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의 공정거래위 열흘

▲ 공정위가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김상조 위원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사진=뉴시스]

김상조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대기업이 겁내는 법을 새로 만들거나 칼을 마구 휘둘러서가 아니다. 현행 법에 따라 공정위가 활동을 강화하자 재벌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영업해온 회사들이 오너일가 지분 정리에 나섰다. 가맹점에 갑질을 일삼던 프랜차이즈 본사가 설설 긴다. 이른바 ‘김상조 효과’다.

이런 움직임은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튿날부터 나타났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진에어 등 5개 계열사 대표를 사퇴했다. 동시에 계열사 유니컨버스 지분을 대한항공에 무상증여 방식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한화S&C는 사업부문을 떼어내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니컨버스나 한화S&C는 매출의 상당 부분이 계열사에서 나온다. 둘 다 그룹 오너와 자녀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어 계열사 내부거래로 오너일가에 이익을 챙겨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오너일가 지분을 20% 아래로 낮춰야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순환출자 고리가 얽혀있는 다른 재벌들도 고민이 깊을 게다.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일어난 일은 드라마틱하다. BBQ는 최근 두 차례 치킨값을 최대 2000원 올렸다. 공정위가 BBQ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 계약에 대한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BBQ는 치킨값 인상을 없던 일로 되돌리고 사과했다. 교촌, BHC도 가격인상을 철회하거나 할인 판매하는 등 파장은 업계 전체로 퍼졌다. 급기야 BBQ 전문경영인 사장이 취임 석달 만에 물러났다.

결과적으로 치킨값 인상 철회라는 물가관리 효과도 냈지만, 본질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이다. BBQ는 치킨값을 올리면서 가맹점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본사는 10원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가맹점에 마리당 500원씩 광고비를 분담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공정위가 광고비 부당 전가 여부를 조사한 것이다.
‘경제검찰’ 공정위가 움직이자 사법검찰도 가동됐다. 검찰은 21일 미스터피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가맹점에 보내는 치즈를 오너 친인척이 관여한 업체를 끼워 넣어 비싸게 공급하는 등 지난 4월 문제가 됐던 갑질 논란에 뒤늦게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갑의 횡포를 차단하기 위한 공정위 활동은 속도가 붙었다. 22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중소 납품업체에 부당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과징금을 지금의 두 배로 물리는 대규모유통업법 과징금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시 개정안은 10월 중 시행된다. 재벌개혁 등 공정위 과제 수행을 위한 국회에서의 법률 개정에 앞서 공정위 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열흘째인 23일 4대 그룹 최고 경영진과 회동했다. 재벌 저격수와 재벌의 만남이다. 회동 계획을 미리 공개하고,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아닌 대한상공회의소에 주선을 요청한 것은 잘한 일이다. 공정위원장과 재벌 경영진이 공개리에 만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이후 13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방향을 전달하고 자율 개혁에 나서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은 김 위원장 취임 이래 공정위가 필요한 정부조직임을 깨닫게 되었다. 산지가격에 관계없이 올랐다가 환원된 치킨값 때문만은 아니다. 공정위가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물론 중소 납품ㆍ하청 업체, 대리점, 골목상권 등 수많은 ‘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적 몰아치기식 재벌개혁으로 ‘대기업 군기 잡기’ 논란을 빚어선 곤란하다. 공정거래법의 취지는 독과점 구조 개선을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재벌개혁의 목표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김상조의 공정위는 엄정한 법 집행으로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시장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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