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총연맹은 왜 불구경만 하나

“시민 혈세를 낭비한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민주노총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씨가 됐다.” 민노총 서울본부의 불투명한 ‘서울시 지원금 사업’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우려들이다. 서울시의 지원금으로 추진된 사업 때문에 민노총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민노총 총연맹이 이 논란을 해결할 의지가 단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총연맹 측은 더스쿠프(The SCOOP)의 거듭된 취재에 입을 다물면서 “내부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 민주노총 총연맹은 더스쿠프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민주노총 서울본부 집행부가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고 각종 사업을 추진할지’를 논의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3월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 민노총 총연맹(본부)이 지역에 주는 ‘교부금’이 많지 않아 자체 사업을 할 수 없다. 법을 근거로 서울시가 지원하는 금액을 활용해 미조직·비정규직을 조직화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은 투쟁일변도의 1980년대가 아니다. ‘친親노동’을 추구하는 지자체와는 협력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런 명분과 취지 때문에 민노총 서울본부 운영위원들은 이 사업에 동의했다. 한 운영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애초 사업에 동의한 건 사실이다. 비정규직 조직화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서울본부의 사업이 본보기가 될 수 있으니 자금사용 기준을 명확히 세워 투명하게 운용하고, 사업의 효과성을 충분히 따져 진행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서울본부장은 어느 것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라졌다. 먼저 민노총 서울본부 운영위원들이 반대 쪽으로 돌아섰다. 민노총 총연맹은 아예 이 사업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서 자주성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서였다. 실제로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국고보조금에 의존하는 한국노총이 지난해 1월 노동개악을 이유로 노사정합의를 파기하자 고용노동부는 지원금 지원 중단으로 맞대응했다. ‘말 안 들으면 돈도 없다’는 걸 보여준 단적인 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집행부의 ‘서울시 지원금 사업’은 벽에 부닥쳤다. ‘한지붕 식구’인 서울본부 운영위원들이 반대로 돌아선 데다 민노총 총연맹의 공식적인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노총 총연맹은 각 지역본부 등이 정부와 지자체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았을 때 그 용처用處를 규제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국고보조금을 받되 건물, 토지 등의 부동산과 건물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로 제한한다. 국고보조금을 받을 때에도 중앙집행위원회에 사업계획을 보고하고, 승인을 받은 항목만 신청해 사업을 집행할 수 있으며, 중앙집행위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2001년 대의원회의 결정).”

돈’ 때문에 내부 갈등 격화

그런데 민노총 서울본부는 총연맹의 영令을 따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0일 총연맹 측이 ‘지원금 사업 중단’을 결정하고, 11월 30일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민노총 서울본부 집행부는 “총연맹의 결정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면서 사업을 계속했다. 자체 회계감사도 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서울본부 운영위원 과반수는 “집행부의 행태가 비민주적”이라면서 민노총 총연맹 규율위원회에 제소했다. 규율위원회는 올해 4월 27일 서형석 서울본부장과 수석부본부장에게 정권(권한정지)에 준하는 조치를, 사무처장 권한대행에겐 1개월 권한정지를 취할 것을 통보했다.

하지만 서형석 본부장과 집행부는 이 결정에도 불복했다. 서 본부장은 되레 “서울본부 조직국장 5명(근무지역 조정)과 운영위원(징계위 회부)들이 조직운영을 방해한다”면서 징계로 맞섰다. 한발 더 나아가 법무법인(시민)에 규율위원회의 결정이 민노총 총연맹의 규정을 준수했는지를 의뢰해 중앙집행위원회에 “규율위 결정은 잘못됐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중앙집행위는 “규율위원회는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서울본부가 제기한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면서 안건 채택 자체를 거부했지만 서울본부측은 서울시 지원금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민주노총 전직 임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민노총 총연맹 규율위원회의 결정은 강제성이 없다. 그래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처럼 아예 따르지 않는 건 이례적이다. 더 이례적인 건 중앙집행위에 보고까지 된 규율위원회 결정이 서울본부 측에도 통보되지 않은 거다. 정치적인 상황이 있었거나 제 식구 감싸기 둘 중 하나다.

▲ 민주노총의 내홍은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민주노총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귀를 좀 더 열고 변화(지원금 사업에 과한 전향적 태도)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만약 민노총 서울본부의 지원금 사업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거나 투명성에 위배됐다면 큰 문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10년을 거쳐 오면서 국내 노동운동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위축됐다. 이제 겨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친노동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과 더불어 국내 노동계를 이끄는 큰 축인 민주노총이 돈 때문에 분열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그 노동정책들을 지지하겠는가. 정부 정책마저 위축되면 그 피해는 누가 보겠는가.” 그러면서 이 교수는 “민노총 총연맹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총연맹, 문제 해결의지 있나

문제는 민노총 총연맹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총연맹 측은 더스쿠프의 수차례에 걸친 취재요청에도 “갈등은 내부 문제이고, 서울시 지원금 사업은 서울본부 자체 문제”라면서 어떤 취재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민노총 총연맹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편에선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의 부재, 그에 따른 12월 선거 때문에 총연맹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6월 22일 민노총 총연맹은 중앙집행위 회의를 통해 서울본부를 ‘조직징계’하기로 만장일치 회부한 상태다. 8월 17일 최종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지금까지 행보로 보면 민노총 서울본부 측은 이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총연맹이 그런 상황까지 염두에 뒀을지 의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