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봄꿈, 화성을 찾아가는 각자刻字 여행

▲ ❶정조의 화성나들이를 그린 ‘반차도’의 한 부분을 양각하고 채색한 작품

상쾌한 초가을의 문을 열어줄 의미 있는 ‘문화전시회’가 곧 열린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동문회가 매년 선보이는 전통 각자刻字 전시회다. 올해로 10회째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정조의 봄꿈, 화성을 찾아가는 각자 여행’이다.

수원 화성은 조선의 후반기를 찬란하게 수놓은 계몽 군주 정조대왕의 숨결이 곳곳에 스민 고도古都다. 용주사나 융건릉이 효행孝行이라는 옛 정신을 이으려는 마음의 소산이라면 화성은 늙어가는 조선에 새로운 정신을 찬물처럼 부으려는 정조대왕 의지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어려운 용어인 각자刻字란 목판이나 현판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나 돌 등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공예활동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서각書刻이라고 쓴다. 하지만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이 공식명칭인 만큼 이젠 각자로 통일하는 게 옳을 듯하다.

▲ ❷일차로 새긴 목판을 교정하고 있는 장면 ❸국가무형문화제 각자장 김각한 선생이 ‘훈민정음 언해본’ 목판새김질을 시연하고 있다 ❹새김질이 끝난 ‘훈민정음 언해본’ 목판

각자는 우리나라 역사의 증거이자 자랑거리였다. 반구대 암각화, 광개토대왕비, 중원 고구려비를 비롯한 석石각자를 거쳐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팔만대장경, 훈민정음 등 목판각자까지 이어진 건 대표적 사례다. 특히 불교와 유교의 유입 이후엔 각자가 곧 철학을 전파하는 핵심수단이었다.

1996년 철재 오옥진 선생이 초조初祖로 보유자 지정을 받았다. 뒤를 이어 2013년 3월에 고원 김각한 선생이 2대로 지정을 받아 국가 중요 공예 전통의 맥을 이었다. 김각한 선생은 2004년부터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각자반을 지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선인들의 숨결을 아로새기느라 숨차게 달려온 각자전수동문들의 고민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40여명의 각수刻手들이 만든 90여 작품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능행 반차도’의 곳곳에 스며든 예인들의 붓과 칼의 자취를 통해선 우리 옛 풍속의 풍요로움을 완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국진 더스쿠프 대기자 bitkuni@naver.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