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세컨드 라이프 ➋ 손웅익 전 서울오션아쿠아리움 부사장

손웅익(59) 전 서울오션아쿠아리움 부사장은 등단한 수필가다. 프리랜서 건축사, 시니어 대상 강연가, 캘리그래퍼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인사동에서 그림 전시회를 여는 게 꿈이다. 그림ㆍ글ㆍ캘리그래피를 접목한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하늘의 명령을 알게 된다(知天命)’는 50세에 그는 ‘인생 모델’을 발견했다. 어려서 127가지 꿈을 꿨고 마흔일곱에 거의 다 이뤘다는 평범한 미국인 존 고다드. 그의 스토리를 워크숍에서 접하고 60세까지 해마다 목표를 하나씩 정해 이루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 5월 그는 계간 ‘문학의 강’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에 당선돼 수필가로 등단했다. 수필가 등단은 캘리그래피 등 자격증 따기, 저서 출판, 명강사 되기, 그림ㆍ기타ㆍ목공예 배우기 등과 더불어 열가지 목표 중 하나였다. 이들 목표 가운덴 사회에서 만난 50명과 각각 서로 술잔을 기울일 만큼 친밀하게 사귀기도 있었다. 그해 그는 60명의 지인과 이런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손웅익 전 서울오션아쿠아리움 부사장 이야기다. 건축사 출신인 손 전 부사장은 5월 말일 회사를 퇴직했다. 프리랜서 건축사, 시니어 대상 강연가, 시니어 주거에 특화된 에세이스트로 활동할 계획이다. “어느덧 10년이 흘러, 이번엔 인사동에서 그림 전시회를 여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림을 꽤 잘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이 목표를 위해 그림을 데생부터 다시 배웠고 캘리그래피 자격증도 그래서 땄어요. 그림에 글과 캘리그래피를 접목한 새로운 장르의 그림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그는 한양대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설계사무소 도제생활 7년을 거쳐 건축사 자격증을 딴 뒤 자기 회사를 차렸다. 30대에 이미 잘나가는 건축사로 건축사 지망생 직원이 열다섯명이나 됐지만 IMF 체제를 맞으며 거꾸러졌다. 일감이 끊겼지만 직원들을 내보낼 수가 없었다. 갈 곳 없는 이들이 살 길을 찾아 떠날 때까지 근 10년 ‘고난의 행군’이 이어졌다.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의 공납금조차 낼 수 없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공황장애가 덮쳤다. 불면증과 폐소공포증을 동반했다. 감각이 마비됐고 식욕을 잃어 피골이 상접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처남이 “이 병엔 약도 없다”고 말했다. 때마침 우울증을 앓던 아내는 수지침과 뜸을 배워 밤마다 그를 간병했다. 뜬눈으로 지새운 출근길 폐소공포증 탓에 전철역마다 내렸다 타야 했다. 

존 고다드와 맞닥뜨린 건 빚을 다 갚고 대학 동기가 창업한 서울오션아쿠아리움에 몸담았을 때였다. ‘명강사’ 수업을 하느라 그는 ㈜시니어파트너스 강사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수료 전 치른 필기시험에선 만점을 받았고 실기 시연도 1등을 했다. 시연에 대비할 땐 아내를 앉혀 놓고 열번 가까이 실습을 했다. 지금도 강의 요청을 받으면 그는 다섯번 이상 연습을 한다.

“서울 강남 거리에서 ‘강사님’ 하면 시니어 열명 중 다섯이 돌아본다고 합니다. 시니어의 주거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강사 중 건축 전공자가 별로 없어요.” 그는 주거행복창작연구회에 가입해 도시 공동 주거의 대안에 대해 동료들과 연구 중이다. 그성과를 장차 비즈니스로 발전시킬 생각이다. 우선 도심에 셰어 하우스를 지으려 한다. 그는 집 규모를 줄이는 게 베이비부머가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했다. 

학창 시절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 외톨이였다고 한다. 대학 입학식 전날 그는 성격을 개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험한 건축 일을 못할 거 같았다. “괴팍한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저로서는 위악적인 행동을 많이 해 평판은 나빠졌지만 그 덕에 성격을 바꾸는 덴 성공했어요.”

 
퇴직한 직후 그는 과거 독립했을 때 데리고 일한 후배 건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을 찾은 그에게 후배가 책상을 내줬고 미리 복제한 자기 사무실 열쇠를 건넸다. “사람이 진짜 자산입니다. 사람이야말로 은퇴 후 저의 삶을 지탱해 줄 자산이죠.”

그는 경북 경주 태생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다. 촌뜨기라고 놀림 당하던 말없는 아이의 그림 실력을 4학년 담임교사가 눈여겨봤다. 선생님은 경희대에서 열린 전국사생대회에 반에서 그를 포함해 두명을 내보냈다. 집이 잘사는 친구는 그림 실력도 빼어났지만 그 시절에 가정교사에게서 미술 개인 레슨을 받았다.

대회 날 친구는 능숙한 솜씨로 외운 듯이 불국사를 그렸다. 그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체육관 등을 스케치한 후 앉아서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을 했다. 친구는 입상을 못했고 그는 2등에 해당하는 준특선을 했다. “내 인생 최고의 걸작품이죠. 근 50년 전 일인데 그 그림이 머릿속에 각인돼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학창 시절 그는 미술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을 했다. 고3 때도 경복궁을 찾아 향원정을 수채화로 그렸다. 그러나 미대 출신 아버지의 반대로 화가의 꿈은 접어야 했다.

은퇴 후엔 나누는 삶 살아야

그는 미술심리상담사ㆍ노인심리상담사ㆍ자살예방지도사다. 이들 자격증을 딴 건 건축이 사람의 심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심리 상담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그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지인의 동생을 만나 두시간 동안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 파국을 맞기라도 할 듯 재능 등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서울역 쪽방촌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장애아 주간 보호 시설인 성모자애복지관의 운영위원을 맡은 배경이다. 재작년 이 복지관 봉사자들은 장애아 부모들에게 제주도 1박2일 여행을 선물했다. 여행 기간엔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을 돌봤다. 한번도 부부끼리 여행을 해 보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는 돌아와 원장 수녀 손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SBS의 한 촬영감독은 200명에 이르는 이들 가족을 모아 가족사진을 찍어줬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분장팀까지 동원했다.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건 행복한 노후에 치명적이죠.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배우고 자기주도적으로 작은 것이라도 성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군 이래 가장 좋았던 시절이 저물고 있어요. 주변을 돌아보고 서로 나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야죠.”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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