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메이커 3人3色

우리 주변의 메이커(Maker)들은 흔히 ‘돌아이’ 혹은 ‘괴짜’, 심지어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물론 한 분야에 미친 듯이 파고드는 그들의 특성은 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쩌면 우리의 이상과도 비슷하다. 단지 우리는 꿈만 꾸지만 그들은 실천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 학교 측이 심재광군의 동아리 활동을 적극 막았다면 캔위성은 나오지 못했을 거다.[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심재광 고등학생]
“그게 말이 되냐구요? 곧 위성 쏠 겁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태성고등학교에는 ‘RAM(Resea rchers And Makers)’이라는 공학 동아리가 있다. 공학에 관심 많은 학생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아리다. 게임보다 보드에 납땜을 해서 뭔가 만들어내는 게 더 재밌어서 합류한 동아리 회원만 26명.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중 고등학생들이 도전하기엔 벅찰 것 같은 미션에 도전하는 학생이 있다. 심재광(19)군이다.

그의 어릴 적 별명은 ‘박살님’이다. 뭐든 손에 가기만 하면 박살이 난다고 해서 어머님이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그런 재광군에게 오히려 분해해도 좋은 가전제품을 주면서 갖고 놀도록 했다. 부품을 살 돈을 쥐어주기도 했다. 특히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어머님 덕분에 재광군은 호기심 많은 학생으로 자랐다.

재광군이 현재 만들고 있는 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캔 위성’이다. 마무리 단계다. 완성되면 페리지로켓이라는 로켓발사업체의 도움을 받아 쏘아 올릴 예정이다. 실험이 성공할 경우, 특정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를 고도별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게 재광군의 설명.

로켓 하나에 각각의 목적을 가진 다른 캔위성들이 탑재되는데, 이렇게 하면 실험을 하는 입장에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재광군이 캔위성에 도전하게 된 이유다. 대견하고 기특한 일이지만, 캔위성을 만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단 학교 측에서 반기지 않았다. 각종 공구는 물론 로켓 발사까지 생각하면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전공자도 만들기 어려운 위성을 고등학생이 만들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과 “고3인데 공부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잔소리도 섞였다. 학교의 지원은커녕 동아리가 사라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나마 학생들의 우군이 돼 준 영어 선생님과 화학 선생님까지 없었다면 재광군의 프로젝트는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두분의 선생님은 이 동아리가 학교로부터 조금의 예산이라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힘을 쏟았다.
 

 

 

돈도 문제였다. 그동안 각자 용돈을 끌어다 쓰기도 하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했다. 캔위성을 만들기 전에는 주행로봇을 만들거나 소형로켓을 만들어 쏘아 올리기도 했는데, 작품들을 죄다 분해해서 부품으로 사용했다. 돈이 없으니 별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메이킹 지원사업에 선정돼 약 200만원을 지원받으면서 숨통이 트였다.

재광군은 학교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종 공구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위험하지 않은 게 없지만, 그건 선생님들이 옆에서 조금만 신경 써주면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에 각종 지식들이 널려 있고, 메이커 커뮤니티들을 통해서 다양한 조언을 듣는다. 고등학생인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학교공부를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뭔가를 만들면서 푼다. 오히려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 게다가 공학도를 꿈꾸는 저에게는 이것 역시 공부다.”

RAM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성적이 꽤 좋은 편이다. 재광군은 “지원금을 목적에 맞게 쓰고 그걸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게 조금 귀찮기는 해도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재광군은 “당분간 메이커로 활동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캔위성을 만들 때 수많은 메이커들로부터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도 지식과 정보를 오픈소스로 모두 공개해 또다른 메이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거다.
 

▲ 연출가 허창용씨는 세상에 없던 공연을 만들기 위해 로봇 코스튬을 직접 만들었다.[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허창용 연출가]
Art+Robot 연출가, 로봇에 인간 담다

“로봇이 춤을 춘다.” 이게 가능할까. 사전적으로 춤은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팔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여 뛰노는 동작’이다. 춤을 추려면 감정이 있어야 하고, 놀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로봇이 춤을 춘다는 건 이론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경기도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에 가면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그런 춤은 아니다. 기계를 조립하는 산업용 로봇팔이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인데,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이 공연을 만들어낸 이는 연출가 허창용(44)씨다.

허씨는 괴짜들이 득실대는 공연기획 업계에서도 엉뚱한 사람으로 통한다. 일단 예술 장르를 무한히 넘나든다. 대학 시절엔 조소를 전공했고, 동아리에선 풍물패와 몸짓패를 했다. 동시에 행위예술과 마임도 했다. 심지어 그림도 그린다. 미술, 음악, 연기, 행위예술까지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다.

“다양한 경험들이 나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창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허씨가 엉뚱한 사람으로 통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가 메이커이기 때문이다. 공연 연출가인 그는 공연에 필요한 장비를 대부분 직접 만들어 쓴다.

그중 눈에 띄는 게 로봇 형태의 코스튬(캐릭터 복장)이다. 허씨는 1997년부터 국내에 없던 ‘로봇 코스튬 퍼포먼스’라는 예술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사람이 로봇 코스튬을 입고 각종 공연을 펼치는 건데, 그는 이 공연을 통칭해 ‘아트봇(Artbotㆍ아트+로봇의 합성어)’이라고 명명했다.

