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악화에 상인들 시름시름 앓아

▲ 청담동 웨딩거리가 떠오르면서 아현동 웨딩거리를 찾는 손님이 급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아현동 웨딩거리’ ‘종로 귀금속거리’ ‘이태원 가구거리’ ‘청계천 헌책방 거리’…. 오랜 시간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화와 전통을 만들고 특화거리를 탄생시켰다. 아현동 웨딩거리도 그런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수년간 상권이 악화한 데다 최근엔 재건축 여파로 일부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아현동 웨딩거리, 이대로 괜찮을까.

1970~1990년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서울 아현동은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였다. 지하철 2호선 아현역과 이대역 사이.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 안에 100곳에 이르는 웨딩드레스숍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많은 한복집, 메이크업숍, 스튜디오숍이 둥지를 틀고 있어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결혼식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이곳에 웨딩거리란 별칭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현동 웨딩거리는 그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100곳에 달하던 웨딩드레스 숍의 수는 30여곳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그마저도 마지막으로 문을 연 게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가게가 수두룩하다. 간판을 반쯤 떼어놓고 언제든 가게를 뺄 준비를 해놓은 곳도 있다. 불과 10여년만의 일이다.

아현동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 탓인데, 갑작스레 급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현동 웨딩거리에서 만난 상인들은 상권이 침체된 이유를 “혼인율이 갈수록 줄고 있는데다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탓”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아현동뿐만 아니라 웨딩시장 자체가 침체됐다는 거다.

물론 혼인율이 떨어지면서 웨딩 관련 시장 규모가 작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현동 웨딩거리를 찾는 손님이 끊긴 게 그 이유만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경쟁 상권에 밀린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요즘 20~30대에게 웨딩거리는 아현동보다 청담동이 더 익숙하다.

최근 2년 안에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 10커플에게 물어본 결과, 10커플 모두 청담동에 있는 웨딩드레스숍을 찾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4커플은 아현동 웨딩거리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웨딩 플래너를 통해 웨딩드레스숍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웨딩 플래너는 웨딩홀부터 드레스, 스튜디오, 메이크업 등 결혼식 준비를 대행해주는 곳이다. 최근엔 맞벌이 커플이 많아 웨딩컨설팅업체 플래너나 웨딩홀에 결혼준비를 맡기는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다. 반대로 말하면, 웨딩 플래너와의 커넥션이 없는 아현동 웨딩거리의 경우 경쟁력에서 밀릴 공산이 크다는 거다.

이런 추세에 맞춰 아현동을 떠나 청담동으로 옮긴 이들도 적지 않다. 아현동 웨딩거리에서 웨딩드레스숍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상당수의 상인이 아현동을 떠났는데, 그중 대다수는 청담동에 새 숍을 열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아현동 웨딩거리가 가진 이점이 사라진 것도 침체 원인 중 하나다. 한데 모여 있어 발품을 많이 팔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격이 저렴하다는 아현동 웨딩거리의 강점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 때문인지 아현동 웨딩거리 상인들은 10여년 전부터 추진된 아현동 재개발에 기대를 걸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주민이 늘면 상권에 활력이 감돌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만 불렀고, 실망은 위기를 부추겼다. 재건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되레 상권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아현동 웨딩거리 중간에 있는 아현교회 우측의 건물 두채는 이미 허물기로 결정됐다. 재건축 아파트에 드나들 수 있는 도로를 낸다는 이유에서다. 이 결정으로 해당 건물 두채에 들어서 있는 3개 웨딩드레스 숍은 문을 닫게 됐다.

가게 문을 연 지 2년 밖에 안 됐다는 웨딩드레스숍 주인은 이렇게 한탄했다. “들어올 때만 해도 재건축이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건물을 허물 수도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곳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인테리어 등 들어간 비용이 한두푼이 아닌데 보증금을 내줄테니 나가라고 한다. 내게는 법적으로 최소 5년까지는 장사할 권리가 있다.” 또다른 점주는 “다른 지역을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청담동은 임대료가 비싸 엄두도 못내고 있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웨딩거리 역사 사라질까

 

그렇다고 다른 건물의 사정이 괜찮은 건 아니다. 재건축 조합원들이 매입ㆍ철거 절차를 진행하는 건물은 수없이 많다. 앞으로 더 많은 점주들이 가게를 잃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장은 “이런 경우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결로 인해 매입ㆍ철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일부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현동 웨딩거리의 한 상인은 활기를 잃은 상권을 두고 이렇게 꼬집었다. “국내에서는 경쟁력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웨딩드레스 가격이 비싼 일본 등에선 아직도 관광사진을 들고 이곳을 찾아온다. 문화ㆍ관광단지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40년간 서울의 특화거리 중 한 축을 담당했던 아현동 웨딩거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을 수도 있다.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는 이미 상권을 뒤덮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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