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은 볼멘소리였나

 

▲ 물가는 치솟았는데,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일러스트=김희민 작가]


# 단돈 400원이면 족했다. 시내버스든 지하철이든 능히 탈 수 있었다. 그렇게도 살벌했던 1997년 외환위기 시절, ‘서민의 발’은 나름 따뜻하고 후했다. 그로부터 20년. 강산이 변한 만큼 값도 변했다.

2017년 시내버스 요금은 1200원, 지하철 요금은 1250원으로 매섭게 뛰었다. 인상률만 따져보면 200%가 넘는다. 가뜩이나 지갑이 얇아졌는데, 서민의 발은 속도 모르고 비싸졌다. 참 야속한 시절이다.

# 1997년 그해는 많은 샐러리맨에게 통한痛恨을 안겼다. 자신 같은 인재를 끝까지 책임질 줄 알았던 직장이 ‘해고’라는 부메랑을 마구 날렸기 때문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삼겹살(냉장 600g 3066원)에 위안 받고, 소주 한잔(360mL 1병 750원)에 눈물을 털었다.

두개 값을 합쳐봤자 볼품없는 지갑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위로는 없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는 농 섞인 말이 그 시대 서민의 아픔을 관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로부터 20년. 강산이 변한 만큼 값도 변했다. 삼겹살은 그새 352.1% 올랐고, 서민의 눈물을 받아주던 소주(360mL 1병 1400원)는 눈치 없이 가격을 끌어올렸다. 참 무시무시한 시절이다.

격변기 속 아픈 직장인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그리고 장기불황…. 이보다 더 잔혹한 격변기激變期가 또 있을까.

국제금융시장은 ‘불황 바이러스’에 전염된 채 끙끙거렸다. 그 탓에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툭하면 몰려오는 찬바람에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가장 고통을 받는 건 노동자였다. ‘많이 벌어야 잘 산다’는 명분으로 포장된 기업 이윤 앞에 노동자는 힘을 잃어갔다. ‘이윤 주도 성장론’이 임금을 후순위로 밀어낸 탓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콘셉트인 ‘노동의 유연화’가 힘을 받으면서 직장을 잃거나 질質 나쁜 일자리를 전전하는 노동자가 속출했다.

직장인을 옥죄는 위태로운 상황은 ‘나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임금이 줄어드니 ‘부채의 경제학’이 가동될 수밖에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생활물가까지 치솟아 벼랑에 몰린 사람들을 압박했다. 버는 돈(임금)은 비슷하거나 줄었는데, 써야 할 돈(소비)은 턱없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금과 물가, 그 간극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교통ㆍ통신ㆍ소주ㆍ삼겹살 등 우리네 직장인의 삶과 밀접한 50개 품목의 1997~2017년 물가를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50개 품목의 물가는 20년새 146.7% 상승했다. 반면 임금상승률은 같은 기간 61.9%에 그쳤다. 간극의 수치는 84.8%포인트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이 볼멘소리가 아니었음을 잘 보여주는 통계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꺼내든 ‘소득 주도 성장론’은 유효해 보인다. 노동자의 소득을 늘려 ‘경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의 부富가 늘면 사회 아랫단이 훈훈해진다’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한국경제에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대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론은 늘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세세히 뜯어보면 약점도, 한계도 많다. 소득 주도 성장론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소득이 증가한다고 당장 ‘선순환의 고리’가 생기는 건 아니다. ‘소득증가→소비증가→내수활성화→투자증가→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려면 ‘인고忍苦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한국경제가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린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소득 주도 성장론의 요지는 성장의 과실을 특정계층(대기업 또는 고소득층)이 가져가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자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가치관을 공유한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송종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자문위원).”

“소득 주도 성장론의 방향은 공감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꾸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아요. 자본의 양보가 절실한 시점입니다(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문제의식의 공유와 양보…. 답은 가까운 데 있다.
이윤찬ㆍ김미란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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