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를 위한 고언

▲ 9년 만에 등장한 진보 정권이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성급함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독창이 아닌 합창이 필요할 때다.[사진=뉴시스]
기원전 218년 5월 카르타고(현재의 튀니지)의 명장 한니발은 당시로선 상상조차 어려웠던 대담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는 군사 4분의 3을 희생해가며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해왔다.

허를 찔린 로마는 카르타고의 코끼리에 게 짓밟히며 속수무책으로 패배를 거듭했다. 그러나 로마는 스키피오 장군의 파격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전쟁의 물줄기를 바꿔놨다. 로마를 방어하는 대신 적국인 카르타고 본국의 심장부를 공격한 것이다.

스키피오는 분노한 한니발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곧바로 카르타고를 파멸시켜 영원히 로마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상대방 힘의 원천을 찾아내 뿌리째 뽑아버린 스키피오라는 대전략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위대한 승부사들은 일시적으로 전투에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과감한 역발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소탈하고 겸손한 행보로 큰 인기를 끌었다. 보수정권 9년 동안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정치에 실망한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새 정부 초대 내각 후보의 면면이나 정책결정과정을 보면 아쉬운 대목이 있다. 자칫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국정을 이끄는 독창獨創이 아니라 홀로 노래를 부르는 독창獨唱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독창보단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부르는 합창이 낫다. 보수는 공감능력 부족으로 좌초했다면 9년 만에 등장한 진보정권은 지나치게 성급하거나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 촛불집회와 탄핵 이후 집권한 정권이니 만큼 적폐세력과 단절해야 하고,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다.

정부가 5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정이 28.8% 진행된 신고리 원전 5ㆍ6호기의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계속 건설여부를 놓고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다. 시민배심원들에게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한 후 배심원단이 토론을 거쳐 결정케 한다는 내용이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중도 포기할 경우 이미 집행된 공사비 1조6000억원과 기업들에 대한 보상비 1조원을 합쳐 2조6000억원 손실이 예상된다. 원자력을 줄이면 값이 3배에 육박하는 LNG발전으로 주로 대체해야 한다. 국제 천연가스 공급불안이 빚어지면 에너지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선 치명적 타격이 된다.

한국은 원전 선진국이다. UAE 원전 수주에서 20조원을 벌고, 향후 운전 및 보수에서 57조원, 합쳐 77조원을 벌게 되어 있다. 만일 원전을 포기하면 해외 수주가 불가능하고, 국내 원전산업이 고사하게 된다. 반핵운동가들은 그동안 원자력 잠수함을 핵 잠수함으로,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을 핵 항모라고 부르면서 핵이 몰고 올 잠재적인 위험을 강조해왔다.

새 정부의 탈원전 국가로의 변모 의지를 마냥 비난할 수 없다. 현재의 기술로는 완전한 핵폐기물 처리방안이 없고 냉각체계가 미비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의 설비제조 건설 운전부문에서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존 원전을 단기간 내 도태시키기보다 장기적인 안목 아래 사회비용을 최소화하는 신형원전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제3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바람에 새 정부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동맹인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국을 보호하는 사드배치를 서두르지 않는다고 불만이고, 이웃 중국은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중국의 군사시설을 넘본다며 경제보복을 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만을 없는 일이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여기에서 멈춘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문자판을 책상위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국가지도자와 CEO는 고독한 결단을 하는 자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무수한 반대를 딛고 국내 자원을 총동원해서 이뤄냈다. 당시 반대가 극심했고, 심지어 부자들이 유람 다니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느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반대하는 대신들을 오랫동안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창제한 세계 최고의 문자다. 대중은 현명하지만 미래를 보는 혜안은 부족하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긴 안목을 갖고 결단하는 사람이 국가지도자다. 우리는 그를 선각자로 부른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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