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70주년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의 꿈

요즘 김영훈(65) 대성그룹 회장의 머릿속에는 온통 ‘미생물’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재계의 ‘미생물 전도사’라 이름 붙여도 무방할 정도다. 대성그룹이라면 최근 창립 70주년(5월 10일)을 맞은 한국에서는 꽤 전통 있는 에너지그룹이 아닌가. 한국 재계 오너들 중 보기 드물게 공부 많이 한 김 회장이 그토록 ‘미생물’을 외치고 다니니 왜 그럴까.

▲ 김영훈 회장은 블루 에너지 이코노미의 중심에 미생물이 있다고 강조했다.[사진=뉴시스]
김영훈 회장은 6월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대성그룹 창립 70주년을 기념해서 ‘글로벌 에너지 콘퍼런스’란 걸 열었다. 세계적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미생물’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미생물 기술자와 투자자를 연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70년간 대성을 그런대로 잘 키워놨으니 옛날을 회고하며 어깨 좀 으쓱해 보이고 주변에 잔치 기분 내면 될 일인데 좀 남다르다.

하지만 김 회장답다는 생각이 든다. 재계 오너들 중 그처럼 공부 많이 하고, 에너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에너지 비전 정립에 몰두하는 ‘선구적先驅的 기업인’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행사를 개최하며 내건 지론은 다음과 같다.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와 식량, 물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미생물을 통해 대성그룹 100년 비전을 찾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인류 생존에 필수 요소인 ‘식량-에너지-물(Food-Energy-WaterㆍFEW)’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미생물이 에너지뿐만 아니라 미래 부족자원인 물과 식량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유망한 솔루션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가 미생물에 거는 기대는 무척 크다. 종합에너지기업을 지향하는 대성그룹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도전과 기회의 장을 제공할 것이란 확신에 차 있다. 한국이 BT(바이오테크놀로지=생명공학기술),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미생물 관련 핵심 기술을 주도할 경우 오랜 ‘에너지 변방국’에서 벗어나 ‘에너지 중심국’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에너지 자원은 없지만 지식과 기술력이 있어 희망이 있다는 입장이다. ESS 기술 강국인데다 BT 발전 속도 또한 기대할 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미생물의 99%는 바다에 있다. 에너지가 자원이 아닌 기술로 좌우되는 시대가 오는 만큼 3면이 바다인 한국이 그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이 미생물 대망론을 펴는 근거는 대개 다음과 같다. 우선 지금을 에너지 대전환기로 규정한다. 그는 “우리가 쓰는 전기를 모두 신재생에너지로 바꾼다 해도 최종 에너지소비량 중 전기 비중은 20%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80%에 이르는 산업용ㆍ수송용ㆍ난방용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에너지원을 찾는 것이 지금과 같은 에너지 대전환기의 가장 큰 숙제”라고 진단한다.

산업혁명 이후 석탄ㆍ기름ㆍ이산화탄소 등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블랙 에너지 이코노미’가 에너지 변환이 필요 없는 해양 미생물 에너지에 기초한 ‘블루 에너지 이코노미’ 시대로 옮겨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미생물 통해 대성 100년 비전 찾겠다”

그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섭취하면서 내는 생화학적 에너지는 친환경적인 데다 다양한 환경에서도 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 에너지업계의 판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재삼 강조한다. 그는 “심청이 심 봉사를 찾기 위해 잔치를 벌였던 것처럼 ‘제2의 패러데이(전기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 세계적인 파티를 열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제2의 에너지 혁명을 몰고 올 미생물 기술발명가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의 미생물 비전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오너 2세로 1988년부터 30년간 에너지기업인 대성그룹에서 임원으로서 CEO로서 경험하고 느낀 데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또한 2004년부터 14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세계경제포럼(WEFㆍ다보스포럼)에 참가해 에너지 미래 정보를 탐색한 끝에 찾아낸 것이다.

무엇보다 10여년 전부터 참여해온 세계 최대 민간 에너지 기구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활동이 큰 보탬이 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3년 임기의 WEC 단독 회장직을 맡았다. 2013년부터 공동 회장을 맡았던 그는 한국의 대성그룹 오너 2세 기업인에서 글로벌 에너지 리더로 부상했다. ‘에너지의 UN’이라 불리는 WEC는 93개 회원국과 3000여개의 회원조직을 두고 있다.

그는 WEC 회장 취임 당시 “에너지 대전환기를 이끌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며 “WEC가 기술자들과 투자자들의 만남과 논의를 통해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IIE(Inventor-Investor-Encounter)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기술로 돌아가자” “에너지ㆍ식량ㆍ물의 결합을 모색하자”며 미생물 전도사가 됐다.

이번 창립 70주년 기념 글로벌 콘퍼런스도 그의 이런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2019년 제24차 아부다비 세계에너지총회에서 미생물 에너지를 주요 테마로 내걸어 심도 있는 글로벌 논의를 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콘퍼런스는 그 워밍업인 셈이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실제 사업을 통해서도 미생물 에너지에 대한 시도를 해왔다. 계열사인 대성환경에너지를 통해 2006년부터 대구 방천리 위생매립장에서 나온 미생물을 가스로 전환해 1만5000가구가 쓸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그는 “연간 100억원이란 적지 않은 매출에다 31만t이 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까지 거둬 큰 보람으로 여긴다”며 “경남 남해군에 지을 그룹 연수원에 미생물전문연구소도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47년 대구에서 국내 최초로 연탄 공장(대성산업공사)을 세운 고故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자의 일곱 자녀(4남 3녀) 중 다섯째(3남)다. 2001년 창업자 별세로 장남 김영대(75) 대성산업 회장이 산업가스 부문(현 대성산업)을 물려받았다.

차남 김영민(72) 회장은 서울도시가스를, 삼남인 그(65)는 대구도시가스(현 대성에너지)를 각각 넘겨받았다. 독립한 성주인터내셔날을 통해 MCM을 일구고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지낸 김성주(61) 성주그룹 회장은 막내 여동생이다. 대성그룹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대 그룹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으나 2001년 3개 계열로 분리됐다. 분리 전후로 형제간에 갈등이 심해 주위의 눈총을 샀다.

미생물 에너지 사업화 시도

그는 학력이 좋고 외국에서 공부도 많이 한 기업인이다. 경기고ㆍ서울법대 행정학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대와 하버드대 등에서 법학ㆍ경영학ㆍ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국제경제학 청강을 하기도 했다. 대단한 학구열이 아닐 수 없다. 그가 힘든 자기 사업을 두고 10여년 간 WEC 회장 등으로 굳이 활동하고 있는 것은 ‘공익이 최상의 수익모델’이라는 평소 경영철학 때문이다.

재계에 얼굴을 많이 내비치는 편은 아니지만 대성그룹 임직원들에게는 소탈하고 친근한 리더로 알려져 있다. 그의 미래 비전인 ‘미생물 에너지론’이 세勢를 얻어 큰 열매를 맺기를 기대해 본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