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급전 지시’ 왜 문제됐나

▲ 정부의‘급전 지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의 수요자원거래(DRㆍDemand
Response) 시장 활용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잘 이용하지 않던 ‘급전 지시’를 올해 들어 2번이나 연이어 발동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이를 두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력예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려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정부의 ‘급전 지시’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다.

‘급전 지시’. 이 생소한 용어가 최근 핫이슈로 떠올랐다. 탈원전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업에 전기감축을 요구해 전력예비율을 무리하게 맞추려 하고 있다는 주장과 전력수급을 맞추기 위해 진행하는 일상적인 업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어서다.

논란의 시작은 7월 발전 설비예비율이 14년 만에 3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설비예비율은 전체 발전설비 중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예비 발전설비를 의미한다. 흥미로는 점은 올해도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됐다는 것이다.

계속된 무더위에 온열질환자 수는 지난 9일 기준(5월 29일~8월 9일) 138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76명 대비 8.8%나 증가했다. 당연히 냉방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누진세 개편으로 최대 올해 최대 전력수요가 132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정부 발표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올해는 ‘여름철 전력수급 비상’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찜통더위에도 설비예비율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건 전력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올해 최대 전력 공급능력은 9660만㎾로 전년 9240만㎾ 대비 420만㎾가 증가했다. 정부는 발전기 4기가 폐지되면서 124만㎾의 공급이 줄었지만 발전소 15곳(1444만㎾)이 신규로 가동되면서 공급량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여름 전력이 모자랄 때를 대비하는 예비전력이 1010만㎾(예비율 11.7%)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예상치 못한 폭염이 발생하더라도 예비전력은 810만㎾(예비율 9.2%)를 유지해 반복됐던 전력수급 위기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자신했다.

뜨거운 감자가 된 ‘급전 지시’

하지만 정부가 전력예비율을 두자릿수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에 전기사용을 줄이도록 강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지난 7일 김무성 의원(바른정당)은 정부가 7월 12일(3시간)과 21일(4시간) 급전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를 두고 한편에선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기업을 옥죄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력수급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탈원전을 내세우던 정부 정책이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앞에서는 전력 예비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뒤로는 기업의 전력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의혹이 발생했다.

▲ 급전 지시가 탈원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과연 사실일까. 우선 급전 지시를 살펴보자. 급전 지시는 2014년 정부가 도입한 수요자원거래(DRㆍDemand Response) 시장의 운용방법 중 하나다. 전기 사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여름과 겨울 등에 산업용 전기 사용량이 많은 기업에 전기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은 줄인 전기를 전력시장에 되팔고 금전으로 보상을 받는다.

급전 지시는 무분별하게 내릴 수 있는 조치가 아니다. ▲ 수요예측오차 및 대규모 발전기 고장 등 수요감축이 필요한 경우 ▲ 전력 수요 예측값의 최대 수요 경신, 목표수요에 도달한 경우 ▲전력수급 위기경보 단계가 준비ㆍ관심 등에 해당하는 경우 등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급전 지시는 연 60시간 하루 2회 최대 7시간까지 이뤄질 수 있다”며 “7월 12일은 발전기 고장, 21일은 지난해 최대 전력수요를 경신하면서 급전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급전 지시 내린 이유는 급전 지시 기준에 해당했고 DR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위적으로 전력예비율을 높이려 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급전 지시와 탈원전의 연관성은 떨어진다고 분석한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DR시장을 연결해 얘기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발전소 건립은 수요관리 계획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단기적인 급전 지시와는 연관성이 낮다는 얘기다.

급전 지시, 탈원전 포석인가

급전 지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기업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급전 지시가 이뤄지는 DR시장에 참여한 기업은 기본급과 참여 실적에 따른 실적금 수령한다. 급전 지시를 거부하면 위약금이 발생하는 건 사실이지만 기본급을 초과해서 부과하지는 않는다. 급전 지시로 올라간 예비율도 크게 증가했다고 보긴 힘들다. 7월 12일 최대전력은 8183만㎾로 예비력은 1079만1000㎾ 예비율은 14.2%를 기록했다.

이날 정부가 기업에 지시해 줄인 전기 사용량은 122만㎾다. 급전 지시가 없었다고 해도 예비율은 12.5%를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력수요가 최대치를 기록한 22일도 마찬가지다. 이날 급전 지시로 줄인 전력량 172만㎾를 모두 사용했다고 해도 전력예비율은 10%대 이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과거 급전 지시 때도 1~2%대의 예비율이 상승했다”며 “이번 급전 지시로 큰 수치가 올라간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급전 지시 필요성과 규모 등에 관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급전 지시가 증가한데다 시장에 알리지도 않았다는 게 논란을 더 키웠다는 얘기다.

김영창 아주대(에너지학과) 겸임교수는 “전력이 충분하다고 얘기하면서 급전 지시로 예비력을 높인 건 시장의 오해를 충분히 살 수 있는 일”이라며 “투명하지 못한 일처리 과정이 논란을 더 키웠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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