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5년과 뉴삼성의 간극 메우려면 …

▲ 삼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이재용 선고 이후’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 24조원.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다.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혹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힘”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 상반기 내내 갇혀 있었다.

# 올 2분기, 삼성전자가 인텔의 아성을 꺾었다. 24년 만에 이룬 쾌거다. 혹자는 “역시 이재용 부회장”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지 모른다. 그런데 어쩌나. 그는 올 상반기 내내 갇혀 있었다.

‘세기의 재판’ 1심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호사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없는 삼성’의 미래를 점치느라 바쁘다. 재계와 많은 미디어들이 “오너 공백 리스크”를 입에 담는다. 이재용 없는 삼성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할 거라는 얘기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일궈낸 눈부신 실적도 ‘이재용의 선先투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오너의 의사결정은 기업 실적의 중요한 포인트다. 공격적인 투자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오너뿐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의 놀라운 실적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오너만이 아니다. 수많은 삼성맨들의 피와 땀이 뿌려진 결과다. 삼성그룹의 이李가 빠진다면…. 어쩌면 수많은 삼성맨들의 진가가 드러날지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이 부회장이 꿈꾸는 ‘뉴삼성’ 아니겠는가.

“오너의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기업 특성상 오너의 발빠른 판단과 투자 결정이 필요한 회사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공백으로 인한 여파는 생각보다 클 것이다. 더구나 삼성은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 비율이 높아 이들의 ‘경영 간섭’이 본격화할 수도 있다.” 8월 7일,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징역 12년을 구형하면서다.

이후 25일 1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삼성 측이 항소하더라도 장기간의 오너 공백은 기정사실이 된 셈이다. 재판부는 “사건 본질은 정치·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꼬집었다.

재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래전략실마저 해체된 삼성에 이재용 부회장마저 없다면 말 그대로 ‘차 떼고 포 뗀 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익명을 원한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보수적인 성향의 시장주의자다. “대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지 않은가.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의 사업은 정체 국면이다.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사업을 끊임없이 재편하고 대응 전략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 부회장의 공백으로 이 전략을 짜는 게 어려워졌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삼성의 최근 인수ㆍ합병(M&A) 사례를 살펴보면 그렇다. 이 부회장이 실권을 잡은 2014년 이후 삼성은 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미국 모바일 결제 솔루션 업체 루프페이(2015년 2월), 인공지능(AI) 가상비서 ‘빅스비’의 배경이 된 미국 스타트업 비브랩스(2016년 9월) 등을 잇따라 품은 데 이어 지난해 11월 전장기업 하만까지 인수하며 미래 경쟁력을 다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의 M&A는 올스톱됐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의 M&A 경쟁이 여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리스크 요인’임에 틀림없다.

어닝 서프라이즈 기록한 삼성

그런데 삼성의 실적을 보면 이 관계자의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삼성의 경영공백은 이 부회장이 구속된 올해 1월 시작됐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의 실적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올 상반기에만 영업이익 24조원을 벌어들였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 50조원도 가뿐하게 넘길 것으로 보인다.

당장 2분기에는 매출ㆍ영업이익ㆍ당기순이익 모두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삼성이 ‘오너 한명’의 힘으로 돌아가는 회사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 부회장의 장기공백 우려가 현실이 되더라도 실失만은 아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에 전문경영인(CEO) 시스템이 도입될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 시스템은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이가 회사를 책임지는 제도다. 조직 내부에서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CEO는 실적으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견제장치가 확실하다.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와 나눠갖기식 지분 참여,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적폐’를 자행할 가능성도 적다. 단기 실적에만 치중할 우려가 있지만 이는 ‘오너십’으로 방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자 건강한 기업 문화다.

문제는 재계가 전문경영인 제도를 마뜩 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주주 눈치를 보고 단기성과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는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른 기업 오너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경영권은 ‘프리미엄’이다. 경영권을 행사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기업분할, 인수, 내부거래 등 중요 의사결정을 오너 이익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어서다. 김기찬 가톨릭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았다. 오너의 강한 지배 욕구와 세습 욕심이 이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경영인의 역할과 권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삼성 역시 장기공백을 전문경영시대의 초석으로 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작前作을 보면 그렇다. 삼성은 2008년 이건희 회장의 퇴진 이후 표면적으로 ‘계열사 독립 경영’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듬해 이 회장은 ‘그룹의 위기’를 이유로 복귀했고 오너 중심의 경영 시스템을 부활시켰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도 마찬가지다.

편법 승계 서두르다가 그만…

이 부회장은 승진하지 않고 다수의 임원 중 한명으로 남아 ‘계열사 독립 경영’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삼성의 최종 의사결정자가 이 부회장이라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 이후 삼성의 사업구조 재편이 이 부회장의 ‘세습’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실형과 무관하게 이 부회장과 삼성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오너의 탐욕을 버리고 건전한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을 무리하게 세습하려다 무리수를 던졌고, 그 때문에 감옥신세까지 지지 않았는가.

 

이 부회장은 최근 열린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의 리더는 사업을 이해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줘서 좋은 사람이 오게 하고 경쟁에서 이기게끔 해야 한다. 직원들을 훈련하고,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경영권이다. 지분을 몇 퍼센트 더 가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답은 벌써 나왔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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