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프로메테우스 ❷

세계 최대 우주항공업체 웨인랜드(Weynland)사社의 회장 웨인랜드는 우주탐험과 개발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인류의 기원을 규명하려 한다. 지구와 인류의 기원을 규명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과도 같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개척자 정신(Frontiership)’의 극한을 보여준다.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구의 역사는 ‘개척의 역사’다. 이들은 항상 ‘한계’에 도전한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 강을 만나면 강을 건넌다. 바다를 만나면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망망대해에 배를 띄운다. 그렇게 15세기 대항해의 시대를 열어 세계의 역사를 서양의 역사로 만들어버린 그들이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ary)는 아무것도 없다 못해 산소조차 없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기를 쓰고 기어 올라가는 ‘황당한 짓’을 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인류의 역사를 ‘창조적인 소수의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response to challenge by creative minorities)’로 규정하지만 이런 ‘도전과 응전’의 역사는 모든 인류의 것이라기보다는 서구인들의 역사에 가깝다. 특히 미국인들에게 어울린다.

▲ 웨인랜드 회장은 인류 기원을 알기 위해 '프로메테우스'호를 우주에 보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들은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해 태평양에 다다르고서야 전진을 멈춘다. 앞에 무언가 더 남아있는 꼴을 못 본다. 더 나아갈 곳이 남지 않게 됐을 때 이들은 망망대해를 건너 신대륙에 도달하듯, 허공에 뜬 달을 향해 국력을 기울여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미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에게 달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에드먼드 힐러리가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른다’고 한 것처럼 ‘달이 있으니까 간다’는 식이다.

이들의 후예인 웨인랜드 회장은 인간의 ‘죽음’이라는 한계까지 뛰어넘으려는 극단적인 ‘개척자 정신’을 발휘한다. 인류 창조의 비밀을 풀어낸다면 인간의 숙명인 질병과 고통까지 극복하고 인간이 영생불사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개척자 정신’의 끝은 결국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이 신神의 반열에 오르는 일이다.

웨인랜드 회장은 이 야심찬 프로젝트를 위한 우주선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라고 명명命名한다. 사실상 그리스 신화의 인물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 속에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리들리 스캇 감독이 하고 싶은 모든 말이 담겨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신화 속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한 죄로 극한의 형벌을 받는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은 ‘미리 생각하는 자, 예견하는 자’를 의미한다. 제우스 신은 ‘불’이 인간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인간으로부터 불을 감췄다. 그런데 ‘일을 저지르기 전에 심사숙고하라’는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까지 받은 그가 경거망동輕擧妄動한다. 사형보다 끔찍한 ‘영원한 고통형’을 선고받아 마땅하다.

웨인랜드 회장은 프로메테우스다. 인간 창조의 비밀을 밝혀내고 궁극적으로 신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하려한다. 만약 웨인랜드 회장의 꿈이 이뤄져 몇몇 소수의 인간이라도 영생을 누리게 된다면 그 파급효과와 부작용은 과연 어떨까.

▲ 인간의 예지력으로는 한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다.[사진=아이클릭아트]
인간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예지력’으로 하나의 결정이 몰고 올 파급효과와 부작용을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가 제안한 불확정성의 원리나 ‘나비효과’가 이를 말해준다. 갈매기의 날갯짓 하나가 이후의 기후 패턴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다.

인간의 예지력으로는 초기 조건의 변화가 야기할 수 있는 무한대의 ‘연쇄반응(chainreaction)’을 알 길이 없다. ‘일을 저지르기 전에 숙고하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조차 불의 사용이 일으킬 수 있는 연쇄반응의 끝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최고의 신인 제우스조차 그것을 가늠할 수 없어 숨겨두고 있었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봄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는 일본 속담은 흥미롭다. 여기서 봄바람은 요즘 기승을 부리는 황사현상을 말하는 듯하다. 황사바람이 심하게 부는 해에는 안질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급기야 실명하는 사람들도 다수 발생했던 모양이다. 맹인들은 안마사가 된다. 일본 안마사들은 과거 우리네 안마사들이 피리를 불고 다녔듯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 작은 북을 치고 다녔다. 그래서 많은 고양이가 죽어나간다. 고양이가 줄어들면 쥐들이 기승을 부린다. 쥐들은 뒤주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뒤주장수가 대박난다는 ‘연쇄반응’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프로메테우스는 물론 제우스 신조차도 불어오는 황사바람을 보고 뒤주장수의 대박을 예견하지는 못한다.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우리네 인간들은 ‘사다리 타기’에서조차 자신의 점심 식사의 운명을 알지 못한다. 야심찬 정부정책이나 사업이 발표될 때마다 구체적인 수치까지 동원돼 온갖 ‘기대효과’들이 나열된다. 맞아떨어진 적은 거의 없다. 

오늘도 인간복제나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 등 온갖 ‘프로메테우스적’ 논의들이 어지럽다. ‘사다리 타기’의 예측조차 못하는 인간들이 하는 프로메테우스적 논의라서 공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프로메테우스가 받은 형벌의 의미를 한번쯤은 기억할 일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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