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2017년 50개 품목의 직장인 물가 분석

한국경제가 깊은 잠에서 깨지 않고 있다. “최근 몇년간 ‘호황’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혹자의 말처럼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보려 하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체감물가가 계속 오르다보니 괴롭기만 하다. 폭풍 같은 외환위기가 들이닥친 1997년엔 어땠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1997년과 2017년의 물가를 비교해봤다.

▲ 외환위기가 들이닥친 1997년이나 2017년이나 고단하긴 마찬가지다.[사진=뉴시스]

“8월 들어 공공요금 인상이 잇따라 발표되고 휴가철 폭염으로 생육에 지장을 받은 일부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체감물가가 크게 불안해지면서 물가불안 심리가 급속히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1997년 9월에 나온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다. 보고서는 국민들 사이에서 물가상승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가상승 요인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분석이었다. 단, 단서를 달았다. “원화환율이 현 추세대로 상승세를 지속한다면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다.”

그로부터 두달 후, 불행하게도 이 단서는 현실이 됐다. 11월 10일 원달러 환율이 사상 최초로 1달러당 1000원을 돌파했다. 외화가 부족한 정부는 며칠 뒤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렸다. 그렇게 외환위기가 왔다. ‘환율이 오르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던 LG경제연구원의 전망은 현실이 됐다. 1997년 60.063포인트(2015년 100포인트 기준)에 불과했던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듬해 64.576포인트로 치솟았다.

사실 당시 물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눈부신 성장을 이어오던 대한민국 경제가 그대로 곤두박질쳤던 게 문제였다. 1997년 12월 3.1%였던 실업률이 1998년 1월 4.5%까지 폭등했다. 그사이 무려 3300여개의 기업이 도산했다.

1999년 2월, 실업률은 무려 8.7%에 달했다. 외환위기는 ‘단군 이래 최악의 위기’로 꼽혔다. 다행히 국민들의 단합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2001년 8월 한국은행은 구제금융 차입금 전액을 상환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러 2017년,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금 희망에 차있다. 지난해 거리에 나와 자격 없는 대통령을 직접 끌어내린 게 시작이었다. 이후 ‘개혁’을 기치로 내세운 새로운 대통령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과감했다. 불통에 익숙했던 국민들에게 정권교체를 실감케 했다. 출범한지 세달이 지났음에도 70% 후반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외환위기, 눈부신 성장의 뒤안길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 남긴 상처는 20년이라는 세월조차 치유하지 못할 정도로 깊었다. 오히려 더 벌어진 부분도 있다. ‘양극화’다. 가계 내부에서는 소득이 낮은 계층의 소득이 더 줄었다.

저소득층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도 점점 치솟고 있다. 교통ㆍ식료품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필수소비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어서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곡哭소리는 끊이질 않는다는 얘기다. 달라진 게 있다면 1997년엔 기업 도산과 실직 등으로 울음을 삼켰다면 2017년엔 높은 물가 때문에 한숨이 깊다는 거다.
 

▲ 20년새 주요 품목의 물가는 146.7% 올랐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물가는 얼마나 올랐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외환위기로 힘들었던 1997년과 고물가로 고통 받는 2017년의 물가를 비교해봤다. 생활ㆍ교통ㆍ음식ㆍ가정식ㆍ여가ㆍ과자류 등 총 50개 품목을 골라 비교한 결과, 20년 사이 가격이 평균 146.7% 올랐다.

과자류가 210.6%로 가장 많이 올랐고, 생활요금도 1997년 대비 193.9% 상승했다. 교통(140.8%), 음식(131.6%), 여가(106. 8%), 가정식(105.1%) 모두 두배 이상 올랐다. 50개 품목 중 1997년 보다 가격이 내려간 건 단 하나, 쌀(-14.3%)뿐이다.

삼겹살(351.1%)과 담배(344.4%) 가격이 높은 폭으로 올랐다. 서민들의 발을 책임지는 경유(253.3%)와 시내버스(200%) 요금 역시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식품가격이 많이 올랐다. 달걀(195.1%), 양파(169.2%), 오징어(186.8%), 고등어(123.6%) 등 신선식품 가격은 물론 과자, 라면, 탄산음료 등 가공식품 가격도 무섭게 올랐다. 새우깡은 200%, 빼빼로는 500% 인상됐다.

과연 임금도 그만큼 올랐을까.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997년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46만3000원이었다. 현재 월평균 임금은 236만8000원. 임금상승률은 61.9%. 물가가 세자릿수로 오르는 동안 임금은 두자릿수에 머물렀다.

높은 물가, 깊어진 한숨

임금상승률보다 낮은 상승률을 보인 품목은 50개 중 시외버스(20.7%), 맥주(42.9%), 커피(36.7%), 쌀(-14.3%), 시금치(55.3%), 무(53.9%), 영화관람료(50%), 볼링(60%), 야구장 입장료(60%) 9개. 나머진 임금상승률보다 더 많이 올랐다. 물가 오르는 폭이 임금보다 더 가파르니 당연히 생활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물가가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거다.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피부로 와닿진 않는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지난해 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97년이나 2017년이나 고단하긴 매한가지다.

 

김미란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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