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

김영수(75)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정부가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정치적 성향으로 분류해 지원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총리 자리를 제의 받았다는 그는 인사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제도 하에서는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만신창이가 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야당의 반대에도 장관이 됐지만 이미 만신창이인데 국방 개혁이 제대로 되겠는가”라고 말했다.[사진=전문식]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부당한 일이었죠. 정부가 지원의 기준을 정하는 건 필요하지만 사람 자체를 분류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을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은 검사 출신으로 안기부 1차장을 거쳐 김영삼 정부 시절 민자당 의원,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문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그는 총리 자리를 제의 받았다고 한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시절 개막식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이 공들여 준비한 그의 개막 연설을 들은 것이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 후 박 정부는 인사청문회를 거칠 필요 없는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를 그에게 제의했지만 역시 거절했다.

✚ 총리 제의를 왜 거절했나요?
“모실 만한 분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자주 만나 소통하고 교감해야 하는데 국무위원을 잘 만나주지 않았잖습니까? 인사청문회도 부담스러웠어요. 난들 흠이 없겠어요? 무엇보다 놀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여생을 등산ㆍ여행 등을 하며 살고 싶었죠.”

✚ 인사청문회 제도는 뭐가 문제라고 보나요?

“인사청문회 때 하는 질문을 보면 정책에 관한 건 20%가 채 안 됩니다. 고교 시절부터 시작해 과거 비리 캐내기와 인신 공격이 주를 이루죠. 도덕성 검증은 인사검증위원회를 만들어 비공개로 하고 인사청문회는 이 관문을 통과한 사람을 대상으로 정책 질의를 하고 미처 거르지 못한 치명적인 문제를 검증하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야당의 반대에도 장관이 됐지만 이미 만신창이인데 국방 개혁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 인사검증위를 어디에 설치해야 하나요?
“제3의 기관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국회 사무처에 둘 수도 있습니다. 인사 검증의 권한을 부여하는 게 관건이죠. 정부와 국회가 합동 위원회를 열어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다 내도록 할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여기서 통과되면 인사청문회에서 과거의 잘못은 문제 삼지 말고 정책 질의만 하자는 거죠.”

그는 정부를 떠난 후 과거 의정 활동 하던 시절 싱크탱크로 만든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다. 법조인 출신이지만 로펌으로 옮기지 않았다.

▲ 검사 출신인 김영수 전 장관은 “검찰 스스로 권위의식을 버리고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고언했다.[사진=전문식]

✚ 로펌행을 하셨다면 잘 버셨을 텐데요?
“나의 인맥을 활용해 판검사들과 유대관계를 맺어야 하는 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봉급이야 많이 받겠지만 결국 돈 주는 사람의 ‘주구走狗’가 될 수밖에 없어요. 연금 받아 밥 먹고 살면 됐지 더 벌어 더 쓰겠다고 내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 전 장관은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끝으로 17년의 검사 생활을 매듭지었다. 법조 출신이지만 문체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 법무부 장관으로 법조계에 복귀하고 싶지 않았습니까?

“YS(김영삼 대통령)가 내무부ㆍ법무부 장관 등 정치적인 자리에 대해서는 간섭이 심했습니다. 반면 문체부 일엔 별로 관심이 없었죠. 나는 YS 정부에 몸담았지만 주류인 상도동계는 아니었어요. 민정수석으로 있는 동안 이들 주류와 틈이 생겼는데 어느날 내가 문체부로 간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더라고요. 성향은 달랐지만 대과가 없었던 나를 이들이 문체부로 밀어내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년 가까이 청와대에 있으면서 문체부 관련 정보보고를 열심히 읽고 문체부가 하는 일에 대해 공부도 좀 했습니다. 그 후 청와대를 떠날 때 YS가 법무장관 자리가 어떻겠느냐고 해 문체부를 맡겨 달라고 했죠. 권력 있는 자리에는 있어 봤습니다. 안기부 차장도 당시엔 장관급에 준하는 자리였죠.”

그는 문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부 예산을 40% 이상 증액했다. 민정수석이라는 전직 덕에 여기저기 힘을 쓸 수 있었다.

✚ 문체부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문화 정책에 관한 사실상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밖에 없던 시절에 정부 차원에서 문화복지 원년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문화 국가로 가야 한다는 선언이었죠. 또 홀대당하던 우리의 한복 입는 날을 정해 국경일엔 두루마기를 입자고 제안했어요.”

✚ 검찰 개혁이 현안입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요?
“검찰이 군림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스스로 권위의식을 버리고 자세를 낮춰 피의자ㆍ피조사자 입장에서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죠. 그러면 대부분의 ‘갑질’ 민원이 사라집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핵심 이슈인데 경찰에 수사권을 넘기는 문제는 두가지가 전제돼야 합니다. 첫째 미국의 FBI처럼, 지휘권자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수사 경찰을 독립시켜야 합니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음주운전을 했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대령 진급이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경찰이 넘긴 자료를 송 장관의 동기인 헌병대장이 폐기한 거로 보입니다. 경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일선 수사관이 지휘하는 검사가 안 된다고 해 곤란하다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서장의 지시를 물리치려 들겠어요. 경찰의 상명하복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따르는 검찰 조직 이상이에요. 둘째 경찰이 맡는 수사는 전체의 60~70%를 차지하는 민생사건에 대한 것에 국한해야 합니다.”

✚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고언을 좀 해 주시죠.
“친서민적인 행보로 스타일 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고 봅니다. 대통령 부부의 행동이 다 아름다워 보여요. 문제는 콘텐트입니다.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이념에 경도돼 경쟁보다 평등을 중시, 정책 결정과정에서 수월성을 무시할까 봐 걱정이 좀 됩니다. 기술력이 좌우하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자칫 하향 평준화의 길에 들어섰다가는 우리나라가 3등 국가로 전락할 수 있어요. 신고리원전 문제를 3개월의 시한으로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발상만 해도 그래요. 전문가를 배제한 채 졸속으로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은 의심하지 않지만 이게 잘못된 열정이면 후대에 씻지 못할 죄를 짓게 됩니다.”

 

✚ ‘인생 문장’이랄까 좌우명이 무엇입니까?
“일을 할 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을 대할 땐 역지사지易地思之, 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 다시 태어나도 검사가 될 겁니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는 갔습니다. 지금은 상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국부를 일으켜 세금을 내고 사에 해당하는 공복이 사회질서 유지와 안보를 담당합니다. 시대의 주역이 바뀐 거죠. 다시 태어나면 비즈니스맨이나 과학자가 될 거예요. 사실 공복은 국민의 심부름꾼입니다. 공복에게 필요한 건 뛰어난 머리보다 엄정한 자기관리와 따뜻한 마음입니다.”

✚ 공직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고 싶나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검사만 해도 과거엔 봉급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먹고살 수 있어요. 선공후사의 자세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비로소 갖춰진 셈이죠.”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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