“어릴 적부터 로봇을 좋아했다. 특히 아톰처럼 감성을 가진 로봇을 좋아했다. 물론 현실에 그런 로봇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그러다 세상에 없는 로봇으로 공연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하지만 당시엔 일본 만화 캐릭터 코스튬조차 구하기가 어려웠다. 로봇 코스튬이 있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진짜 로봇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오토바이 카울(엔진부분을 감싸는 플라스틱 덮개)을 절단해 몸통과 팔다리를 만들고, 각종 기계장치를 뜯어 뼈대를 만들었다. 몸통에는 모니터 하나를 넣고, 전선을 이어 화면을 통해 영상이 보이도록 했다.

“로봇 코스튬이 진짜 로봇 같았는지 한번은 A전자의 신제품 론칭쇼에 로봇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중국에 갔는데, 공항검색대에서 로봇이라고 통과를 안 시켜주더라. 한참 공연을 하고 나서야 통과가 됐다.”
 

 

 

최초인 덕분에 공연 의뢰 문의도 꽤 많다. 주로 전자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 공연을 해달라는 식이다. 하지만 허씨가 ‘로봇 코스튬 퍼포먼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스펙을 갖춘 로봇이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어주며 ‘500원입니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요즘처럼 청년실업률이 높은 현실에서 이 장면은 블랙코미디 같을 거다. 공연을 통해 그런 심각한 얘기들을 가볍고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로봇 코스튬은 로봇이지만 더 인간 같은 감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그걸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허씨는 자전거를 개조해 이동식 영상 공연(공연명 POSTMAN) 장치를 만들어 광화문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역시 업계 최초다. 그는 “공학 전문가와의 협업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치에 맞는 배터리를 구할 수 없어서 한 공학박사가 만든 배터리를 달았다. 시중에 나오는 제품이 아니니 박사님이 직접 와서 작동법을 설명을 해주더라. 현대자동차의 로봇팔 공연에서도 공학기술자들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 큰 감동을 받았다. 전문가들 중에 메이커들이 꽤 많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협업해 더 많은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 이승항 작가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보다 오토마타를 만들 때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이승항 오토마타 작가]
오토마타 만들다 교수 된 메이커

“취미생활을 열심히 했더니 교수가 됐다.” 메이커가 교수로 초빙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이처럼 일어나기 힘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오토마타를 만드는 작가 이승항(46)씨의 경우가 그렇다. 이씨는 “진짜 내 일을 찾은 것 같아 즐겁다”고 말했다.

오토마타(Automata)는 ‘스스로 동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원래는 유럽 귀족들을 위한 장난감이었다. 전기장치 없이 손으로 핸들을 돌리면 톱니바퀴들이 움직이면서 작동하는 기계장치다. 이씨가 처음 오토마타를 접한 건 일본어로 된 한권의 책을 통해서다. 오타쿠(otaku)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각종 캐릭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되는데, 그중에는 오토마타도 있다. 이씨가 접한 그 책은 바로 오토마타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2008년 일본의 서점을 갔다가 책을 통해 오토마타를 처음 봤는데, ‘이건 내가 만들어야 할 작품’이라는 걸 운명처럼 느꼈다. 그때부터 오토마타를 취미 삼아 만들기 시작했다.”

이씨가 오토마타를 보고 한눈에 반한 건 그에게 메이커 DNA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메이커였다. 생활이 그를 메이커로 만들었다. 경기도 시흥에 있던 어린 시절의 시골집은 생활의 편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농가였다.

그래서 그는 생활 편의 장치들을 설치했다. 보안이 허술한 집을 지키기 위해 감전식 문고리를 설치하거나 마루를 올라가지 않고 외부에서 발로 차면 방 전등이 켜지게 하는 식이었다. 중학생이 됐을 때는 별을 보겠다면서 천체망원경을 만들었고, 대학생 때는 졸업 작품으로 실물 크기의 전기자동차를 만들기도 했다.

호기심도 많았다. 자신이 흥미를 두는 학문은 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래서 이 작가의 전공분야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기계설계, 계측제어. 제어계측공학, 심지어 법학까지 공부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정작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다녔지만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하자 2003년 답을 찾지 못할 바엔 전공을 살려 돈을 벌자면서 친구와 창업을 했다. 성화종합기술이라는 전기ㆍ소방ㆍ자동제어 설비업체다. 이 작가는 이 회사의 경영관리 이사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공분야이고, 이를 통해 돈도 제법 벌었지만 성취감을 많이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오토마타는 달랐다.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고 있다”.
 

 

 

오토마타를 만들기 시작한 지 9년 만인 올해 초 그는 오산대로부터 교수 제안을 받았다. “메이커와 융합하는 학과 전공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학생들이 오토마타를 통해 기계공학의 원리를 배울 수 있고, 엔지니어로서의 현장 경험도 쌓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의를 받아들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에겐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학생들에게 오토마타 작가로서의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 돈을 벌 수 있느냐를 실험하는 거다. 돈이 없으면 작가도 계속할 수 없다. 지금 나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는 있지만, 일부러 지분을 계속 줄이고 있다. 2년 후면 지분이 다 소진된다. 그 안에 작가로서 온전히 자리를 잡을 생각이다.” 물론 작품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다. 그는 오토마타를 활용한 콘텐트에 주목한다.

“오토마타가 교육에 쓰이면 유용할 것 같다. 오토마타의 기본은 목공이다. 서너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차근차근 시간을 투자해 성과물을 얻어가는 과정을 거치면 성취감이 높다. 그걸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오토마타는 죽은 사물에 생명을 담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감성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중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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