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관점으로 예상한 유통의 미래

185건. 2012~2016년 출원된 유통쇼핑 분야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특허수다. 변화에 보수적인 유통업계가 발빠르게 대응한다는 건 저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2030년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특허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달라져 있을 2030년의 모습을 1인칭 관점으로 예상해봤다.
▲ 4차 산업혁명은 유통업계의 '무노력 쇼핑' '비대면 서비스'를 예고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남편과 결혼한 건 2017년 이맘때다. 우리는 올해 결혼 13주년을 맞았다. 돌아보면 아득하다.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일까. 그땐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2000년 밀레니엄 때처럼 인류에 혼란이 몰려올 듯했다. 기대와 우려가 뒤엉키고 있었다. AI가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거란 무시무시한 전망도 그때 나왔다. 뭐, 이건 아직 유효한 것 같다. 2017년 당시 서점엔 4차 산업혁명 관련 책들이 즐비했다. 그때 서점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각설하고. 우린 결혼기념일을 맞아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부터 여행을 가려던 건 아니었다. TV쇼핑 채널에 가고 싶었던 ‘페루’ 여행 상품이 뜨면서부터 마음이 흔들렸다. 남편과 통화하면서 “언젠가 페루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이 요물이 어떻게 알고…. 이게 다 사물인터넷(IoT) 덕이다. 아니 IoT 때문이다. 웨어러블이 통화 중 음성을 인식해 스마트TV에 전달, 내게 맞는 상품을 추천해준 거다. 내가 웨어러블에서 검색한 상품도 TV쇼핑 채널에 뜨곤 한다. 그래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자꾸 눈이 돌아간다. 이것이 쇼퍼홀릭의 길인가. 

나는 이번 여행지를 페루로 정했다. 하지만 남편은 하와이가 더 끌리는 모양이다.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우린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를 설득할 참이다. 난 자신있다. “페루가 얼마나 멋진데!”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VR고글과 글러브를 씌웠다.
 
내 팔목의 웨어러블로 여행사 사이트에 접속했다. 아까 봤던 여행 상품을 클릭. 이어지는 남편의 외마디 비명, “와 대박.” 글러브를 쓴 남편 눈앞에 360도로 펼쳐진 마추픽추 전경. 오른쪽에선 머리가 수박만한 라마가 튀어나와 콧구멍을 벌렁인다.
“앗, 깜짝이야.”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라마를 쓰다듬나 보다. 허공에 대고 손짓하는 모습이 우습다. 하지만 반쯤은 마음이 기운 것 같아, 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여행지는 정했는데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있다. 다섯살짜리 딸 ‘아미’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지내는 건 처음이라서다. 남편은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엄살이다. 보통은 부모님이 아미를 돌봐주시는데, 그 외의 시간에는 ‘해피’가 아미를 돌본다. 해피는 ‘보모로봇’의 별명이다. 생김새도 사람같고, 실리콘 재질에 예쁜 옷을 입은 AI로봇이다. 

내가 어릴적 상상했던 로봇은 ‘차갑고 딱딱한 미지의 무엇’이었는데. 아미에게 로봇은 친구다. 지금은 해피에게 보육기능 밖에 없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청소’와 ‘조리’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 사이트에서 결제하고 업데이트만 하면 된다. AI로봇은 상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싼 편이다. 가격이 떨어질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여행 기간에 아미가 먹을 음식 리스트를 만들었다. 웨어러블에 리스트를 입력하고 스마트냉장고와 AI로봇 해피에 전송했다. “요리는 해피가 할 거고….” 식재료는 스마트냉장고가 관리한다. 스마트냉장고에는 자가스캔 기능이 탑재돼 있다. 냉장고 안의 식재료를 스캔해서 파악하는 거다. 
▲ 2016년 IBM이 국내에 공개한 인공지능 로봇 나오미가 대화 시연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메뉴는 “얼른 해치우라”고 경고 메시지도 보내온다. 메뉴 리스트와 매칭한 후 부족한 식재료는 마트 사이트에 직접 주문한다. 주문한 물건은 수시간 내에 드론이 배달해준다. 마트에 갈 필요가 없다. 
 
의류쇼핑도 간편해졌다. 과거에 쇼핑하러 백화점에 갔다면, 이제는 쇼핑하러 거실에 간다. VR고글을 쓰고 화면 속 백화점에서 쇼핑하면 된다. 제품을 터치하면 재질과 가격 정보가 뜬다. 손으로 짚어 눈앞에 가져오면 재질도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오프라인 매장에 가기로 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몇몇 대형몰은 남아있다. 쇼핑할 때에도 ‘오감만족’이 돼야 하는 나같은 ‘옛날 사람’을 위해서다. “자, 이제 가자.” 남편의 재촉에 문을 나선다. 문앞에는 ‘나는 자동차’가 대기하고 있다. 높이 5m 상공을 시속 60㎞로 나는 자동차를 타고, 우리는 과거 대형마트가 있던 공터를 지났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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