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론 플랜의 허점

중국의 드론제작업체 DJI를 아는가. 장난감 드론을 생산하던 그 업체 맞다. 하지만 이 회사의 현 위치는 다르다. 연 매출은 10억 달러를 훌쩍 넘고, 자율비행ㆍ건설ㆍ농업 등 상업용 분야까지 진출했다. 취미드론시장을 발판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얘기다. 드론의 성장 방정식은 ‘취미에서 상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취미드론시장을 여전히 홀대하고 있다.

▲ 드론은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키워드로 꼽힌다.[사진=뉴시스]

무인항공기(드론)를 취미로 즐기는 김석민씨. 그는 최근 드론 산업의 십년지계十年之計를 제시하겠다는 국토교통부의 공청회에 참석했다가 실망했다. 보도자료에 작은 글씨로 적힌 문장 때문이었다. “… 레저ㆍ취미용은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수준ㆍ부가가치 등 성장 잠재력이 낮음, 미래시장 부적합….”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취미용 드론 시장이 낙후됐다고 판단하던 김씨였다. 그는 한국 드론 산업의 중장기 플랜에 대놓고 취미용 드론 시장을 제외한 이유가 궁금했다.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드론. 처음에는 군사용으로 개발됐지만 지금은 택배를 비롯해 농약 살포, 의약품 수송, 재난 탐사, 영상 촬영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는 ‘드론전쟁’ 중이다. 특히 드론을 사업에 활용하는 상업용 드론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미국 아마존은 물류 배송을 위한 상업용으로 개량된 드론을 개발해 출시했다. 독일의 물류배송업체 DHL도 드론을 활용해 상품을 배송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글로벌 IT 기업인 구글과 페이스북은 드론을 활용해 글로벌 인터넷망을 공급하기 위한 드론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발걸음도 느리진 않다. 이동통신 3사는 드론을 활용해 인프라를 넓히고 있다. 산간 오지 지역과 고도가 높은 지역의 고속도로, 철도 신설 지역 등 사람이 직접 측정하기 힘든 지역에 드론을 투입해 기지국을 설치하는 식이다.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은 동국대 산학협력사업단과 드론업체 유비드론과 협력해 물류용 드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정부(국토부)도 올해 7월 ‘드론산업 발전 기본계획안’을 내놨다. 이를 토대로 2022년까지 드론산업 기술경쟁력을 세계 5위로 끌어올리고, 선진국 대비 90%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연구ㆍ개발(R&D)에만 약 1조원을 투자할 계획도 세웠다.

주요 지원 타깃은 떠오르는 시장인 상업용 드론이다. 당장 내년부터 2019년까지 고기능 무인기 기술개발을 위해 5000억원을 민관공동으로 투자한다. 재난대응, 과학영농 등 특수 분야를 따로 선정해 각 부처와 함께 개발에 나선다.

그럴듯한 청사진이다. 일단 기술면에서는 선진국에 그리 뒤지지 않고 있다. 국방과학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드론 기술 수준이 미국ㆍ이스라엘ㆍ프랑스 등에 이어 세계 7위 수준이다. 중국과 같은 순위다. 대한항공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항공 기업들이 군대 납품용으로 드론 개발에 매진한 덕분이다. 이런 기술에 정부의 정책 역량이 더해지면 수준 높은 상업용 드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부에선 청사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드론을 활성화할 수 있는 취미용 드론을 중강기 플랜에서 완전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도 작고 인구가 수도권에 밀집돼 있어 민간에서 드론을 날릴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이 조성돼있지 않다”며 “취미용 드론은 이미 선진국이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우리가 선두주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드론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산업도 대중성을 빼놓고는 발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의 또다른 아이콘인 가상현실(VR)은 어트랙션 등 대중에 친숙한 모델을 먼저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취미용 드론은 가격 부담이 적어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적절하다. 취미용 드론이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론이 각종 범죄ㆍ폭발 사고에 연루되고 있는 점을 두려워 한다. 시장이 협소하다며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은 탓이다. 드론으로 택배를 날리면 뭐하나. 국민들이 드론에 거부감을 느끼면 드론 배송을 반길 리 없다.”

한국 드론 시장 괜찮나

실제로 선진국의 드론산업은 ‘취미 드론’을 발판으로 성장일로를 걸었다. 대표적인 게 중국의 DJI다. 글로벌 민간 드론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이 회사의 출발은 사진 촬영용 장난감 드론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매출 15억 달러(포브스 추정치)를 달성했다. 저가형 모델을 판매해 소비자들이 충분히 조종법을 습득하게 한 후 고사양 제품으로 유인하는 전략이 통했다.

 

유행에 민감한 민간시장에서는 피드백도 즉각 왔다. DJI는 평균 5~6개월마다 신제품을 내놓았다. 그만큼 기술 발전도 빨랐다. DJI는 어느덧 우리나라 정부가 노리는 자율비행, 건설, 농업 등 상업 분야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드론시장은 협소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기준 등록된 민간 드론도 2000여기에 불과하다. 조종자격을 취득한 이는 1326명. ‘그들만의 리그’다. 기업도 참여 의지가 없다. 지난해 기준 영리목적으로 드론을 제조하는 우리나라 기업은 1026개. 대부분이 영세한 중소기업이다.

선진국의 주요 드론 개발 기업들은 ‘1인 1드론’ 시대를 내다보고 있다. 드론이 스마트폰처럼 ‘생활 필수품’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반면 우리나라 드론 산업의 ‘십년지계 플랜’에서 드론은 산업계의 전유물로만 남아있다. 이아름 융합연구정책센터 연구원은 “드론은 기존 산업의 구조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기술”이라면서 “군사용 드론 개발에만 치중한 국내 드론 업체들이 민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길을 터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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