서 인상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고, 왜곡돼 알려진 측면이 많다”는 것. 전국 92개 단지 중 올해 임대료를 인상한 제주, 전주시 등 41개 단지의 경우 5% 인상한 곳도 있지만 주변 시세와 비교해 인상률을 차등 적용해 평균 인상률은 3.2%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는 “부영이 화성 동탄2신도시에 공급한 아파트의 부실시공을 눈감고 있다”며 강력한 행정제재를 경고하고 나섰다. 채인석 화성시장도 “부영의 부실시공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영업정지 등 최고 수위의 징계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주력계열사인 부영주택의 영업정지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 왔다는 얘기다. 전주시, 화성시 등 전국 22개 지자체는 연대해서 부영을 압박하고 있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임대주택의 임대료 증액 상한을 연 5%에서 2.5% 이내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공정위는 이 회장이 조카 등 친족이 경영하는 회사와 차명으로 보유하던 회사들을 소속회사 현황에서 고의적으로 누락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정치색 짙은 단체장 맡은 속내는

부영은 지난해 1조원 규모의 삼성생명 태평로사옥과 삼성화재 을지로사옥을 인수해 화제가 됐다. 최근엔 9000억원 상당의 KEB하나은행 을지로사옥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룹 20여 계열사중 상장사가 없을 정도로 경영의 투명성이 낮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회사가 이 회장 개인에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가 대한노인회장이란 봉사직을 평소 공헌활동처럼 무사히 잘 수행하면서도 회사 투명성을 높이고 준법 경영을 해 재계 16위 그룹기업답게 부영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을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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