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최초 종업원 지주사 설립될까

노동자들은 가끔씩 ‘몽상 같은 이상’을 꿈꾼다. “노동자 스스로 일하고, 그 대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땀흘려 만든 성과를 못된 경영자가 뺏을 수 없다면….” 흥미롭게도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땀을 쏟는 상장사가 있다. ‘상장사 최초 종업원 지주사’에 출사표를 던진 한진중공업홀딩스 자회사 한국종합기술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회사의 도전과 난제를 취재했다.

▲ 한국종합기술 노조는 애초 회사 지분 매각에 반대했지만 결국 직접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다.[사진=뉴시스]
한진중공업홀딩스의 자회사 한국종합기술에 건설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종합기술의 우리사주조합이 회사 지분 67.05%의 인수를 꾀하고 있어서다. 성공한다면 상장사 최초의 ‘종업원 지주회사’가 탄생하는 셈이다. 설계ㆍ감리업체인 한국종합기술은 한진중공업홀딩스(지주사)의 자회사다. 지난 5월 한진중공업홀딩스는 계열사 한진중공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한국종합기술의 지분 67.05%를 매물로 내놨다.

한국종합기술의 우리사주조합이 지분 인수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국종합기술 노조 측이 ‘지분 매각’ 자체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은 한진중공업인데 왜 한국종합기술이 팔려가야 하느냐”는 논리에서였다.

설득력이 충분한 주장이었다. 한국종합기술의 매출은 최근 5년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2011년 이후 최대인 1993억원을 찍었다. 사업 특성상 판관비를 빼고 나면 영업이익이 그리 많지는 않았어도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2016년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7억원 이상이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19억여원 늘었다.

주가도 올랐다. 13일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7월 최고가(주당 5680원)보다 56.7% 오른 8900원을 기록했다. 직원들이 매각을 반대할 이유가 충분했다는 얘기다. 그 때문에 당시 한국종합기술 노조의 입장은 강경했다.

하지만 비관적인 현실론도 만만치 않았다. “매각을 막기도 어렵지만 다행히 막아낸다고 해도 대주주의 입김에 휘둘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또다른 현실론이 고개를 들었다. “직원의 힘으로 능히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희망론이었다.

한국경제에 경종 울릴 수도

실제로 한국종합기술의 주요 사업은 설계와 감리다. 오로지 입찰을 통해 평가를 받기 때문에 경영의 기술보단 직원들의 역량이 중요하다. 한국종합기술의 매출이 2000억원 안팎인데도 직원 수가 1000명을 훌쩍 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수 한국종합기술 우리사주조합장은“직원 역량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고급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승산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의 설계ㆍ감리는 공공입찰이 대부분이고, 기술점수와 가격점수가 대략 8대 2, 9대 1이다. 경영 능력보다는 기술력으로 평가받는 셈이다. 직원들만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다.”

이런 희망론은 직원들이 회사 지분 인수에 나서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지분인수 의향서를 낸 직원만 920명에 달한다. 전체 직원(1분기 기준 1154명)의 79.7%다. 나머지 직원 중 200여명이 우리사주조합원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96.4% 수준의 지지를 받은 셈이다.

우리사주조합 관계자는 “40% 안팎의 지분을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하고 나머지는 투자자를 찾는 방식을 택했다”면서 “노조원들의 자본금 갹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우리사주조합의 전략과 플랜이 성공한다면 한국종합기술은 역사의 한 획을 긋는다. 앞서 언급했듯 ‘상장사 최초의 종업원 지주사’라는 타이틀은 상당히 큰 함의含意를 내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하고, 그 대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서다. 만약 종업원 지주사 전환 이후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모인다면, 한국경제에 경종을 울릴 수도 있다.

한국종합기술 우리사주조합에 자문을 하고 있는 송호연 ESOP컨설팅 대표는 “직원들의 역량이 상당히 중요한 한국종합기술은 종업원 지주사로 전환하기엔 아주 적합한 구조”라면서 “잘만 하면 국내 상장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인수 경쟁은 첫번째 산이다. 모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는 부정적이지 않다. 매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로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사회적인 비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서다. 관건은 인수경쟁에 뛰어든 호반건설이다. 호반건설이 제시하는 금액이 우리사주조합이 제시하는 금액보다 높으면 한국종합기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명분보단 ‘쩐錢의 전쟁’이 결과를 갈라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진짜 난관은 인수 후부터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걱정이다. 이젠 직원들이 직접 경영전선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설계ㆍ감리업계를 꿰뚫고 있는 전문가라도 경영과 매니지먼트는 다른 문제다. 전략적 선택을 할 때 좌고우면左顧右眄하거나 미숙한 경험을 노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종업원 지주사로 전환한 비상장 기업 중에는 이런 이유들로 성장이 정체된 곳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점에서 송호연 대표의 조언을 새겨들을 만하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회사 위기 극복을 위해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노조가 경영에 너무 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비용절감이나 경영개선에 나서지 않아 결국 다른 기업에 인수됐다. 노스웨스트 항공은 노조의 경영참여보다 민주적인 소통에 중점을 뒀다. 뭐가 됐든 일을 열심히 해서 돈만 많이 받겠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 자체에 가치를 두게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항공사는 여전히 잘 존속하고 있다. 종업원의 경영 참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소통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종업원 지주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어렵다. 이것만 명심한다면 한국종합기술은 충분히 존속과 성장을 이룰 거라고 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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